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by 밤하늘별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벽면을 포스트잇으로 빼곡하게 채운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예능에서는 그중 하나를 선택해서 대화나 미션의 주제를 고르는 경우였던 것 같고, 영화에서 등장했다면 호러나 미스테리 장르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TV 프로그램 대화의 희열에 소설가 김영하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도 포스트잇으로 가득 찬 방을 언급한 적이 있다. 글의 소재나 아이디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작가라면 누구나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방에 들어가서 ‘오늘은 이거다’ 하며 수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글감을 고르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옆에 있던 동료 소설가 김중혁이 부러운 듯한 반응을 보이자 농담이라고 하긴 했지만, 김영하 작가나 김중혁 작가라면 ‘실물은 아니더라도, 포스트잇을 대신할 다른 장치를 통해 아이디어를 수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포스트잇’은 김영하 작가가 2002년에 출간한 산문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포스트잇이라고 이름 붙인 장도 있다. 책에 있는 다른 글들과 달리 여기는 길어야 2페이지를 넘지 않는 글이 모여 있고, 한두 줄짜리 짧은 글도 있다. 본격적인 글을 위한 아이디어로 기록해 둔 것 중에서 선별하여 책에 실은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문학적인 글을 쓰고자 하는 소망이 있기에 이런 아이디어 모음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느낀다. 그것이 실제 포스트잇이어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잘 떨어져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에 비해 내가 매일 끄적이듯이 적는 일기 같은 글이 이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식의 기록은 후에 따로 정리하지 않는 이상은 개별 아이디어를 찾기가 참 어렵다. 실제로 나도 지나간 글을 다시 본 적이 거의 없다. 끄적이듯이 쓴 메모에 가까운 글이라 그 자체로 완성도를 갖지는 못하기에 다시 꺼내어 활용할 수 없다면 그저 묻혀서, 다시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신세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문득 글쓰기에서만이 아니라 수업에도 이렇게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방 하나쯤 가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실제 포스트잇이든, 상징적인 의미에서든 말이다. 생각해보면 연구회에서 협동학습 구조와 다양한 모둠·학급 세우기 구조들을 공부하던 때에는 수업에 활용할 재료가 상당히 많다고 느꼈다.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가는 보결 수업 한두 시간 정도는 그런 것들을 활용하면 되기에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자주 활용하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일까? 지금은 그때와 같지 않다. 어쩌면 내가 지향하는 수업의 방향이 달라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고력을 높이는 수업은 그저 구조를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2학년 담임을 연속하여 맡았던 시기, 그리고 그때 실천을 토대로 책 원고를 완성하고 맞이한 해에 또 2학년을 맡았던 시기에는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방을 가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학년이다. 새로운 포스트잇으로 바꾸든지 지금 학년에 맞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떤 종류의 수업 재료는 학년을 초월하기도 한다. 약간의 변형을 통해 각 학년에 맞게 바꿔가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포스트잇으로 벽을 채워가는 것이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며,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이왕이면 다양한 학년과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을 만들어 가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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