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虹이의 세계 (1)
'아직 기다려야 한다'
마음이야 지금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본능은 선택과 집중을 말하고 있다. 숨을 죽이고 몸을 최대한 바닥과 가깝게 밀착시킨다. 팔과 다리의 위치도 신중하게 조정한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적의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예리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낭비도 있어서는 안 된다.
타깃에 대해서는 이미 분석이 끝난 상태다. 목소리, 걸음걸이, 좋아하는 것, 사소한 습관까지 빠지지 않고 모두 파악을 끝냈다. 오늘 작전도 완벽할 것이다.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계획이다. 실패라는 결과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전과 같지 않은 몸이 걱정지만, 오늘 단 한 번이라면 나는 여전히 누구보다 치명적일 것이다.
멀리서 미묘한 엇박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분명 타깃이다. 쓸 때 없이 힘주어 걷는 습관은 여전하다. 관절에 무리를 주는 비효율적인 걸음걸이가 몸의 균형마저 흐트러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소리 없는 움직임을 철저하게 훈련해 온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런 녀석이 사냥감이라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프로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법. 이젠 예상보다 길어진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야 할 때다.
항상 보통의 하루를 기대하고 집을 나서지만, 결과는 오늘도 역시나다. 누군가에게 노려지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임의 무게를 견디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손발이 저려온다. 힘주어 걷지 않으면 언제 쓰러질지도 모른다. 곧 집에 도착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인기척을 살핀다. 이상할 정도로 적막하긴 하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다. 급하게 집을 나서기 위해 정리하지 못한 옷가지들도 그대로다. 습관처럼 기척을 숨기고 이곳저곳을 살펴보지만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냉장고로 향한다. 시원한 냉수 한 잔이 간절하다.
긴장을 너무 빨리 풀었던 것일까? 등 뒤로 그녀의 그림자가 보인다. 사각을 잡은 그녀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우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기로 했다. 그림자가 소리 없이 따라오는 것을 느끼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 고개를 돌린다면 그대로 끝장날 테다.
그녀의 발걸음은 여전히 위엄 있고 우아하다. 타깃을 앞에 두고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존재감만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애써 외면하려 먼 곳을 응시하자 스쳐 지나가는 그녀의 온기가 느껴진다. 이미 끝임을 직감한 나는 체념한 체 고개를 돌렸다.
"야홍~~~" 마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털을 최대한 부풀리고는 앞다리를 바르게 세웠다. 눈이 마주치자 당연하게 승리의 대가를 받아야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귀여움을 뿜어낸다. 나의 완패다. 그렇게 전리품을 쟁취한 그녀는 괜찮은 사냥이었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멀어져 간다. 치명적인 노묘 야홍(夜虹)이는 여전히 현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