여름 매미가 가고 가을 매미가 왔다
희한하다. 매미가 찾아왔다. 우리가 끝을 보던 사이에 자원해서 배경음악을 깔아주던 매미 합창단에게 진절머리가 났던 기억이 흐릿해질 때쯤 우리가 나란히 누워 자던 방에 마른 매미가 찾아왔다. 마른 매미가 무엇이냐 하면 말 그대로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매미다. 몇 주 전 새벽녘에 속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떠졌다. 새 직장에 다니며 아침 6시 기상이 생체리듬에 고정되어 느지막이 잠에 들어도 그게 밤 10시가 됐건, 11시가 됐건, 새벽 1시가 됐건 6시면 눈이 떠졌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를 시작하기 딱 좋은, 모닝페이지 쓰기 딱 좋은, 창문 너머 떠오르는 해와 산과 하늘을 가만히 응시할 수 있는 여유, 그거면 되는 아침이었다. 루틴에 꽉 잡혀 살았기에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세운 뒤 브리타 정수기에 내려진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공기 순환을 위해 거실 베란다 창문부터 그 옆에 창문, 부엌 창문, 그리고 침대방 창문으로 걸어간다. 침대 뒤에 있는 창문을 열려고 하는데 창틀에 붙어있는 말라비틀어진 매미가 보였다. '어머, 이게 뭐야! 이게 여기 왜 있어?'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는데 허공에 대고 말을 걸었다. 외마디 외침이랄까.
맨 처음엔 그게, 그것이 말이지, 살아있는 매미인 줄 알았다. 아침에 몸 뉘일 곳 없어서 창틀인지 벽인지 용케 매달려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입술을 모아 매미를 향해 후후 바람을 불었다. 매미는 꿈쩍도 안 했다. 그 생명체는 나의 놀람에 끄떡없었다. 화석마냥 망부석마냥 그 자리에 가만히 말라붙어있다. 한 생명이 간 것이다. 어디로? 저 세상으로. 원래 같았으면 매미가 제 명을 다하곤 흙으로 돌아갔을 텐데 이 녀석만큼은 퍼석과 파삭 어드메에 다다라서 바닥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떡하니 건물 벽에 붙어있다. 더 이상 생명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매미지만 내 맘대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 식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이별 장면에 꽤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매미 합창단을 떠올려보자니 짝짓기를 원하는 매미들은 결실을 맺었는지 어디론가 가버리고 종국에 내 곁에 남아있는 건 오직 쟤 하나뿐이다. 이 매미는 우리 곁을 맴돌던 합창단원 중 한 마리임이 분명하다. 아니라고 해도 내 말이 곧 법이다. 여긴 내 집이니까. 더군다나 이 매미는 죽어서까지 내 곁을 지키고 있다. 감동이고 울컥하고 찡하다.
매미한테 감정이입을 하다니 정신병이 또 도지려나 하던 차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매미를 가만히 본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얘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니 건드리지 말자. 매미의 심장은 멈췄지만 아무런 소리 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면, 구원해 줄 누군가를 향해 진심으로 기도하면, 믿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아니, 진짜로 어쩌면 이 매미가 죽다 살아나서 부활할지도 모른다. 매미의 부활이라니, 그럼 매미는 신이 되는 건가? 매미신이라, 너무 징그럽잖아. 매미와 외계생명체의 이미지가 겹쳐서 더 뜨악한다. 얼토당토않은 얘기지만 이미 이별이 일어난 우리 관계에서는 부활이 일어날 리 없으니 매미의 부활에 기대 본다.
2024년 11월 6일. 오늘도 여전히 매미는 창틀에 매달려있다. 매미는 부활할 리 없다.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12월이 와도, 2025년 봄에 부활절이 와도 매미는 꿈쩍도 안 할 기세다.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았다. 그런데 왠지 매미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동지애가 든다. 이미 죽은 매미를 굳이 튕겨내지 않는 내 심보도 희한하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의 심리를 굳이 굳이 파악하고자 묻는다.
'도대체 너 왜 그러는데?'
'그냥 그러고 싶어서.'
매미 발아래 끈끈이라도 붙은 걸까 죽은 건 확실한데 강력한 비바람에도 휩쓸려 가지 않은 걸 보니 새삼 매미의 존재가 꽤 커진다. 매미야,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손가락으로 툭 건드려 바닥으로 떨어뜨릴까? 휴지에 감싸 쓰레기통에 버릴까? 아니면 널 가만히 감싼 휴지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떨어뜨리고 뚜껑은 닫은 채 레버를 누를까? 그럼 물에 휩쓸려 가니 수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려나? 사람이 죽으면 장례 절차를 수순에 따라 밟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매미의 장례를 치르는 방법은 도통 모르겠다. 차라리 강풍이 매미를 데려갔으면 좋겠다. 내 손 안 쓰고 자연이 데려가 버리게. 그럼 매미의 죽음에 나의 책임이란 없게 되니 말이다.
가수: 윤지영
노래: 부끄럽네
https://youtu.be/rjNeYjJZCRg?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