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프리 Jun 24. 2017

인생의 소실점

<빼기의 법칙> '4차 산업시대의 생존코드'

서양 중세 회화의 원근법에서 중요한 용어인 소실점消失點은 물체의 면에 연장선을 그었을 때 서로 만나는 점을 말한다.

‘소실점’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보면 ‘꺼질 소消’와 ‘잃을 실失’로 구성되어 있다. 영어로는 ‘배니싱 포인트vanishing point’, 즉 ‘사라지는 점’이다.


2차원의 공간에서 물체가 3차원 입체로 보이는 것은 명암뿐만 아니라 전면에서 후면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평행선이 실제로는 만나지 않지만 그림에서는 만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면 눈앞의 사물보다 거리가 먼 곳일수록 물체의 크기가 작아진다. 건물의 소실점을 상상하면서 이어보면 만나는 지점이 반드시 그 뒤에 위치해 있다.


이 소실점을 인생에 비유해보자.

나의 관점에서 보면 나를 제외한 사물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즉 소실된 부분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세상이 나를 보는 관점에서 보면, 나 또한 소실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을 벌이지만 결국은 ‘마이너스’의 방향으로 귀결한다.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는 작아지고 머리카락은 빠진다. 멜라닌 색소가 빠지면서 머리카락은 하얗게 샌다. 치아도 하나 둘 빠지면서 틀니에 의존해야 하고, 통통했던 살은 빠지고 몸의 수분도 줄어들며 피부는 메말라간다.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쌓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 무엇도 함께 하지 못한다. 생명은 유한하다. 끝이 반드시 있다. 하지만 살면서 우리는 그 끝이 없는 듯이 산다. 사람마다 종착점에 다다르는 시점은 다르겠지만 그 끝의 방향은 뜨겁게 타오르다가 점점 어둡게 꺼져가며 잿빛으로 변해가는 모닥불의 나무처럼 ‘마이너스’로 흘러간다.


우주 빅뱅이론에 의하면 이 순간에도 우주는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그 증거의 하나가 별을 관찰해보면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시시각각 멀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태양계를 이루는 지구, 화성, 금성 등 일정한 궤도로 태양 주위를 순환하는 행성 간의 거리는 일정하다. 하지만 우주 전체로 확장하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무수히 많은 별들이 생명처럼 탄생했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만약 우주가 무한하다면 아무리 빠르고 넓게 팽창한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그 끝에 다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만 봤을 때는 우주는 팽창하며 ‘플러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팽창하는데,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고 내부 압력에 못 이겨 터져버리고 만다. 만약에 우주가 풍선과 같다면? 방향이라는 것은 협소하게 단지 외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할 때, 설사 우주가 팽창하는 게 맞는다고 해도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별의 생명은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의 방향은 외형적으로는 커지고 있으나 생명의 흐름 측면에서는 결국 언젠가는 생을 마감하는 마이너스의 방향을 따르지 않을까? 하나의 나무가 점점 자라는 것을 보고 그 나무가 영원한 생명을 가질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우주라는 생명체 또한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세월이 흐른 뒤 사라지는 것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영원한 생명은 없다는 것이 진리라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추구하는 사상과 이념, 교리 등은 저마다 차이가 있다. 원시시대에는 종교가 있기전에 무속신앙이 있었는데, 모두 한결같이 인간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 서양에서 생긴종교든 동양에서 생긴 종교든 둘 다 사후의 삶을 얘기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인간은 상상력을 동원한다. 굳이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진리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삶이 유한하다는 이유는 인류에게 실로 큰 영향을 끼친다. 

번식 능력이 발달하게 하고, 생명을 존중하도록 하며, 기록문화를 통해서 후세에게 단절 없이 유의미한 것들을 전하도록 하는 노력에 힘쓰도록 만들었다. 죽음이 존재함으로써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했고, 의학기술을 발전하도록 했으며, 죽기 전에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남기고픈 욕구를 낳게 했다. 유한하기에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유한하기에 절제의 미덕이 필요한 덕목이 되었다.


마이너스는 우주의 큰 방향점이다. 그 안에서 또는 그 밖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넘나들겠지만 결국은 마이너스의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길게 보면 사람도 점점 에너지를 잃어가며 결국엔 생명을 마감한다. 마이너스는 작은 흐름이기도 하지만 큰 흐름의 방향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이너스 감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