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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Oct 31. 2021

노욕의 나날들

방황은 현재 진행형

  헛걸음이었다. 꽤나 열심히 걸었는데, 시간을 쪼개어 겨우 계획을 이루는 듯했는데 그 끝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주말은 안되시는데요. 누구를 높이는지 알 수 없는 말에 한 마디 반항도 못하고 쿨하게 옮기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하루의 시작부터 불발에 그치다니. 적이 불안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제일 암울한 노래 가사라고 생각한다) 정처를 모르고 맴도는 시간이 일곱 시간째 이어지고 있다.

  굳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기는 이가 없었으므로 크게 의미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거 조금 걸었다고 발바닥이 저렸다. 이젠 지나치게 오래 앉아 있어 허리가 저릴 지경이고. 방구석에 누워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면 팔이 저렸겠지. 인생이란 어딘가는 저리고야 마는 것인가 보다. 30분마다 한 번씩은 자세를 바꾸어 주아야 한다던 정형외과 전문의의 소견에 따라 다리를 이리 꼬고 저리 꼬고 있다. (이렇게 하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었다) 천장에 달라붙은 시스템 에어컨의 찬 바람이 머리카락 끝을 살랑살랑 흔든 지 무려 다섯 시간 가까이 되어가니까, 제주도 컨셉이라고 만들어 놓은 카페는 삼다도의 별칭 중 하나만큼은 확실히 확보해 놓은 셈이다. 한기에 슬슬 몸이 떨려 오지만... 눈치 안 보고 혼자 몇 시간씩 버티기에는 구석진 이 자리만 한 곳이 없기도 해서, 돌담처럼 찬바람을 온몸으로 견뎌 내고 있다.



  나는 내가 가을을 사랑하는 줄 알았다. 여름은 지나치게 뜨겁고 더위와 습기는 지독하니까. 아침저녁나절로 찬 바람이 일고 마주 댄 살갗에서 더는 땀이 차지 않는 이 계절에는, 높은 하늘 아래 구르는 낙엽을 보며 늘 행복했었을 거라고 착각했다. 내 가을은 늘 가혹했는데. 모자람의 미학을 갖춘 기억력이 번뇌의 과거를 무참히 지워버렸나 보다. 그렇다고 지난 메모를 깔끔히 정리할 만큼 꼼꼼한 사람이 되지도 못해서. 예나 지금이나 나는 참 어려운 계절을 살고 있구나.



  괴로우면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괴로워야 쓰는 사람이었다. 즐거우면 굳이 쓰지 않았다. 낙서로 숨은 나의 기록은 그래서 늘 고통의 토로로 가득하다. 사실 한동안은 쓸 일이 없었다. (행복했었나 보다.) 그래서 취미가 뭐예요, 하는 물음에 감히 답할 수 없었다. 글 쓰는 게 취미에요, 하고 대답하자니 내가 글을 쓴 적이 대체 언제람? 깜깜하기만 해서, 그우물쭈물했다. 물은 분도 대답이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는지 재차 묻지 않아서, 그렇게 취미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워서 넷플릭스 봐요,라고는 대답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거짓말쟁이네, 이제 보니.)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하던 때도 있긴... 있었다. 문장을 마구 뱉어내고는 스스로 생경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솔직히 말하자면, 말라비틀어진 문장을 다듬기도 버겁다. 생각도 영혼도 담기지 않은 문장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보자면... 얼마 전부터 욕심이 차오르는 모양새다. 반가운 일. 노욕으로 벌인 시도가 새로운 자극을 일깨웠다. 민망함을 감추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중얼거렸다. 괜히 한다고 했나 봐요. 하지 말 걸 그랬어요. 지금이라도 무를까요?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스스로를 위해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 너머로 성취감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다른 것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남는 게 시간이었으므로, 바쁘다는 핑계만큼이나 휴대폰을 들어서 저린 팔과 함께 넉넉한 시간을 다 흘려버리고 있었으므로.



  작문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의 문장은 쓰레기였군!... 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부끄러웠다. '적의'를 느끼는 '것들'. 어쩐지 자꾸 '것'을 겹쳐 써 놓고는 석연찮더니. 작법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리를 불사르고, 앞으로, 앞으로... 불신이 많은 사람이라 작법 책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꾸지람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한 자도 쓰지 못하면서 허리가 아프도록 카페에 앉아 있다. 오랜만에 블루투스 키보드만 열심히 충전시켰네. 다섯 시간을 엉덩이를 붙인 끝에 내내 딴짓하다가, 마지막 20분 만에 이 쓸데없는 문장을 여기까지 이어냈다. 내 문제는 나도 알아요.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그래도 괜찮아요. 무언가를 많이 써냈으니 오늘은 이걸로 되었어요. 일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노래도 해야 하는데. 아, 당연히 넷플릭스도 봐야 하고 축구 경기도 봐야 하지. 다행이랄까.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노욕'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그래도, 그래도 아직은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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