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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아나 Aug 28. 2020

시무 7조를 반대합니다 1#

무지 + 무지는 그냥 무지

역사가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시무 7조를 보며, 나는 다시 역사를 생각한다. 조선이 부흥한 것은 성리학의 공이 컷고, 조선이 망하는데도 유학의 과는 컷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과거보다 더 나은 통찰이 필요하다. 과거의 것이라고 해서 모두 낡은 것은 아니고, 새것이라고 더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 

우리가 명분과 허리만 내세우고 실속이 없는 이들의 언변을 가리지 못한다면 조선 시대의 곰팡이 냄새나는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시무 7조에서 나는 과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없이 시류에 편승하려는 지식인을 다시금 발견한다.      

우리나라 흔히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실없는 말장난을 너무 좋아한다. 조선이 흥한 것은 지식인들이 쉴새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진사’ 칭호조차 얻을 수 없었던 치열함 덕분이었다. 조선이 망한 것은 그런 지식인들이 공자왈 맹자왈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무능을 숨겨도 누구도 탓할 수 없던 허술함 때문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예수는 서로 사랑을 가르쳤고, 부처는 서로의 자비를 가르쳤건만, 요즘 들어 일부 종교단체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넘쳐나니 교와 종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고, 대한 백성이 수천년간 숭상해온 윤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최근 신천지와 제일교회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가르침을 망각한 이들에 불과합니다.”     

맞는 명제 뒤에 주관적인 명제를 끼워서 말을 맞추면 허와 실 진실과 거짓을 쉽게 가려내기 어렵다. 조선시대 상소문이 대부분 이런 식이며, 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허례에 치우치게 되고, 마침내 국제사회에서 조선이 뒤처지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런 어리석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있었다.     

언어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하며, 사변을 숭상하거나 언어 그 자체의 논리로 현실을 거꾸로 재단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가령 ‘사람은 사랑을 해야 사람이지.’ 라는 말을 우리가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 엄밀히 볼 때, “사람=사랑”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문학적으로도 그다지 가치가 없다. 라임은 그럭저럭 봐 줄만 하다지만 딱히 힙하지도 않다. 하지만 ‘사랑을 하자’는 그 취지가 좋기에 그냥 동의해주는데에는 무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말을 만들어 내어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데 차용한다면 그것을 전혀 다른 문제다.     

시무 7조를 상소문 형식을 빌어 소시민의 의견을 개재한 것은 그냥 위트 넘치는 재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동시에 나로서는 한국의 평균적인 지식을 지닌 이들의 소양이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음을 상기한다.     

비록 스스로 문학적인 소양을 발휘하고, 상소문의 진부한 표현을 빌어 쓰는 유머는 인정하더라도, 스스로의 혜안을 돋보이고자 했다면, 명확한 근거와 팩트를 들어 자신의 논리를 세워야 하는데, 여전히 사실과 논리보다는 감정과 분노에 쉽게 설득되는 한국의 식자층들은 시무7조가 그저 현 정권을 비판하는 것에 들떠 이와 같은 말장난의 위험성은 그냥 넘어가주는 것이다.     


시무 7조의 내용을 보면 우선 조세를 통해 백성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을 논하고, 세율을 감면해달라고 한다.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하라고 하고서는 자신은 전혀 주장에 대한 근거를 들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라면 성리학 구절을 하나 인용하면 그것이 합당한 근거가 되었지만, 현대에는 그런 식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

54조의 혈세는 어떤 기준이고 22조의 사대강은 또 어떤 기준인가? 이것은 모두 언론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는 건 조금이라도 시사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알아챌 수 있지만, 그냥 유명한 말을 그대로 차용하면 비판의 여지 없이 통용되는 조선시대식 사고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언론과 지식인들이 쓴 글들이 다 이런 식이니 결국 시무7조를 쓴 이도 자신도 그래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당연지 모른다. 

우리나라가 한해 쓰는 예산이 500조가 넘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54조인지는 그냥 대충 얼버무리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총론만 있고 실행방안이 없다. 오늘부터 국민들은 모두 효도하세요. 효도하면 나라가 부강해집니다. 뭐 이런 식이다.     

이런 방식의 논조는 실리외교 부분에서 가장 심해지는데, 일본과 외교 분쟁을 통해 우리나라가 잃은 게 있고 얻은 게 있기 때문에 허실을 찾으려면 대차대조표를 통해 양자를 비교함이 옳을 것이다. 일본 외교 분쟁으로 읽은 것만 나열하고, 실리외교를 펼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문대통령을 고작 지지율을 얻기 위해 일본과 불필요한 외교 분쟁을 일으킨 이로 몰아간다.

프레임을 좀 아는 사람이다. 역시 우리나라 언론이 가르친 바다.


그런데 현실을 살펴보면 일본과 외교분쟁으로 얻은 실리는 없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명분을 얻고 실리를 잃는 것은 없는가 하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자신이 주장하는데로 행동하면 실리외교이고, 그에 반하면 명분을 내세워 실리를 놓치는 바보들이라는 프레임이 성립된다. 실리라는 단어를 자기 멋대로 갖다 붙이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나라 언론이 국민들에게 가르친 수법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말장난은 통용될지 몰라도, 실무를 수행하는데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결과는 수습할 수 없이 나빠진다. 말장난 하나로 그 기업이나 그 사업은 망하기 쉽상일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이라는 집단은 말을 통한 권위만 세우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언론이 그렇게 행동하니 일반 국민도 말만 앞세우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짜 뉴스나 양산하게 된다.      


시무 7조를 쓴 자가 실리를 말했다면, 양쪽의 실리를 다 따져보고 나서 실리의 근거를 논하는 것이 맞는데. 자기 스스로도 실리적이지 않고 명분에 호소하는 글을 쓰면서, 남들보고는 실리를 추구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나는 전혀 이런 방식이 새롭지 않은데, 종종 대학교수나 유명 언론인이 쓴 글들도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결론만 내세우다 끝나는 게 적지 않다. 한마디로 시무 7조를 쓴 이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상소문을 쓴 이가 진짜로 현실에 통찰이 있고 식견이 있다면, 한가하게 대통령 지지율이나 논할 때가 아닌 것을 알 것이다.


작금의 국제 정세는 4차산업시대의 길목으로 가는 전환기에 있고, 3차 산업시대가 제조업의 시대였다면 4차산업는 지식정보가 중심이 되는 시대다.

4차산업시대의 특징은 고도화된 정보와 데이터이며, 이에 따라 해당 정보를 다룰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는 집단 간의 격차는 산업혁명 시대의 격차보다 컸으면 컸지 더 작지는 않을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쓰다 남은 방직기라도 구할 수 있었다면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지만, 4차 산업 시대로 진입하면, 수억 테라의 데이터를 주어도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 일것이며, 정보의 격차는 갈수록 압도적이 된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은 앞다투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일부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만이 여기에 투자하고 있을 뿐이고, 정부와 학계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간신히 거들고만 있는 실정이다.     

정말로 나라를 걱정한다면, 이런 시류를 살펴보고 먼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지, 정치인들을 ‘돼지’에 비유하는 말장난이나 치면서 낄낄댈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미중이 벌이고 있는 기술전쟁에서 우리만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과거 조선이 서양과 일본의 화포에 압도된 것처럼, IMF 때 투기자본의 자본력에 굴복했던 것처러 또다시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에게 기술종속을 당하고 말것이고

우리의 기업들은 선진국의 영원한 하청업자로 살아야 하며, 일반 국민은 그들의 소비자로 시장 종속되어 영원히 가난에서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애국지사도 나라의 정책을 제시할 엘리트도 아니지만 엉터리 시무 7조를 대신하여 현 시대에 시급한 현안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1.비대칭 무기 개발에 더욱 역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러시아 중국 일본에 둘러 쌓여 있고, 군사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미국의 우방이지만, 중국 일본이 나날이 군비를 늘려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 일본 등과 군비로 경쟁을 무한히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일한 대안은 미사일 및 잠수함과 같은 비대칭 무기에 더욱 역점을 두는 것 외에는 없다. 스스로를 지킬 국방력이 없다면, 어떤 명분도 실리도 국민 행복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앞선 역사로 경험하였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권의 취향에 따라 국방정책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꾸준히 국방력 강화에 힘쓰도록 정부 정책을 뒷받침 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어떤 정부는 군화에 투자하고 어떤 정부는 USB에 투자하며, 어떤 정부는 조기경보기를 사랑하고 어떤 정부는 구축함에 아끼지 않고 예산을 책정하였다. 그러나 국방에 있어서는 좌우가 있어서는 안되며, 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강군을 육성할 수 있도록 정권이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2.  우리나라 이권 단체들의 정치 개입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으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

이번 의사 파업 사태에서 의사나 정부 한쪽을 편들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협이나 변협 민노총 종교단체 등이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심지어 정부가 하려는 일도 자신들의 이권에 맞지 않으면 실력행사를 통해 정부 정책조차 바꿔버리는 일이 최근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좌든 우든 오로지 선거에 이기는데 급급해서 이들을 과도하게 키워주어서는 안된다.

일부 극우들이 사랑제일교회를 이용하기 위해 이들을 지원하였다가 최근에 겪고는 역풍을  교훈삼아서도 이권단체의 과잉 개입과 이들에게 과도한 힘을 부여하는 행위는 멀리하여야 한다. 한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이런 일들을 눈감아 주다가는 말년에 존경받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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