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어릴 적엔 명절이 끝난 집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북적이던 소리가 사라진 뒤 남는 적막이 낯설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그때의 공허함은 감정이라기보다 풍경에 가까웠다. 비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마음을 건드렸을 뿐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잠시 스쳤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관계도, 시간도 대체로 가볍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들이 떠난 뒤 남은 흔적들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 희미하게 남은 향기나 아직 식지 않은 공기 같은 것들.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이 감정을 건드린다. 예전에는 커다란 상실 앞에서만 마음이 흔들렸다면, 이제는 사소한 틈에도 감정이 반응한다. 그건 깊어졌다기보다는 얇아졌다는 쪽에 가깝다. 감정은 빠르게 스며들고, 또 빠르게 사라진다. 오래 붙잡지 않으려 해도, 순간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 올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감정이 쉽게 차가워지고, 또 쉽게 얼어붙는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바람이 스며드는 것처럼, 마음에도 방심한 틈이 생긴다. 나는 그 틈을 굳이 메우려 하지 않는다. 여린 마음을 다독이기보다는, 그런 상태로 있는 나를 그대로 둔다. 잠시 머물다 간 사람의 흔적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애써 정리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지나간 것으로 둔다. 이제는 안다. 모든 감정이 따뜻할 필요는 없다는 걸. 차갑게 남는 기억도,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가면 그만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