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으로 소통하는 세상

by 밤하늘별

2020년이던가? 소설가 장강명의 에세이 두 권을 읽었다. 『책 한 번 써봅시다』와 『책 이게 뭐라고』였다. 전자는 책 쓰기에 관한 내용인데 작법서라기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깝다. 후자는 장강명과 요조가 함께 진행했던 팟캐스트 이름과 동일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둘 중 어느 책이었을까? ‘책으로 소통하는 사회를 꿈꾼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두 권 모두 이를 언급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얼마 전에 장강명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책 이게 뭐라고』가 언급된 영상을 보며 ‘신간이 나왔나?’하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첫 장을 펼치고 나서야 2020년에 이미 읽었던 책이란 걸 깨달았다. 2020년에 장강명의 에세이 두 권을 읽었는데, 나는 『책 한 번 써봅시다』 한 권만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두 책에서 본 각각의 내용을 그 한 권에서 본 내용이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 ‘책으로 소통하는 사회’라는 생각도 두 권 중 어디에서 나왔는지 떠올리지 못할 만하다. 내 책 읽기가 깊지 못한 탓이다.

어쨌거나 ‘책으로 소통하는 사회’에서 ‘수업으로 소통하는 세상’으로 살짝 바꿔보았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올 2월에 적은 수업 비평에 관한 글에서 파생된 것이다. ‘수업을 하나의 예술로 본다면 수업으로 소통하는 세상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물론 ‘수업을 하나의 예술’로 보는 것의 온당함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교사들에게 ‘수업이 하나의 예술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으로 다가와야, 가능성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이 글은 상당 부분 과장과 상상이 가미된 글임을 먼저 밝힌다.

‘수업으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세상’에 대한 개념을 어떤 것으로 봐야 할지가 먼저다. 그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라면 상당히 흥미 있는 상상이 될 것이다. 교사의 수업이 하나의 예술 장르가 된다면 때때로 교사가 학교를 벗어나 열린 공간에서 수업을 하고, 그럴 때면 일반 사람들이 수업을 체험한다. 또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것을 관객들이 관람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수업의 예술성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다소 거친 말투로 토론할지 모른다. 어떤 교사는 뛰어난 수업 디자인을 자랑할 것이고, 또 어떤 교사는 마치 낭만주의 음악가 리스트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에 대중이 열광한 것처럼, 화려한 수업 기술과 수려한 외모로 대중을 매료시키며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형태의 유사함을 생각하여 일반 사람들이 강의를 듣는 것이라든지, 학부모가 공개수업을 참관하는 것을 보면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업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일상적인 일인 반면, 강연은 길게 지속되지 않고 그 대상이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기에 앞서 내가 제시한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또 공개수업은 수업의 예술성보다는 ‘자녀가 어떻게 공부하는가’가 중요한 부분이기에 엄연히 차이가 있다.

세상을 ‘학교’라고 한정하면 조금 현실적인 상상이 된다. 교사들은 자신의 예술성을 십분 발휘하여 열정적으로 수업을 한 후 학년 회의 시간에 하나의 주제를 어떤 식으로 수업에서 풀어 나가는지에 대해 토론한다. 그리고 부장회의나 전 교직원 회의에서는 업무나 감염병에 대한 것이 아닌, 수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업은 예술 행위이기에 모두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인다. 어떤 교사는 동료 교사 수업의 예술성에 감동받아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후자의 모습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 언제부턴가 회의는 가기 싫은 것이 되었다. 더구나 올 3월에 참가하는 회의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주를 이룬다. 코로나19 확진이나 유증상으로 학부모와 연락할 일은 밤과 주말에도 계속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수업에 관한 논의 보다는 업무 이야기가 회의의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이런 현실이지만, 우리는 수업으로 소통하는 세상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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