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순천에 다녀왔습니다. 순천에는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이라는 그림책 전문 도서관이 있고 매번 멋진 전시도 진행되거든요. 지금은, 이수지 작가님의 전시가 열리는 중입니다. 저는 전시를 보기 위해 당일치기로 순천에 다녀왔어요. 드로잉 속 두 사람 중 하나가 제 모습이랍니다.
용산역에서 순천역까지 ktx로 두시간 40분, 아침 9시가 넘어 출발하고 저녁 9시가 넘어 돌아오는 꽉 찬 하루였어요. 대충 그런 시간으로 다녀올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선배 언니와 대화중에 덜컥 당일치기 약속을 잡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매번 좋은 전시 소식을 보며 ‘다음엔 꼭 가야지’ 다짐하다 놓치곤 했거든요. 더 미루다간 이번에도 못갈 거라는걸 알고 있었어요. 때로는, 결정부터 해놓고 밀어붙여야 하니까요.
화창한 하루였어요. 점심시간에 순천에 도착해서, 꼬막 정식을 먹고 도서관으로 이동했습니다. 2년전 서울 전시에서 본 그림들이 많았는데도 또 새로웠어요. 역시, 좋았습니다. 커다란 전시장을 여유있게 둘러보고 나와 도서관앞 그림책방에 들렀습니다. 인스타에서 댓글을 주고받으며 응원해주시던 책방지기님을 처음 뵈었어요. 약속했던 그림도 전달하고, 즉홍적으로 동네 오래된 과자점으로 함께 이동해서 카스테라도 구입했고요. 점심에 한정식을 먹었으니 간단한 저녁거리를 여쭈었다가 수제버거와 맥주집까지 안내받았지요. 순천역에 내려서 다시 기차를 타기까지 여섯 시간정도 머물렀을 뿐인데,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알차게 보냈습니다.
순천 당일치기는 16년만이었어요. 저는 2008년에 나온 그림책 <순천만> 을 작업할 때, 일년 넘게 매 달 순천에 다녀왔었거든요. 그 이후에도 잠깐 들른 적이 있지만, 기차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오니 그 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2008년엔 ktx가 순천까지 가지 않아서 시간도 더 오래 걸렸고, 순천역에서 순천만까지 오가는 길도 멀었고요. 몇 주 간격으로 사진찍고 드로잉하며 취재를 다닐 수 있었던 건, 순천의 책을 만들고 싶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몇몇 순천 분들의 도움과, 무엇보다 제가 20대였기 때문일 거예요. 지금은 하루종일 기차를 타면 한나절은 누워 있어야 하는걸요.
허리가 아프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짧은 여행을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다녀오면 되는데, 왜 계속 미루다 이제 처음 갔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지요. 프리랜서는 마냥 ‘프리’하지 않거든요. 가는 김에 다른 일정도 넣어 긴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에 미루게 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때로는 가뿐하게 움직일 수 있는 나날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고 싶습니다. 이번처럼 단순한 여행도 좋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