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시 돌아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머리를 쥐어짜며 망설인 갈래길, 취업 아니면 대학원 진학이었는데 9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니. 8년 차 직장러인 나의 화두는 도돌이표처럼 이직 아니면 학위 취득이었다. 돌아보니 일이라고는 꽤 많이 한 것 같은데 10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딱히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게 없다. 그리고 10년 뒤에도 딱히 다를 것 같지 않다. 정년까지라 해도 족히 30년은 더 일하게 될 텐데 그 장거리 경주를 어떻게 매주 주말만을 바라는 힘으로 견뎌낼까.
삶에는 계기가 있다.
나도 물론 있었다. 작년 여름, 우연찮게 검진을 통해서 몸속에 무럭무럭 자라는 혹을 발견했다. 혹시나 싶어 조직검사를 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다양한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맘껏 휘젓고 다녔다. 특히 열과 성을 다해 밤낮으로 일했던 지난 날, 그 누적된 시간이 딱히 어떤 방향을 가르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게 당황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혹들은 나를 떠나 주었지만, 휘저어 놓은 머리 속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눈 뜨고 지내는 시간의 반 이상은 분명 나는 일을 했는데, (아직 갈 길이 한참인데) 남는 게 없다니.
첫 직장은 유니레버였다.
부푼 꿈을 가지고 들어간 글로벌 회사에서 나는 100년짜리 브랜드 클렌징 폼을 맡았다. 그 당시 굴리는 영어발음으로 세수시켜버리는 뉴트로지나와 뭐 하기만 하면 1+1을 해대는 해피바스 덕분에 숱한 저녁과 주말, 피부라는 대가 지불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로하신 그녀(폰즈)를 살려내지 못했다. 힘쓰고 노력하고 애쓰고 버틴지 2년, 답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멈춰버렸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 학교로 돌아갔다.
저녁 있는 삶을 꿈꾸며 들어온
교직원의 삶은 계획에 없던 총장실 비서업무를 맡게 되면서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나의 산물에 대한 애착이 컸던 당시의 나에게 일은 너무나도 힘든 것이었다. 디테일의 미학을 따지는 이 곳에서 내 특유의 호방함은 별로 도움되지 않았다. 날마다 작아졌지만, 나는 저번처럼 떠나지 않기로 했다. 일정관리에서부터 해외출장 수행, 프로젝트도 병행하면서 네트워킹, 의전, 기획부터 실행까지 가능한 정확하고 빠르게,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 끝없이 샘솟는 일들을 하루하루 쳐내고 나니 6년이 금방 갔다. 바쁨이 익숙해지게 될 무렵, 몸에서 신호가 왔고, 마침 잊고 살았던 그 생각도 왔다. 나는 잘 가고 있나? 속도전에서 방향 전으로 돌이킨 줄 알았는데 결국은 다시 그 자리, 더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 이직 혹은 학위라는 익숙한 주제 앞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멈추기로 했다.
2018년 3월, 나는 휴직계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