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사는 사람들
산에 사는 사람들.
내가 비싼 등산화를 신고 오르내던 길을
그들은 맨발로 뛰어 오갔다.
내가 가벼운 짐도 헉헉대던 길을
그들은 제 몸보다 큰 짐을 이고도 웃으며 오갔다.
나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던 까만 밤길이면,
다만 그들의 현명한 눈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가 지내는 고아원은 중심가로부터 40분정도 떨어진 산 속에 있었다. 고아원보다는 조금 더 큰 개념으로 아이들의 공부와 성장에 더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시민단체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했다. 내가 네팔로 따라나섰던 한 스님과 고아원 원장 선생님이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어하는 동네 청년들을 위해 두 달짜리 한국어 특강을 연 덕분이었다.
구릉지역인 이 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산 속에 마을을 지어 사는데 해발 2000M가 넘어 우리에겐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차는 곳이다. 고아원까지 가는 산 길에는 알록달록한 집과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고 울타리도 현관도 없는 집들 앞에서 주민들과 동물들이 앉아 하루를 보냈다.
우리의 모습이 그들에게 새로움이 되고
우리에겐 그들의 일상이 새로움이 되는,
이방인과 현지인만이 만들어내는 가장 공평한 거래가 매일 이 길에서 이루어졌다.
고아원에 가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산넘고 물건너 다시 산을 올라야 했다. 흙바닥으로 된 산길을 매일 오르내리기 위해 만만의 준비를 했었다. 내 생의 첫 등산화도 구매했고 노르딕 패턴의 발 토시와 바람막이까지. 맨발에 슬리퍼하나를 신고 뛰어다니는 네팔 아이들 사이로 민망한지도 모르고 조심스럽게 산을 올랐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우리의 더딘 걸음 덕분에 더 많은 이웃을 마주칠 수 있던 것이랄까.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늘 주황색 머리띠를 두르던 할아버지인데 한 달 동안 꽤 자주 마주쳤던 분이다. 빈 지게를 이고 내려가서 짚더미를 가득 이고 올라오는 할아버지의 하루. 허기진 배와 추워질 산 속의 밤을 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참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우리의 무례한 카메라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할아버지를 가로막을 때가 많았다. 할아버지는 그 무거운 짐을 이고도 차분히 멈춰서서 우리가 할아버지의 멋진 미소를 남기도록 허락해주셨다. 언제나 미소 짓고 있는 할아버지의 주름. 참으로 오랫동안 머리를 짓눌렀을 커다란 짐을 견디라는듯 이마는 아코디언처럼 풍성한 주름을 만들었다. 이마의 주름들이 아늑한 지붕을 꾸리면 크고 작은 주름들이 그 아래서 견고하고 튼튼한 미소를 지어낸다.
내가 있던 다딩베시라는 도시는 크게 시내와 산 동네로 나뉘었는데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시내에 모여살았다. 3-4층 짜리 총천연색 빌딩을 짓고 부유한 사람의 집에는 흔하지 않게 정원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산에 사는 이들은 중산층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이다 이들은 커다란 산 하나를 아파트 단지 삼아 살아간다.
강가에 사는 사람들, 산 중턱에 사는 사람들, 더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
언덕을 도는 코너마다 있는 단층짜리 주택들은 흙으로 지은 것도 총천연색 페인트를 바른 것도 있어 시내의 풍경보다 다채롭다. 매일 매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거친 걸음에 그들은 누구보다 건강하다. 그렇게 담벼락 하나 없는 커다란 산 속에서 공평한 아침과 공평한 밤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그곳, 산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