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겨울 Jan 03. 2021

텍스트의 맥락적 이해②

날아라, 원더우먼은 언제나 코카-콜라



날아라, 원더우먼


  원더우먼이 있다. 8등신의 늘씬한 미녀, 성부-성자-성령도 아닌데 DC코믹스의 트리니티로 불릴 만큼 슈퍼맨, 배트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장 인지도 높은 여성 히어로. 그 이름이 능력 있는 여성의 대명사처럼 쓰일 정도의 유명세를 지닌 영웅이다. TV 드라마 시리즈로 캐릭터를 접한 어른들(도대체 얼마나 어른일는지!)은 화려한 손놀림으로 팔찌를 이용해 총알을 튕겨내는 모습이나,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올가미를 휘두르는 여전사를 떠올릴 텐데, 원더우먼의 창작자인 심리학자 윌리엄 몰턴 마스턴(William Moulton Marston) 박사가 처음 이 캐릭터를 고안할 때의 핵심 발상은 '사랑'이었다고 한다. 힘이 아니라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을 만들어 보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코믹스의 영웅에 대해 소개하려는 목적은 아니고, <텍스트의 맥락적 이해>라는 제목을 달고 쓰는 두 번째 글을 원더우먼으로 시작하게 된 연유는 사실 저 아래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푸근한 인상으로, 두둥실 떠 가는 저것 말이다.

  

왼쪽을 A, 오른쪽을 B라고 해 보자


  비대하다. 감고 있는 것인지 그저 살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인지 알 길 없는 눈자위 아래에는 일(一) 자로 앙다문 입술이 있다. 불룩한 볼과 턱에 거하게 잡힌 살들로 인해 더욱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덕분에 늠름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짧은 팔다리와 터질 듯한 뱃살을 제외하고 나면, 머리의 관과 몸통의 코스튬은 정확하게 원더우먼의 그것이다. 유유히 하늘을 나는데 특화된 신체 조건으로 보이지만, 그 외 지구의 안녕을 맡기기에는 어딘가 못 미더운 모습이다.


  두 원더우먼을 나란히 놓고 보니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다. 남학생들에게 물었다. 왼쪽을 A라 하고, 오른쪽을 B라고 해 보자. 둘 중 한 명을 골라 연애할 수 있다면 누구와 하겠니? 수준 낮은 질문에 아이들은 다 알면서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저 몸의 형태만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 주변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쪽이니?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오는 길이나 물건을 사러 마트에 갔을 때나, 그런 일상생활에서 말이야.


  "솔직히 B도 몇 없지만 A도 많지는 않아요."


  질문자야 말로 편견에 갇혀 있었던 모양. 수업 전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으나 저 대답이 오히려 사실에 가까운 것이리라. 우리 모두 땀을 쏟아 가며, 쇠질을 하며 참 열심히도 살고 있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이기도 하고……. 그럼 질문을 바꾸어 볼까? TV에, 매스컴에, 유튜브에, 인스타에, 더 많이 올라오는 사진과 영상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A에 가깝니, 아니면 B에 해당하니? 이어지는 대화의 내용을 구태여 다 옮기지 않아도, 두 그림을 나란히 놓고 할 수 있는 말에 대해 쉽게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강요된 여성성>, 혹은 <강요된 아름다움> 정도의 제목을 붙이면 적당할까. 여성성이라고 표현했지만 자유롭지 않은 것은 남성이라고 다를 리 없다. 남성성(masculinity) 또한 강요되기에. 물론 건강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몸매를 가꾸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라면 이러해야지, 남자라면 이런 것들을 갖추어야지, 하는 사회적 통념이 우리를 조종하고 지배한다면, 그리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 대한 낙오를 당연시한다면 그것은 문제를 삼아 볼 만한 일이다. 실제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전원을 켠 텔레비전 속에서, 점심에 훑어본 포털의 메인 기사들 사이에서, 잠들기 전 손에 꼭 쥐고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액정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닌가?


원더우먼 옆자리를 이번에는 미키 마우스가 차지하였다. 무엇이 보이는가?


  원더우먼의 옆자리에 이번에는 다른 그림을 놓아 보았다. 누가 보아도 미키마우스다. 파란색 배경을 바탕으로 총총 박힌 하안 별들과, 그 옆으로는 흰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는 줄무늬가 그것을 채우고 있다. 미국의 국기, 성조기를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그러자 조금 전 다른 체구의 두 원더우먼을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원더우먼의, 그…… 속옷에 가까운 하의는 파란색, 하얀 별들로 장식된 무늬다. 상의와 부츠는 흰색과 붉은색의 교차로 이루어져 있다. 무얼 많이 입지는 않고 있는데, 그마저도 온몸에 두른 것이 성조기의 상징색들이구나!


성조기 앞에서 까꿍


  다른 히어로의 상징색의 범주도 원더우먼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성조가 그 자체인 옆동네의 '미국 대장', 캡틴 아메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붉은색과 푸른색 조합의 스파이더맨은 영화에 나오면 꼭 저렇게 미국 국기를 배경으로 포즈를 한 번 취한다. 성조기의 포토존은 아이언맨과 슈퍼맨도 빠질 수 없는 맛집인 모양. 심지어 귀여운 곰돌이 테디 베어는 아예 미군이 되었다. 지금까지 본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면? 글쎄, <세계를 지키는 경찰국가 미국> 정도가 어떨까? '문화 승리'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보다. 영화와 문화 산업 전반에 포진한 히어로들은 성조기를 두른 절대선이 되어 불철주야, 오늘도 열심히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사랑의 힘으로 지구를 지키는 원더우먼은 변함없이, 그녀의 무기인 올가미를 움켜쥐고 적들을 향해 도도한 고개를 치켜들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는 문득 강요된 아름다움에 대한 의문이 되었다가, 이내 문화 승리를 외치는 미국에 대한 자각이 된다. 이 다양한 해석은, 그저 그 옆에 어떤 그림이 함께 놓이느냐에 달려 있다. 맥락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언제나 코카-콜라


  9.11 테러의 밤을 기억한다. 뉴욕의 고층 빌딩을 들이받는 비행기의 충돌 화면만 반복해서 송출하던 저녁 시간의 뉴스를 보면서 누구도 테러라는 용어를 생각해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누군가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냐고 했고, 경로를 이탈한 비행기에 의한 사고가 아니냐고도 했다. 또 다른 비행기의 충돌, 펜타곤 공격 등이 이어지고 나서야 앵커가 비로소 테러의 가능성을 확정적으로 언급했던 기억이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 본토가 외국 세력에게 공격받은 최초의 사건, 엄청난 충격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테러는 곧 전쟁으로 이어졌고 전쟁은 연달아 벌어졌다. 그에게는 역사상 가장 높은 현상금이 붙었다. 한화로 약 540억 원 정도. 그의 등장 이전에 최고 액수의 현상금 기록 보유자는 김원봉이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김구.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에게 터무니없는 현상금을 붙인 까닭이었다. 김원봉이 100만 원, 김구가 60만 원이었는데, 오늘날로 치면 약 320억 원, 2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이들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악당에 등극한 오사마 빈 라덴의 사진 옆에 가져다 붙인 것은 다름 아닌 코카-콜라. 붉은 산타의 전형을 만들어내고, 북극곰이 애음할 뿐만 아니라 삼풍백화점에 며칠을 굶으며 매립되었던 구조자가 물보다 먼저 찾았다는 이 음료가 대체 그와는 무슨 상관일까? 전혀 관계없는 두 텍스트를 이어 붙인 맥락을 한 번 짚어 보자.


  오사마 빈 라덴이 죽은 것은 뉴욕의 테러로부터 10년이 지나서였다. 전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떨게 했던 폭력과 파괴의 괴수가 드디어 정의의 수호자 미국의 손에, 용감무쌍한 전사 미군 특수부대 요원들에 의해 처형된 것이다. 이로서 정의는 승리했고, 곧 도래할 세계 평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 세계 평화는 찾아왔는가?)


  무고한 다수의 민간인을 살상한 테러리스트의 죽음에 동정 여론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파키스칸의 그의 안전가옥에 들이닥친 해군특수전개발단의 특수부대원들이 교전을 거쳐 그를 사살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대통령 오바마를 비롯한 미국의 수뇌부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연설("Justice has been done.")에 미국인들은 국가를 부르며 환호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댓글로나마 미국(의 군사력/기술력)에 대해 칭송하며, 한 발 더 나아가 한반도 북부의 독재자도 처치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세계의 정의를 실현하는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에 대한 거부감은 딱히 들지 않았다.


  1991년 12월, 소련 연방이 해체되었다. 그리고 1992년 슈퍼맨은 최강의 적 둠스데이를 맞아 싸우다 동반 자폭했다. 코믹북「The Death of Superman」의 얘기다. 슈퍼맨의 판권을 가진 DC코믹스가 영웅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전개를 설정한 일차적인 이유는 우선 슈퍼맨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었다. 슈퍼맨이 너무 강력한 탓에 배트맨 등 다른 영웅들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재미가 반감되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이 채 되지 않았는지, DC코믹스의 영화화 작업에 있어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박민규의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에 의하면, 슈퍼맨이 죽어야 했던 진짜 이유는 소련이 몰락해 버린 까닭이었다.


  원폭에 의한 패전으로 콤플렉스에 빠진 일본 사회를 구원한 것은 우주소년 아톰이었다. 원자력을 이용한 작고 귀여운 로봇이 덩치 큰 백인 로봇들을 이겨내는 모습은 패전국 일본의 간절한 소망의 반영이었다. 이와 같은 '문화 승리'의 사례는 코믹스나 스포츠 등 문화 전반에서 종종 관찰이 가능하다. 걸프전 때에는 배트맨이, 이라크전 때에는 스파이더맨과 헐크가 만들어졌다. 성조기를 두르고 등장한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이 사담 후세인을 상징하는 아랍계 프로레슬러 서전 슬로터를 단박에 잠재워 버린 것은 걸프전을 앞둔 시기였다.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되자 슈퍼맨은 존재의 이유를 잃었다. 슈퍼맨의 뒤를 이어 배트맨이 영웅들의 리더 자리를 물려받았다. 배트맨이 된 것은 브루스 웨인, 상상을 초월하는 억만장자였다.


  소설 「지구영웅전설」에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구현해 나가는 영웅들의 활약상이 그려진다. 자유세계의 구세주로서 슈퍼맨이 나타난 것은 1938년, 대공황기의 말미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코앞에 닥친 시기였다. 슈퍼맨은 정의의 실현을 위해 싸워나간다. 원투 스트레이트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방의 펀치로 전쟁을 종결시키고, 이어 "빨갱이"들과의 길고 지루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테러를 일삼는 "나쁜 무리"의 도발을 철저한 응징으로 되갚는다. 슈퍼맨은 "빨갱이"를, "나쁜 무리"를 통째로 없애버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을 위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자유진영의 경제를, 군수 산업을, 이와 연관된 기간산업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죽은 것으로 설정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음지에서 왕성히 활동을 이어나가는 정의의 왕자 슈퍼맨은, 현명하게도 이러한 것들을 아울러 판단해 세계를 지켜나간다.


이것은 패러디일 뿐이다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은 그가 가진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자유 무역 체제를 구축하는 것에 주력하는 영웅이다. IMF와 WTO 체제를 통해, 이들 체제의 전 세계적인 확장을 통해 세계의 정의를 유지해 나간다. 원더우먼은, 그러니까 꼭 끼는 팬티를 입은 원더우먼은 투명 비행기를 타고 각국의 상공을 날아다닌다. 이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흥분과 환희에 겨워하는 선량한 사람들의 파라다이스를 형성해 나간다. 이탈리아 국회의원 치치올리나의 슬로건을 빌리자면 "전쟁 에너지를 낮추고, 섹스 에너지를 높이는 것(실제 선거 슬로건이었다)"이 원더우먼 활동의 주목적이다. 도미노 피자와 맥도널드의 깃발을 세계 곳곳에 꽂는 자본주의의 세계 지배 전략은 실제적으로 유효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성공적인 모양이다.


   “펩시든 코카콜라든 가리지 않고 콜라를 아주 많이 사갔어요. 우유는 네슬레만 샀고 비누와 샴푸도 늘 최고급 제품만 썼죠. 늘 현금으로만 결제하던 고마운 손님이었어요.


  오사마 빈 라덴이 사실당한 주택에서 150m 떨어진 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안줌 카이사르 씨(27)의 회고다. 빈 라덴의 심복 라시드, 아크바르 칸 형제는 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콜라를 사 갔단다. 다른 음료수가 아닌 물과 경쟁을 통해, 전 세계인의 혈관 속에 코카-콜라를 흐르게 하겠다는 코카-콜라 사장의 위대한 목표는, 미국과 사투를 벌였다던 빈 라덴의 혈관 속에서도 동일하게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빈 라덴의 사정이 그러할진대, 자유진영의 우방국에서 태어나 디즈니 만화에서 백인 왕자와 백인 공주의 사랑을 지켜보며 가슴 설레어했던 우리,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풀럼 셔츠를 입고 나이키 신발을 신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가는 우리는 어떨까?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미국이 행하는 정의의 전쟁에 기대를 걸고, 시민권을 얻고자 원정출산을 하고, 자식들을 위해 기러기 아빠가 되고, 미국에 가면, 유럽에 가면, 영어를 배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최소한 배낭여행지로는 유럽 일주를 가장 선호하는 이중성은 지나치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남을 부러워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도록 조장하는 이 사회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이상향은 알프스가 되고, 그 도피처는 결국 시민 의식이 성숙한 서구 유럽의 한 나라로 삼는 이 상황에서 과연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느냐고,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병 주둥이를 밀어 넣고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목구멍을 자극하는 탄산의 알싸함을 느끼는 장신의 아랍인 테러리스트가 묻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