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고도 특별한 고민 없이 우산을 손에 들고 집을 나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간다.
이때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비도 당연한 듯 쌓여간다. 당연한 것이 쌓이기만 했을 뿐인데 문제가 커진다. 관심도 없던 중국의 어떤 거대한 댐과 가깝게는 소양강 댐이 적정 수위를 유지하지 못해 방류를 시작했고, 그 결과 일상이 물에 잠겼다. 혹자는 거대한 댐의 붕괴와 그로 인한 재앙을 말하며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정말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지만 이 시절의 비는 사실 특별한 대책이 없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것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댐의 크기나 강도는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대응할 뿐 뾰족한 방법이 없다.
아무리 거대하고 강한 댐이라도 하늘이 구멍난 것 처럼 쏟아지는 비는 당할 방법이 없다 ⓒ pixabay.com
이 시절을 지나면서 우리 인생의 비가 슬픔이고, 마음은 그 비를 담아내는 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처럼 인생에 비가 당연한 계절이 찾아오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시험당하게 된다.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그리한다고 한들 하늘이 무너질 듯 쏟아지는 비에는 어떠한 준비도 소용이 없다. 조금씩 오는 비라도 지속되면 위험수위를 넘길지 모른다. 이렇게 인생은 알 수가 없다. 닥치면 살아낼 수밖에...
사실 난 스스로 슬픔이라는 감정에 둔감한 편이라 생각했다. 몇 년간 엄청난 비가 내렸지만 난 강하고 큰 사람이라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위험신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내가 괜찮다고 버티더라도 위험수위를 넘기면 몸은 비명을 지른다. 더 버티면 무너질지 모르니 방류도 생각해야 한다고,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한 곳들을 지금이라도 보수해야 한다고 몸이 먼저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애써 무시했고 일상을 살아냈다. 그리고 또 한 번 하늘이 무너질 듯 비가 쏟아졌을 때 결국 난 무너졌다.
며칠을 소리 내서 울었는지 모른다. 난 내가 그런 울음의 소리를 가진 줄 나이 40이 돼서야 처음 알았다. 댐이 무너지면 당장 방법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전부를 쏟아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보다 깨달음이 먼저 왔다.
아 그때 울었어야 했구나. 슬픔은 내보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고이는 것이구나!"라고 말이다.
어쩌면 댐을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보는 것보다도 비가 내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항시 수문을 개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변의 일상을 적시겠지만 그게 재앙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쌓아두고 터트리면 주변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일로 주변의 일상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나로 인해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죄하고 스스로 반성했지만 모두 이전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인생에 한방 다시 먹은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다시 댐을 세우고 살아낼 수밖에
어쩌면 같은 일에 대한 슬픔의 양이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내보내는 방법이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받은 슬픔을 전부 내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 동안 나누어 그 슬픔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쌓아두다 한 번에 터지는 사람도 있다. 피해 갈 수 없는 슬픔 총량이 법칙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면 나이만큼이라도 좀 더 지혜로워져야겠다. 댐이 무너지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