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 G. ROSSINI (1792~1868)
원작 : 피에르 오귀스탱 보마르셰 <세비야의 이발사>
대본 : 체사레 스테르비니
초연 : 1816년 2월 로마 아르젠티나 극장
때와 장소 : 18세기 스페인의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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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살면서 롤모델이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인데요, 사전적 의미로 롤모델의 뜻을 찾아보면 본인이 하는 일과 관련하여 닮고 싶거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대개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룬 사람을 모델로 삼곤 합니다. 어릴 때는 과학자, 대통령 등 막연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학교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리는 모델이 구체적으로 좁혀지게 마련입니다.
저에게 물어보신다면 작곡가 로시니의 “인생” 이 저의 롤 모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페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오페라 제목 정도는 들어 보셨을 거 같은데요, 로시니는 희가극 부분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뿐 아니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라 체네렌톨라>, <세미라미데>, <윌리엄 텔>등의 작품으로 지금까지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스칼라 극장에 들어가면 네 명의 작곡가 동상이 있습니다. 로시니(1792~1868),
도니제티(1797~1848), 벨리니(1801~1835), 베르디(1813~1901)입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시작과 최고 전성기를 만들어낸 인물들입니다. 로시니 선생은 이탈리아 오페라 4대 천황 중 한 명, 위 네 명 중 제일 맏형입니다.
제가 로시니의 “인생”을 롤모델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의 삶의 궤적 전체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인물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12살 때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37세가 되는 해에 작곡을 멈춥니다. 작곡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있지만 그가 직접 인생의 방향을 바꾼 계기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몇몇 간접적인 사실로 추론해 보자면 벨칸토 오페라의 시대가 더 이상 관객들의 반응을 얻지 못하면서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않았나 라는 얘기가 그나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당시 오페라의 흐름이 성악가들의 기교와 특유의 발성에서 대형화되고 개연성에 중점을 둔 드라마의 모습으로 진화하는 시기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청난 성공으로 부자가 되었기에 더 이상 작곡에 미련을 두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가 더 현실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천성이 워낙 게을러서, 젊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창의력이 떨어져서, 질병 등 여러 이유를 말하지만 그 이유야 어떻든 젊은 시절 작곡으로 부자가 된 로시니는 오페라 작곡을 스스로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미식가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그의 트러플, 송로버섯에 대한 사랑은 유명합니다. 음식에 대한 열정이 넘치다 보니 요리를 개발하기도 했는데 안심 스테이크 위에 거위 간과 송로버섯을 곁들인 ‘로시니 스테이크’라고 불리는 요리를 개발할 만큼 미식가로 인생을 즐겼습니다. 보통 스테이크보다 훨씬 두툼하고 양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저는 그가 인생 전체를 절반으로 나누어 작곡가와 미식가로서 살았던 인물이란 점이 흥미롭습니다. 두 가지의 인생 콘텐츠를 물리적으로 비슷한 시간과 비중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요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유행하듯 로시니 선생을 현재 21세기에 대입해 보면 파이어족이라는 말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인물이거든요. 그의 인생 전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이 알려진 작곡가로서의 삶보다 음식을 더 좋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25년간 작곡가 생활로 부와 명예를 얻고 37살에 은퇴하여 이후 39년간 미식가 셀럽으로 지내면서 인생을 풍요롭고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살았던 행복한 작곡가였습니다. 인생의 절반은 음악가로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삶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에 매력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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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는 클래식, 오페라 등 모든 고전음악계를 통틀어서 후대 작곡가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준 인물입니다. 베토벤과 동시대 작곡가로서 당시 유럽 전체에서 가장 유명인사는 로시니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그의 작품은 유럽 전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당시 핸드폰, 비행기도 없던 시절에 빈에서는 로시니 오페라를 보는 것이 베토벤 교향곡을 감상하는 것보다 훨씬 인기였으니까요. 그의 작품 중 <세비야의 이발사>는 희극 오페라(오페라 부파 opera buffa)의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의 연극이 원작입니다. 희곡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가 <세비야의 이발사> , 2부가 <피가로의 결혼>, 3부는 <죄 많은 어머니>입니다.
모차르트가 2부에 해당하는 희곡을 먼저 오페라로 만들었고 그로부터 30년 뒤에 로시니가 1부에 해당하는 세비야의 이발사를 오페라로 만들었으니 오페라 작품은 2부가 먼저 만들어졌지만 시간 순서대로 감상하시려면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를 먼저 보시고 이어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감상하시면서 등장인물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좋습니다. 권력자의 특권에 대해 대놓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뛰어난 음악성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서 탄탄한 플롯, 그 안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 벨칸토 성악의 아름다움, 절묘한 앙상블까지 <세비야의 이발사>는 최고의 작품입니다. 3부 <죄 많은 어머니>의 경우는 피가로의 결혼 이후 20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입니다. 오페라로 만들어졌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소재가 들어가 있어서인지 무대에 거의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벨칸토 오페라>라는 말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8세기에 이탈리아 오페라를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성악발성 기법입니다. Bel (아름다운) + canto(목소리) 즉,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말이며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등에 의해 만들어진 이탈리아 오페라 발성 양식입니다. 1800년 ~ 1850년 사이가 황금기였고 이 당시 오페라들은 드라마틱한 내용, 구조적 전개보다는 성악가의 화려한 기교와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대표작으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벨리니의 <노르마>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 베르디, 바그너가 등장하면서 관객들이 드라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대, 객석 규모가 커지면서 엄청난 성량을 요구하는 성악스타일에 밀려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서 마리아 칼라스, 몽셰라 카바예, 조안 서덜랜드 등 최정상 프리마돈나를 통해 다시 벨칸토 오페라가 극장을 다시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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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페라의 내용, 구조를 한번 살펴봅시다. 등장인물을 먼저 알려드리면 남자 넷, 여자 한 명입니다.
알마비바 백작, 피가로 ---- 로지나 ---- 바르톨로 , 바질리오
남자 주인공인 알마비바 백작(테너), 상대역인 로지나(메조소프라노), 그리고 제목에도 나오는 이발사역에 피가로(바리톤), 의사 및 로지나의 후견인 역할의 바르톨로(베이스), 음악교사인 바질리오(베이스)입니다. 이 5명 중 왼쪽의 남자 두 명이 한 편이고 오른쪽의 남자 두 명이 또 다른 한 편을 이루어 로지나를 사이에 두고 대결구도를 펼치는 흥미만점의 오페라입니다.
세비야에 로지나라고 하는 반듯한 아가씨가 살고 있습니다. 젊은 여자입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이한 점은 바르톨로라는 후견인 역할을 하는 사람의 집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당시 미성년의 여자는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다는 불합리한 점 때문에 나이 든 남자가 로지나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재산을 지킨다는 명목입니다. 로지나의 아리아를 들어보면 가사에 나는 자유로운 새와 같은 존재인데 언제 날아갈 수 있을까?라는 말이 나오는데 로지나는 현재 집 밖으로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고 바르톨로에게 통제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소위 나이 든 남자 바르톨로가 로지나의 재산을 탐낸다는 점이 첫 번째 갈등 요소입니다.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로지나와 결혼하려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로지나는 이 남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젊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죠. 바로 린도르라는 남자인데 이 남자는 백작입니다. 원래 이름은 알마비바 백작인데 린도르라는 가짜 이름으로 로지나에게 접근하려고 노력합니다.
여기까지 정리해 보면 젊은 남자 알마비바 백작(린도르)과 나이 든 남자 바르톨로가 대결 구도로 등장하고 중간에 젊은 여자 로지나가 결혼 상대로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린도르와 바르톨로를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씩 등장하는데 첫 번째로 알마비바 백작을 도와주는 인물로 이발사인 피가로가 나옵니다. 피가로는 마을의 해결사를 자처하는 인물로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이발, 면도, 가발 손질 등을 해주기 때문에 바르톨로와 로지나가 있는 집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피가로가 알마비바의 참모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 오페라를 보는 재미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이 든 남자인 바르톨로도 조력자로 바질리오라는 음악선생을 구합니다. 정기적으로 집에 와서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음악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사꾼 역할을 합니다. 품성이 좋지 않습니다. 로지나와 결혼하고 싶은 바르톨로와 함께 알마비바백작을 물리칠 계략을 꾸밉니다.
이렇게 양쪽의 대결구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로지나를 사이에 두고 [알마비바백작 – 피가로]가 한편이고 [바르톨로 - 바질리오] 두 사람이 반대편으로 맞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