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모른 체하거나, 아닌 척.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한 감성적인 표현을 꽤나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마치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는 감정을 재빨리 접어두고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을 한다. 감동받았다는 말 대신 “그냥 그렇더라”고 말하고, 마음이 흔들렸다는 고백 대신 “별거 아니야”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에 가장 먼저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어느새 내가 되어 있다. 특히 일요일 같은 날에는 그게 더 선명해진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사이, 그 애매한 시간대에 마음은 괜히 더 느슨해지고, 그래서 더 쉽게 무언가에 닿는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오후 햇빛, 늦게까지 식지 않은 커피잔, 평소보다 조금 느린 시계 초침 소리 같은 것들. 평일이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장면들이, 일요일에는 괜히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순간 앞에서조차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다. 이 정도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왠지 과장처럼 느껴질까 봐.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쿨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온 건지도 모른다. 쉽게 감동하지 않는 사람,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모든 것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사람. 그런 태도가 어른스러움이고, 단단함이고,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식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감정은 점점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표현하는 건 조심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감정을 숨기는 데에도 꽤 많은 에너지가 든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는데, 그걸 모른 척하기 위해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계산하고, 한 번 더 표정을 고쳐 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지치는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정작 가장 솔직해야 할 사람 앞에서조차, 우리는 자기 감정을 검열한다. ‘이 정도로 흔들리는 게 맞나’, ‘괜히 유난 떠는 건 아닐까’ 하고. 일요일은 그런 나를 조금 들키기 쉬운 날이다. 괜히 지난 대화 하나가 떠오르고,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던 노래 가사가 마음에 남고, 오래된 사진 한 장에 이유 없이 시선이 오래 머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아니야, 별 의미 없어.” 하지만 정말 별 의미가 없었다면,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의미가 있으니까, 마음이 움직였으니까, 스스로를 먼저 설득해야 하는 거다. 나는 요즘 가끔 연습하듯 이렇게 말해본다. “좀 좋았다.” “조금 울컥했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아주 큰 감정이 아니어도, 그저 스쳐가는 감정이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는 연습.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고,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괜찮은, 나 혼자만의 솔직함.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 숨을 쉰다. 어쩌면 감성적이라는 건, 유난이 아니라 용기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자꾸 무뎌지라고 말할 때, 그 말에 다 따르지 않는 용기. 느낀 것을 느낀 대로 인정하는 용기. 일요일 오후처럼, 조금 느리고 조금 말랑해진 마음을 그대로 두는 용기. 모른 체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아닌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일주일에 단 하루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오늘만큼은, 감정이 먼저 반응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면 좋겠다. 마음이 움직였다는 건,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아주 조용한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