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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Nov 10. 2020

텍스트의 맥락적 이해①

<만종>과 <게르니카> : 맥락으로 명화 읽기

  오늘도 무수한 텍스트(text)가 우리 시야를 스쳐간다. 텍스트라 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문자 언어로 이루어진 매개만을 뜻하지 않는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소통할 목적으로 생산한 모든 인공물은 텍스트라는 정의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우리는 이 텍스트를 그 자체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텍스트는 그것을 둘러싼 맥락, 즉 컨텍스트(context)를 고려할 때 비로소 분명한 의미 가운데 놓다. 동일한 텍스트라도 다른 맥락에 놓일 경우 그 이해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맥락을 면밀히 살펴낼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진의를 분명히 파악해 낼 수 있다.


  맥락은 반드시 텍스트 바깥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텍스트 내에 위치할 수도 있다. 텍스트의 요소 하나를 다르게 읽어낼 경우 그 안에서 전혀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낼 수도 있다. 텍스트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어 맥락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수많은 텍스트들은 끊임없이 연결되고 교차하며 우리를 의미의 세계 가운데 밀어 넣는다.


이삭 줍는 여인들의 뒤편에 추수하는 일꾼들이 보인다.

  <이삭 줍는 여인들>, <씨 뿌리는 사람>과 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19세기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와 밀레(1814-1874)는 유독 농부들의 일상을 주요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농촌의 고단한 일상은 익숙한 것이었다. 곤궁하고 비참한 노동 계급의 삶은 그의 그림 속에서 숭고하게 승화되었다. 그의 대표작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추수가 끝난 들판에 남아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이들은 최하층의 빈민이었다. 이삭 줍기란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가난한 자들을 위한 까치밥인 셈인데, 그 옛날 성서의 율법에서부터 근거를 찾아볼 수 있던 서구의 전통이었다. "여러분이 추수할 때 미처 거두지 못한 곡식단이 생각나거든 그것을 가지러 가지 말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거기 버려두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신명기 24:19, 현대인의 성경)" 남은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이 그림의 중심을 이루는데, 그들 너머 지평선을 따라서는 산더미처럼 짚단을 쌓아 올린 부농의 무리들이 배치되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실주의(Realism) 혹은 자연주의(Naturalism)로 분류되는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정치적 의도로 읽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당시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되어 가던 사회주의자들은 그의 그림에 찬사를 보냈다.


  역설적이게도 밀레의 그림은 자연 속에서의 일상을 담았다는 점에서 논쟁적이었다. 또 다른 대표작 <만종> 원제는 삼종 기도(L' Angelus)로, 이는 대천사 가브리엘 예수 잉태를 예고한 사건을 기념하여 올리는 기도를 의미했다.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시, 이렇게 하루에 세 번을, 3회에 걸쳐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드리는 기도인데, 작가는 여기에 "감자의 수확을 위한 저녁 시간의 기도"라는 부제를 붙였다. 작업을 막 멈춘 남자의 쇠스랑 앞에는 감자 낟알이 뒹굴고 있고, 여인의 발치에는 오늘 하루 수확한, 아마도 그날의 저녁 식사 재료가 될 감자 바구니하나 놓여 있다. 멀리 교회에서 발원한 저녁 종소리의 은은함 앞에, 부부는 평안한 하루의 맺음에 감사하고 또 수확을 바라는 기도를 신께 올린다. 평화로운 전원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하루 종일 흘린 땀방울을 보듬으며 저녁의 쉼으로 나아가기 직전의 부부의 모습에서 건전한 노동의 가치의 아름다움이, 가난함에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신앙 숭고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도 이 그림을 참 좋아했다. 이유는 조금 달랐던 듯싶지만. 지나친 거룩함이 어쩌면 뻔하게도 느껴지는 <만종>을 어떻게든 비틀어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림에 대해 철저하게 그 다운 해석을 놓기도 했다.


  "이 그림에서 이 고독한 황혼 녘 죽음을 암시하는 배경은 시의 텍스트에서 수술대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지평선에서는 생명이 꺼져 가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언제나 인류를 의미해 왔던 경작지이자 살아 있는 실체적 살에 건초 쇠스랑까지 꽂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쇠스랑이 생산력에 대한 왕성한 욕망을 가지고, 정교한 메스가 절개하는 것과도 같은 특유한 자세로 스스로 박혀 있다는 것이다."

  "그림 속의 그 남자는 발기한 자신의 상태를 감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지만 창피하고 의심스러운 모자의 위치를 고려하면 오히려 그것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그와 마주 선 재봉틀, 누구나 알아볼 만큼 심하게 특성화된 여성의 상징인 재봉틀은 심지어 더 나아가 자기 재봉틀 바늘의 치명적인 카니발리즘적 속성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 살바도르 달리, [밀레의 만종에 대한 편집증적 비평에 대한 해석-1933년 미노타우로스] 중에서


  달리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이 그림에 집착했다. 여러 패러디, 또는 오마주에 해당하는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쇠스랑으로부터 발기를 지나 카니발리즘으로 이어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식의 흐름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여인의 발 앞에 놓인 감자 바구니에 대한 것이다. 초현실주의에서 초능력주의까지 섭렵하였는지, 달리는 바구니에서 영아의 시신을 담은 관을 투영해 내고,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다. 그 주장대로 감자 바구니의 위치에 영아의 시신을 담은 작은 관을 하나 배치하게 되면, 그림에 대한 해석은 전혀 다른 지점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부부의 아이가 죽었다. 사인(死因)은? 아사(餓死)이지 않겠는가. 감자로 끼니를 겨우 때우는 가난한 부부의 슬하에 태어난 죄로,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하였을 테다. 영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이었으므로 어떤 질병을 상상하여도 이상할 것은 없다. 어쨌든 부부의 가난은 그것을 치료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므로. 아이의 관을 바닥에 내려놓은 부부는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림 그대로 그들은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기도의 내용은 전혀 달라진다. 먼 종소리와 함께 드리던 고요한 감사 기도에서, 생애를 다 피우지 못한 어린아이를 땅에 묻기 전의 비극적인 고통의 기도로. 거룩하고 경건한 그림의 풍경은 가난에 희생당한 생명에 대한 고발, 하루를 마무리하게 해 주심에 대한 감사의 기도는 슬픔의 장례식의 한 장면으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1963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의 복원을 위해 자외선 조사를 하던 도중, 감자 바구니의 붓 자국에 덮인 작은 상자의 존재를 확인하였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가설의 강력한 근거로 알려졌다. 계속된 덧칠을 통해 완성되는 유화인 만큼, 밀레가 처음에 아이의 관을 그려 넣었다가 그림을 완성해 나가며 그 위에 감자 바구니를 덧입혀 처음의 의도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밀레의 사회비판적인 면모를 고려하였을 때 충분한 개연성까지 확보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육면체의 틀이 바구니 아래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어린아이의 시신을 담은 관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림의 구도를 잡기 위해 그려 넣은 기하학적 도형하나일 수도 있으므로. 육면체의 존재는,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로는 충분하나 그것을 확대해 나갈 근거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살바도르 달리의 언급에는 직접적으로 어린아이의 관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달리는 <만종>에 몹시 관심이 많았지만, 위에서 인용한 대로 그의 해석은 폭력이나 성적인 요소를 언급하고 있을 뿐, 어린아이의 관을 통한 사회 비판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밀레 자신이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만종]은 내가 옛날의 일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라네. 옛날에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 저녁종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면 그렇게 우리 할머니는 한 번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우리 일손을 멈추게 하고는 삼종 기도를 울리게 하셨는지 모르겠어. 그럼 우리는 모자를 손에 꼭 쥐고서 아주 경건하게 고인이 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했지."
                                                 - 즈느비에브 라캉브로 외, [밀레] 중에서


  모자를 손에 꼭 쥔 것이 적어도 달리의 말마따나 무언가 부끄러운 것을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 이제는 결론을 내릴 시점이다. 저것은 저녁 식사를 위한 감자 바구니일까? 아니면 가난 희생에 대한 고발인가?


  사실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명확히 드러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밀레는 육면체 위에 감자 바구니를 그려 넣었고 그것으로 그림을 완성다. 그리고 여기에 경건한 기도의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여기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은, 두 부부 사이에 놓인 무언가가 그림을 결정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림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 맥락을 결정하고, 그 맥락에 따라 텍스트 또한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해석의 여지는 다양한 패러디로 변주되기도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디즈니 성을 배경으로 역시 기도를 드리는 미키와 미니 마우스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온갖 생활 쓰레기들을 이어 붙인 콜라주의 패러디에서, 부부는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서 있는 듯하다. 히피와 같은 차림새의 흑인 남성과 비대한 몸집의 백인 여성, 그리고 그 뒤에는 식료품들을 가득 담은 쇼핑 카트가 놓여 있다. 두 손을 모으고는 있으나 여성은 풍선껌을 불고 있다. 남성의 자세 역시 기도 하는 모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조금의 경건도 잃어버린 두 사람의 사이에는, 그러니까 원본 그림의 감자 바구니의 위치는 우는 아이가 놓여 있다. 영아의 관에 대한 소문을 반영한 것일까? 19세기의 하층민을 21세기의 빈곤층으로 치환해 낸 이 작품에서의 두 남녀는, 비만이 부가 아니라 도리어 가난의 표식이 되어 버린, 자본주의 사회 속 도시 빈민에 대한 현대적인 각색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다른 텍스트가 때론 동일한 것을 말하기도 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그림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림은 반전(反戰)과 평화에의 염원을 의미했다. 에스파냐 내전, 선거를 통해 정당한 절차대로 집권한 좌파 정부에 반대하여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부가 반란을 일으켰다. 나치 독일은 프랑코의 군대를 지원하였다.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 상공에 나치 독일의 폭격기가 나타났다. 24기의 폭격기는 다양한 폭탄을 엄청나게 쏟아부으며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게르니카 상공을 뒤덮은 폭발물은 24톤에 달했다.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요, 별다른 군대가 주둔해 있지도 않은 이 마을을 폭격한 이유에 대해 여러 변명이 있었으나, 더 큰 전쟁을 기획하기 전 무기의 성능을 시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유력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민간인들에 대한 살상이 이루어졌다. 하필이면 그 날에 장이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천오백여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났다.

  피카소는 분노했다. 분노는 가로 7미터가 넘는 거대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이 당신이냐는 독일군 장교의 질문에 당신들이 그린 그림이라 답한 피카소의 일화는 유명하다. 피카소는 이 그림에 대해 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예술은 장식이 아니다. 적에게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다.


  이 작품을 복제한 테피스트리가 뉴욕의 UN 본부에 있었다. 2003년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9.11 테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UN 안전보장 이사회 회의실로 향했다. 전쟁을 선포하는 그의 뒤에 <게르니카>가 있었다. 장관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기자회견을 멈추었다. 그림을 암막 커튼으로 가린 이후에야 그의 선언은 계속될 수 있었다. 어떠한 정당한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반전의 상징 앞에서 전쟁을 말할 수 없었다. <게르니카>는 또 다른 맥락을 만들어 내었다. [계속]



- 참고자료

만종에 대한 달리의 해석, 밀레의 목소리를 여기에서 재인용함: https://leipiel.tistory.co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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