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Oct 27. 2024

집 나간 이름을 찾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우리를 잃었다

긴 싸움 끝에 씩씩거리며 나갈 채비를 한다.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간다. 그는 어딜 가냐고 나가지 말라고 붙잡으려 하지만 이미 내 몸이 바깥으로 나온 이상 집구석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열과 성을 다해 열을 성을 내며 그를 탓하고 세상을 탓한다. 신이시여,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반성하세요! 신에게 응석을 부리다 전 세계에서 너도나도 손을 들며 민원 처리해 달라고 읍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서 어차피 신은 내 말이 들릴 거 같지도 않다. 그래, 말해 뭐 해. 내가 알아서 해야지. 깜깜한 밤에 갈지 자로 팔과 다리를 휘두르며 돌개바람을 일으켜 속도를 내서 걷는다.


걸으면 스트레스가 풀리잖아. 생각이 정리되잖아. 걷자, 걷자, 걷자. 집다운 집은 뭘까?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벨이 울린다. ㅇㅇ이려니 하고 휴대폰을 확인한다. 연락처에 저장된 사진 속 ㅇㅇ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웃는 ㅇㅇ이. 전화를 받지 않고 벨만 울린다. 사진 속 미소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제발, 전화받아라, 제발. 그의 호소력 짙은 미소를 무시한다. 그래서 결국 전화를 받지 않기로 결정한다. 부재중 전화 옆 숫자가 올라가는 걸 확인한다. 은근한 짜릿하다. 이 게임에서 내가 이긴 기분이랄까. 그래, 니 생각해도 니가 잘못했지? 반성 좀 해라. 하지만 그의 끈질김에 눈 딱 감고 마지못해 마지막 전화를 받는다. 왜 전화했는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맨날 이런 식이잖아. 그만하라고 했는데 또 이러잖아. 알았어, 이제 진짜 안그럴게. 똑같은 레퍼토리로 이어지는 대화. 싫증 날 법도 한데 고개 숙인 그의 음성에 마음이 누그러져 왼발과 오른발의 방향을 우리집 쪽으로 돌린다.


감정이 격해져서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을 땐 동네를 벗어난다. 기차를 타고 집 밖을 떠돈다. 인천, 강릉, 부산. 지금 당장 딱 떠오르는 나의 아지트. 인천은 인천공항이 목적지였고 강릉과 부산은 바다가 목적지였다. 북새통을 이루는 공항의 왁자지껄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몸을 실을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끼어있으면 나 또한 여행자가 된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떠나고 싶을 때 공항에 가서 바로 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산다는데 청춘 드라마를 찍을 시기는 한참 지난 나이라서 충동출국은 하지 않기로 한다. 안목해변과 해운대는 언제 가도 좋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분노에 차올라 서로를 맹비난하던 우리의 대화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짧은 여행에서 돌아와 서로 사과를 하고 다시 잘해보자고 약속과 다짐을 한다. 다시 깨질 걸 알면서도.


답이 없는 싸움 끝에 매번 집을 나간 건 나였다. 화로 가득한 공간에 1분 1초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일치기건 1박 2일이건 3박 4일이건 서울이 아닌 바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2024년엔 다르다. 그가 달라졌다. 그가 집을 나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는 외출 중이다. 그는 출타 중이다. 그의 소식은 누구도 모른다. 그가 종적을 갖추었다. 집 나간 이의 이름을 허공에 대고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침묵만이 허공을 채울 뿐이다.



가수: Billie Eilish

노래:  What Was I Made For?

https://www.youtube.com/watch?v=cW8VLC9nnTo&t=3s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셀프서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