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동물 친구들
어슬렁- 어슬렁-
산이며 골목이며
빨빨대며 돌아다니던 염소들
종교의 나라답게
멍- 하고
명상을 즐기던 강아지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
네팔은 80% 이상이 흰두교인 국가다. 다들 흰두교의 신이 소를 타고 등장하는 그림을 본 적이 한 번쯤 있을텐데 알려진대로 그들은 소를 신성시 여겨, 음식으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재밌는 건 소고기 대신 버팔로 고기를 매우 사랑한다는 점이다. 처음엔 의아했다. 소를 신성시한다면 소의 친척뻘인 버팔로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상대적으로 돼지는 친척뻘이 없으니, 돼지류 고기를 아예 먹을 수 없는 이슬람교인들에 비하면 흰두교인들은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버팔로를 키우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느날 고아원에서 시내로 신나게 쇼핑을 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쇼핑이래봤자 떨어진 야채와 군것질거리를 사러가는 거지만) 갑자기 뒤에서 우두두두두두두두두 -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소리보다 던 큰 소리로 한 할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피해야 한다!'
다행히 길가에 작은 언덕이 이어져 있었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다. 사진을 찍을 수도 없이 빠르게 버팔로들이 뛰어내려 왔다. 검은색 윤기가 흐르는 물개같은 털과 스페인의 투우 시합에서 볼법한 거센 뿔을 과시하며 뛰어내려가는 버팔로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출귀몰 맷돼지 잡아라!'
'서초동 한 편의점에 맷돼지 출격'
'50대 남성 다치게 한 맷돼지 포획작전'
우리 나라에선 마을을 공격하는 대표 동물이 바로 맷돼지다. 줄곧 '포획'의 대상인 괴물, 맷돼지를 맞딱드린 건
역시 시내로 내려가는 산 길 위에서 였다. 왜 꼭 즐거운 발걸음으로 쇼핑하러 가는 길에 이런 동물들을 마주치는지 모르겠다만, 그 날도 나는 여지간히 놀란 게 아니었다. 멀리서 검은 두 덩어리가 성큼 성큼 다가올 때는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가까이 가보니 청소년 즈음 되어보이는 맷돼지 두 마리가 있었다.
한 마리는 발에 앙증맞은 줄을 돌돌 묶고 주인 할머니 손에 이끌여 가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줄 없이도 얌전히 사람들을 피해 산을 올랐다. 우리집 강아지도 가끔 뒷산을 따라 분홍색 산책줄을 묶고 길을 나선다. 이 맷돼지도 울타리 안에만 있기 심심해 주인과 함께 길을 나선 거겠지. 이 후에 여행길에 올랐을 때, 나는 산책하는 코끼리와 트래킹하는 나를 몰래 지켜보던 야생 버팔로와도 마주치게 된다. 동물의 왕국을 배회할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던 나는 저 작은 맷돼지들과 할머니의 애정어린 산책 줄에 왠지 모를 감동까지 받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닭만큼 많은 개가 있었고 개만큼 많은 닭이 있었다. 개들은 유난히 몸에 상처도 많고 사랑받지 못한 모습이었던 반면, 닭들은 언제나 윤기가 흐르는 털옷을 입고 늠름하게 걸어다녔다. 잊혀지지 않는 노견 한 마리가 있는데,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안갈 정도로 털이 많이 빠진 모습의 개였다. 진 회색과 갈색 털이 듬성 듬성 남아있어서 어떤 털옷을 입고 다녔을지, 그의 과거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지나다니는 이웃들이 주는 먹을 거리로 근근히 시장 바닥을 맴돌며 나름의 삶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 옆으로 깔끔한 외모의 닭이 지나갈 때면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더랬다. 자신의 주위를 떳떳히 지나다니는 닭과 염소들 사이에서도 노견은 절대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멍을 때렸다.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는지, 3억 명이 넘는다는 흰두교의 신을 떠올리는 지 몰라도 분명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이었다.
머리 털이 다 빠진 노견의 머릿 속에는 어떤 그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을까. 지금 돌아보니, 그 노견은 지진이라는 재앙을 어떻게 헤쳐나갔을 까.
아직 이 세상에 있기는 할까. 나 역시 이런 저런 주마등이 애처롭게 지나쳐가, 머리털이 빠질 것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