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권한 병목 현상
회사 행사에 갑자기 굿즈를 제작해야 돼서 촉각을 다투며 알아보는 중입니다. 폭풍 웹서핑을 하다 실용적이면서 가격도 괜찮은 상품을 발견했죠. 이거다 이거!
고객: 안녕하세요. 굿즈 200개 주문하려는데요. 이번 주말까지 꼭 받아야 해서요. 일정이 가능한가요?
직원: 잠시만요- 생산팀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보통 잠시라고 하면 우린 그동안 다른 일을 하기가 참 힘들잖아요. 괜스레 모니터 앞을 서성였죠. 1시간이 지나서야 답변이 왔습니다.
직원: 고객님! 가능합니다.
고객: 근데 로고 넣고 색상 커스텀 가능할까요?
직원: 잠시만요- 디자인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잠시라고 한 잠시가 또 왔습니다.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과연 나와 대화하는 상담원과 오늘 안에 주문을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직원: 고객님! 커스텀 가능합니다.
고객: 근데 대량 주문에 가격 할인은 적용 안 되나요?
직원: 잠시만요- 영업팀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고객: (...)
저는 깨달았습니다. 잠시가 잠시가 아닌 것을요. 메신저 너머 담당자의 한숨이 느껴졌습니다. 질문하는 제가 미안할 정도였죠. 여러 부서에서 답변도 안 해주고 얼마나 답답할지. 그래도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어서 한 번에 속 시원하게 문의를 처리해주는 곳에 주문을 넣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상담사와 대면하면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잠시만요-를 외치는 사이에 고객은 훅 떠나갑니다.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유일한 강점이 바로 '신속성'일 텐데요. CX로 권한 위임이 가능할 때 스타트업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며 빠르게 성장한다.
이슈가 생겨도 해결하며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고객과 접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발견한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려면 조직의 '권한 퍼널'을 효과적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권한 퍼널은 단계적으로 구분이 가능한데요. 1단계는 사업부에서 승인하는 구조이죠. 2단계는 반복되는 이슈에 대해서는 권한을 CX 담당자에게 넘길 수 있습니다. 3단계는 고객이 별도의 문의 없이 프로덕트 안에서 권한을 가집니다.
권한이 사업부에 몰리면
병목이 생기고 성장은 정체된다!
"죄송합니다. 언짢으셨겠어요. 이걸 어쩌나...ㅠㅠ"
일을 하다 보면 예측 불가한 사건으로 고객 불만을 초래할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때 초기에 몸빵으로 때워주는 것이 CX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주방에서 음식이 잘못 나와도 고객 클레임을 받는 것은 홀 직원인 거죠. 하지만 어떤 무기도 없이 클레임을 받으면 고객의 불만을 더 키우는 앵무새가 되기 십상입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고객 감동 서비스로 유명한 중식 프랜차이즈 '하이디라오'는 모든 홀서빙 직원에게 파격적으로 '공짜 식사' 권한을 주었는데요. 직원들도 권한을 가지고 손님들을 대하니 "인류는 이미 하이디라오를 막을 수 없다(人类已经不能阻止海底捞了)"로 다양한 고객 감동 서비스 썰이 전파되고 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보통의 상담원들에게 이런 무기를 손에 쥐어 줘도 사용률이 20%~3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권한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판단하지도 않았던 거죠. 권한의 맛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으로 한 직원이 취업 기념으로 가족들에게 공짜 식사를 쏘는 걸 베스트 사례로 발표할 정도였어요. 오퍼레이터여, 이제 권한에 익숙해지세요!
"잠시만요. 팀장님께 여쭤볼게요..."
업무를 하다 보면 이건 내가 결정할 일인가, 컨펌을 받아야 할 일인가 눈치 게임을 할 때가 많습니다. 사사건건 물어보면 센스가 없는 것 같고, 안 물어보고 했다가 나중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인 거지요.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클래스 101'에서는 안타까운 사정으로 수강 기간을 놓친 고객들이 참 많은데요. 과거에는 사업부 승인이 난 후에나 수강 연장이 가능했습니다. 클래스 101의 상담원 한별님은 수강기간을 놓친 안타까운 고객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는데요. 절절한 사연을 쓰다 보니 라디오 작가를 꿈꿀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CX팀의 업무 로드가 무거워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고객들도 기다리다 지쳤죠.
어느 날 한별님은 라디오 사연 작가 노릇을 하다가 현타가 왔죠. 기다리는 고객에게도 미안하고, 일은 일대로 쌓이니. 그녀는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을 멈추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이때 내부 설득을 위해서 상담 통계 데이터를 까 보기 시작했죠.
우선 숫자로 팩트를 전달했죠.
"데이터를 보니 수강연장 문의가 Top 5 안에 들고, 서포트 봇 클릭률 40%가 수강 연장에 대한 것이다. 이것만 핑퐁을 줄여도 다른 상담을 얼마나 더 친절하게 할 수 있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컨텍스트를 전달해 사태의 심각성도 강조했죠.
"수강권 연장을 요청하는 분 중에 재생을 한 번도 안 한 고객들도 있다. 그들은 수강권 연장 조치가 늦어지면 차라리 환불을 해달라 요청한다. CX에서 자체적으로 수강권을 연장하게 해 주면 잘 관리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조직을 설득해서 클래스101에서는 수강권 연장을 CX팀 권한으로 관리하고 있어요.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문의는 이슈를 제기하고 CX팀에서 권한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권한이라면 데이터라는 무기로 설득해서 적극적으로 가져옵시다.
오퍼레이터는 '모두 내 탓이오' 하면서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걸려서 묵묵히 일하면 안 됩니다. CX팀은 내 사람(=고객)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끔 악역을 맡은 내부 고발자가 되어야 하는데요.
클래스101 사례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수강권 연장을 요청하는 것이 오로지 고객만의 잘못일까요? 실제로 프로덕트의 문제로 수강권 연장 요청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품팀과 논의해서 해결해주는 것이 CX팀의 역할입니다.
수강 기간 얼마나 남았는지 투명하게 알 권리
➡️ 남은 수강 기간을 주기적 리마인드 시키자!
준비물 배송이 늦어지면 수강 기간이 연장될 권리
➡️ 고객이 직접 수강 시작일을 설정하게 하자!
개인 사정이 생기면 정지해놓을 수 있는 권리
➡️ 프로덕트 내 일시정지 기능을 추가하자!
한편 수강권 연장은 완강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클래스101은 수강권 연장을 해서라도 완강의 의지를 가진 고객들이 너무 감사했어요. 그래서 더 위대한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바로 CX팀 주도로 '완강률을 잡아라!'를 시작하기에 이르죠. 클래스101처럼 고객들이 프로덕트 내에서 문제에 막히지 않고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더 위대한 목표를 달성해보세요!
고객과 사업부 사이에서 토스하면서 핑퐁에 지치시나요? 필요한 권한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정말 문제인지 공감가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요.
실리콘밸리의 와이컴비네이터는 개발팀 옆에 고객상담용 전화기를 옆에 두라고 권장합니다. 웬 시대의 역행하는 소리인가 싶은데요. 바로 개발팀이 고객 문의를 생생하게 듣기 위한 조치입니다. 아무리 오퍼레이터가 개발팀에 프로덕트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해도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전화기 옆에서 상담 내용을 들으면서 고객들이 얼마나 불편을 호소하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거죠.
채널톡을 활용하면 이 문제를 더 스마트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요. 바로 '초대하기' 기능을 이용해서 담당자를 빠르게 소환할 수 있답니다. 1명의 멤버든, 10명의 멤버든, 100명의 멤버든 추가 과금이 없으니 누구나 쉽게 고객의 채팅을 볼 수 있고, 원하는 누구나 고객과 대화도 가능합니다. 나만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들을 조직에 잘 전파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당한 권한을 끌어올 줄 아는 오퍼레이터가 됩시다!
에디터: Karrie Kim (김수진)
스타트업에서 기술 없어서 정리력으로 버티는 오퍼레이터입니다. '오퍼레이터의 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