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케팔로스: 아아, 그것은 억압된 야성이어라.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의 인생을 특정한 무언가에 빗대곤 한다. 자신의 인생을 ‘꽃’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름’을 인생의 비유 대상으로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대상을 인생에 투영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나아가 사회 전체의 모습이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한복판에서, 나는 ‘말(馬)’과 같은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드넓은 세상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한 마리의 멋진 야생마가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야생마는 몇 번이고 모습을 바꿔가며 매 순간 다른 대지 위를 달려왔던 것 같다.
이 글에서는 나의 인생을 세 가지 분기로 나눠보고, 그 각각의 분기에 따라 내가 어떤 모습의 말(馬)이 되어 인생을 견인해 왔는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의 가족관계, 교우관계, 좋아하는 음식, 취미와 같은 자잘한 항목에 주목하기보다 나의 인생 그 자체를 바라봄으로써, ‘J’라는 한 인간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파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케팔로스······. 서양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이름일 것이다. 부케팔로스에 대해서는 다양한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알렉산더 대왕과 부케팔로스의 첫 만남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매우 유명하다. 이 일화에 따르면, 부케팔로스는 자신의 등에 타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 거부반응을 보였고, 오직 소년 시절의 알렉산더 대왕만이 그 원인을 알아채어 현명하게 대처함으로써 부케팔로스를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정복한 도시 중 하나의 이름을 부케팔로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도 전해진다.
이와 같은 일화들을 들은 후, 보통의 사람들은 ‘부케팔로스는 주인을 참 잘 만난 것 같다’라고 생각하며 훈훈함에 젖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관점에서 부케팔로스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만큼 강한 야성을 지녔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손에 길들여져 군마(軍馬)가 되어야만 했고, 본래 자신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싶었을 드넓은 초원이 아닌 살벌하고 잔혹한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다녀야만 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부케팔로스가 원했던 일인데 무엇이 문제냐’라는 불평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마로서의 삶이 진정 부케팔로스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나는 그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욕에 세뇌된 하나의 희생자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고등학생 시절, 대한민국 입시의 잔혹한 속삭임 속에서 방황했던 내가 그러하였듯이······.
사실, 내 고등학교 생활 자체가 힘들었거나 불우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며,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대한민국 입시’라는 역병은 여전히 창궐해 있었고, 그 속에서 ‘J’라는 이름을 가진 한 마리의 부케팔로스는 매 순간마다 그 생기를 잃어갔던 것 같다.
특히, 관심을 빙자한 학교의 과도한 구속은 나를 숨막히게 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전교 1등이었던 나에게 선생님들은 부담스러울 만큼 많은 관심을 보이셨고, 처음엔 나도 ‘내가 인정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들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기대는 올가미처럼 나를 옥죄어 갔다. 그 기대를 조금이라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에 뒤따르는 질책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나는 정신 없이 달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역병(입시) 속의 승자’라는 수식어를 가지기 위해, 학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인 양 세뇌시켰으며, 나는 쇼윈도에 전시된 마네킹 마냥 이것저것을 평가 받으며 눈치를 봐야 했다. 또한, 대한민국 입시는 나로 하여금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현재 무엇을 잘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를 강요하였기 때문에, 독서의 푸른 초원에서 뛰어 놀며 사색하기를 즐기던 어린 야생마는 그 야성을 억압당한 채 수능을 위한 문제풀이 군마(軍馬)로 거듭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참혹했던 ‘야성의 억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스스로의 야성이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한 채 단지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스스로의 의지로 알렉산더의 정복에 동참했고 그것에 대해 행복을 느낀다’라는 착각을 했었던 부케팔로스와 같이, 나 또한 내가 원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행복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자기합리화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입시의 흐름 속에서 나도 모르게 결정된 진로가, 다행히 지금의 나 또한 만족하면서 사랑하고 평생 걸어가고 싶은 길이라는 점은 내 인생에 있어 다시 없을 천운인 것 같다. 만약 고등학생 시절의 입시문화에 세뇌된 채로 선택하였던 진로가 지금의 내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길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전쟁터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죽음을 맞이하였던 부케팔로스처럼 나 또한 스스로 무너져 내렸을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입시’라는 역병에 걸려 끙끙 앓던 시절이 끝나고 대학교 생활이 시작됨에 따라, 내 인생은 그 역병에 대한 항체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생기를 잃은 부케팔로스의 모습은 서서히 내 인생으로부터 떠나갔으며, 다시는 그 역병에 걸려 휘청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싹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모습의 말(馬)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며 다시 한번 내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