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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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부파를 제외한 오페라에서 프리마돈나의 마지막은 비극적인 희생, 죽음으로 끝납니다. 감상하신 <리골레토>의 질다, <나비부인>의 초초상, <오텔로>의 데스데모나, <루살카>의 루살카 모두 죽음으로 카타르시스를 관객들에게 느끼게 합니다. 이런 시선으로 작품을 본다면 오페라 <투란도트>의 프리마돈나는 마지막 칼라프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 류가 되는 것이 순리일 것 같습니다.
잠시만이라도 각 배역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까요? 류의 죽음 이후 냉정하고 차가운 투란도트가 키스 한 번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어 칼라프에게 당신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외치는 연결고리가 너무 급작스러워 보이지 않으십니까? 물론 1막에서 핑, 팡, 퐁의 대사 중 비슷한 내용이 들어가 있고 칼라프의 아리아 중 나의 입맞춤으로 당신은 내 것이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 푸치니 생전 음악, 대본의 내용을 촘촘하게 파악하고 이후 작곡을 했을 겁니다. 프랑코 알파노(1875~1954)가 작곡한 류의 죽음 이후의 내용에 대한 얘기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인 칼라프가 오랫동안 자신의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주고 마지막까지 그의 이름을 얘기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류의 숭고한 모습을 보고 나서 곧바로 투란도트에게 키스를 하려는 것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류의 죽음까지 작곡을 마친 푸치니에 빙의해서 상상을 해보면 그 이후의 내용은 물론 음악을 명쾌하게 내놓지 못하고 그 압박감, 스트레스로 병이 더욱 심해졌을 거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더라도 라보엠의 미미, 나비부인, 마농레스코, 토스카 등 프리마돈나가 죽는 장면이 피날레입니다. 위에서 제 생각에 류가 주인공 같다고 했듯이 푸치니도 류가 죽은 후 상당히 고민을 했을 겁니다. 이후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해피 엔딩으로 끌고 가자니 너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후 알파노에게 작곡을 의뢰하는 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던 것과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입김 또한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토스카니니가 초연 무대를 지휘할 때 류의 죽음에서 진행을 멈추고 여기까지가 푸치니선생이 작곡한 부분이라고 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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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논란 때문에 <투란도트>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하는 무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직접 확인하실 수 있는 영상물 몇 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베리오 판본
먼저 음악적인 부분으로 알파노 버전이 아닌 이탈리아 현대음악 작곡가인 루치아노 베리오(1925~2003)가 류의 죽음 이후를 새롭게 작곡한 버전이 있습니다.
2002년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지휘 : 발레리 게르기에프, 연출 : 데이비드 파운트니), 2001년 초연
베리오의 차분하고 잔잔한 음악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푸치니와 너무 음악적 색깔이 달라서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오페라극장 실황이니 연출도 집중해서 보면 좋은데 현대에 기계화되어 소통 없는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연출입니다.
마찬가지로 2015년 스칼라극장 실황 영상물(지휘 : 리카르도 샤이, 연출 : 니콜라우스 렌호프)에서도 베리오 버전으로 오페라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2. 연출관점에서 새로운 시도 – 투란도트 자결 엔딩
류의 죽음 이후 투란도트가 자결하는 연출도 최근 무대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영상물로 참고하시려면 200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리세우대극장 무대에서 여성 연출가인 누리아 에스퍼트의 프로덕션이 있습니다.(1999년 초연) 갑자기 공주와 칼라프가 키스 후 사랑을 외치지 않고 마지막 장면에서 투란도트 공주가 칼을 들어 자신을 찌르고 죽습니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연출인데 남성의 힘에 의해 평범하고 온순하게 변할 수 없었다는 해석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2023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연출 : 손진책)의 투란도트도 마지막에 투란도트의 자결로 극을 마무리했을 만큼 여러 연출가들이 결말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와 자신이 가지려고 했던 여인 두 명 모두 죽고 남자 칼라프만 무대에 남게 되죠.
3. 미완성 피날레
마지막으로 2018년 토리노 극장에서 자난드레아 노세다 지휘와 스테파노 포다 연출의 투란도트는 류의 죽음, 즉 푸치니가 실제로 작곡한 부분까지만 연주하고 무대의 막을 내렸습니다. 푸치니가 작곡한 미완성 버전으로 마무리한 것이죠. 알톰과 칼라프 등 모두가 류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막이 내립니다. 남몰래 사랑하는 사람, 한 번의 눈길을 주지 않았던 남자의 이름을 마지막까지 말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 그녀가 무대 한가운데 마지막까지 관객들의 박수를 받습니다.
저는 이렇게 오페라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투란도트가 류의 죽음으로 사랑을 깨닫고 칼라프와 행복하게 살았다? 투란도트와 칼라프가 사랑을 외치며 만세를 부르는 엔딩은 제 기준으로는 드라마적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페라 해설에 앞서 미완성작품들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는데요, 푸치니의 사망 이후 작곡 및 연출에 대해 잠시 알아보았습니다. AI에게 푸치니의 다른 작품들을 학습하게 한 후 투란도트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 작곡을 맡기면 어떤 음악과 이야기로 마무리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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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이 반드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인 <투란도트>는 남자주인공 칼라프의 영웅적인 모습, 드라마틱 소프라노 투란도트의 단단한 성량, 서정적이고 가녀린 리릭 소프라노 류의 매력, 핑, 팡, 퐁으로 보는 코미디적 요소 그리고 푸치니 특유의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음악, 성악, 문학 최정상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낭만주의 오페라 마지막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