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오페라 텍스트 읽기

가볍게 읽고 깊게 생각한다

by operabluff

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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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오페라를 좋아하게 되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지만 무엇 때문에 오페라를 지금까지 계속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에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제 인지 모르지만 라디오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중 그대의 찬손, Che gelida manina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그 길로 바로 음반 매장에 가서 파바로티가 로돌포 역을 맡은 라보엠 앨범을 샀습니다. 집에서 처음부터 들어보는데 Che gelida manina 이외에도 끝없이 귀에 감기는 아름다운 아리아들과 선율이 끊임없이 흘러나와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인간의 목소리가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라보엠(파바로티).jpg

무엇 때문에 오페라를 좋아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음악과 성악이 주는 감동이 시작이었지만 계속해서 오페라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유는 저 두툼한 “대본, 리브레토(Libretto)” 때문입니다. 녹음정보, 배역들 소개, 시놉시스를 읽어보는 것도 재밌었고 무엇보다 오페라 전곡의 대본을 옆에 두고 무대 위 로돌포와 미미를 상상하면서 음악을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오페라 음반을 구입할 때 리브레토가 없으면 구입을 망설일 정도로 저에게는 리브레토 유무가 중요하게 작용하였습니다. 가끔 CD만 들어있거나 리브레토 없이 줄거리 요약본만 달랑 들어있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주문 전에 반드시 리브레토가 포함되어 있는지 두세 번 이상 확인하고 구입했었습니다. 문제는 원어와 영어로 되어 있어서 좀 불편한 면도 있었죠. 당시는 누군가 한글로 번역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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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가 부르는 [amami alfredo, 알프레도 나를 사랑해 주세요]는 수백 번을 들어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30대가 됐는데 마치 중고등학교 감수성 예민할 때에 리치 블랙모어의 기타 프레이징에서 느끼던 그 닭살 돋는 느낌 그대로 전율을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29살 젊은 게오르규의 그 우아한 자태에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고 음반으로도 들었습니다. 처음 축배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마지막 병에 걸려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까지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묵직한 리브레토 역시 맘에 들었습니다. 극장에 가지 않는다면 [영상물 + 음반 + 리브레토] 오페라 감상에 최고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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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2천 년 전부터 구전되어 온 장르가 아니라 정확히 탄생 연도가 있습니다. 중세 암흑기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 과거 인본주의의 절정이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무대를 재현해 보기 위해 400여 년 전 피렌체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오페라는 그리스 비극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대사, 가사(레치타티보, Recitativo) 전달이 가장 중요한 의미였고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노래(아리아, Aria)보다는 시(詩), 문학(文學)이 중심이었습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극 중간에 서사를 “강조”하는 장치로 아리아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레치타티보 + 아리아] = 오페라의 형식입니다.

즉, 오페라는 레치타티보를 통해 무대 위에서 문학적 가치를 표현하고 아리아는 그 사이에 앞뒤의 서사흐름을 아름다운 노래로 강조하는 형태가 바로 오페라의 구조입니다. 이런 형식 덕분에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더욱 명쾌하게 극을 이해할 수 있죠. 레치타티보로만 극을 진행하면 상당히 지루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부분에 아리아를 집어넣어서 관객들에게 감정을 불어넣습니다. 제가 리브레토를 얘기하는 이유도 오페라 전체를 감상하기 위한 것 이기도 합니다. 아리아 몇 개만 듣고 오페라 전체를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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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라는 단어가 주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지만 오페라는 결국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들의 내용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랑하고 질투하고 헤어지고 희생하고 포용하는 인간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 피트 안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모여 연주하는, 문학과 음악을 통해 감동을 만들어내는 종합 예술입니다.


인류 최고의 콘텐츠인 오페라 관련 훌륭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명곡 아리아 모음집 및 줄거리를 짧게 요약해 놓은 책들도 많고 백과사전 같은 두꺼운 규모의 해설서까지 다양합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좋은 해설영상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리아만 듣는 것은 오페라극장에서 경험하는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포기하는 것이고 1~2페이지 분량의 줄거리 요약본을 보는 것은 짧은 시간에 얼개를 파악하는데 도움은 되지만 작품 속 진지한 디테일에 접근하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원본 리브레토를 그대로 번역한 책을 차근차근 읽어보면 가장 좋지만 고어(古語)가 많고 시적(詩的), 함축적인 대사로 인해 의미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본을 그대로 번역한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기도 하고 두꺼운 오페라 해설서는 초심자들에게 높은 벽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고전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소위 “읽기용 리브레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하여 오페라를 구성하는 레치타티보 전체를 편하게 읽기 쉬운 문어체 문장으로 펼치고 아리아 또한 직역보다는 앞 뒤 문맥에 맞게 최대한 스며들도록 다시 풀어나갔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의 계보라고 할 수 있는 로시니-도니제티-벨리니-베르디-푸치니의 작품 7편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페라 작품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 드보르작 만년의 작품 <루살카>등 10개 작품을 소개합니다. 극장에 가기 전에 단편소설처럼 읽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리브레토는 빠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오페라 음반이 출시되더라도 리브레토는 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라인 파일로만 제공되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문학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오페라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가고 그 매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페라작품 속에 담긴 아름다운 음악과 훌륭한 서사를 통해 위로받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