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너머 산 초등학교

산 너머 산 학교로 떠난 주말

by 오지윤




산은 하나의 아파트 단지고
아파트 단지의 귀퉁이마다
초등학교가 있다

평지에 비하면
산소가 한 없이 모자란 곳에서
아이들은 공을 차고 뜀박질한다
그런데도 절대
헉헉대는 법이 없다


IMG_1329.JPG 산 너머 산으로 가는 길인데 기상이변인지 잠시 비가왔었다


어느 날 고아원 선생님이 우리를 불러모았다. 우리가 가르치는 한국어 학생들과 함께 다른 학교로 원정 봉사를 나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학생들과도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고 옆 동네 어린이들도 만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알았다고 했다.


길은 생각보다 길고 험했다.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동하다 보니 흙바닥에서 일어나는 먼지바람은 꽤나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길위에서 나는 아주 뜻밖의 장면을 만났다. 바로 이름을 모르는 한 나무의 모습이었다. 이름 모를 나무는 잎사귀가 말랐는지 하얗게 변해버린 무언가들을 달랑달랑 매달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학생 중 한명이 뛰어 올라가 나무를 마구 흔들자, 낙엽들이 (낙엽인지 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흰 눈처럼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덥고 메마른 네팔에서 본 뜻밖의 눈이었다.


사진-오지윤-저는 한국어 학생입니다.JPG 답을 적지 못한 시험지를 해맑게 내미는 나브라즈!


그 눈이 더 감동적이었던건 그 눈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나무 위로 뛰어올라간 학생 때문이었다. 그 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영어는 전혀 할 줄 모르고, 그 탓에 영어로 진행되는 한국어 수업을 하나도 따라오지 못하는 나브라즈라는 친구였다. 늘 연두색 후드티를 즐겨입던 나브라즈는 수업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출석률은 상위 10%에 속했다. 뒷자리 맨 구석에 앉아 받아쓰기는 매일 0점을 맞거나 옆자리 친구의 답안지를 베껴쓰다가 걸리기가 일상이었던 나브라즈. 우리에게 그 눈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나무를 타 올랐구나.


영어를 못해서이기도 수줍은 성격때문이기도, 평상시에 말이 없던 나브라즈는 그 길위에서 유난히 활기차 보였다. 이 기회에 친해지자는 생각에 나브라즈가 알아들을 수 있는 짧은 영어로 "You study hard then come to Korea" 라고 외쳤다. 낄낄대며 함성치는 학생들 사이로 나브라즈는 짧은 영어로 몇 마디 대답을 전해왔다. "I study hard but no money, no flight. We cannot go Korea"


수업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브라즈는 이미 속으로 결단을 내린 모양이다. 내가 이 수업을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한국에 갈 수 없다고. 어차피 돈이 없어서 비행기 표를 못 살 것이고. 그러면 이 열심히 듣는 수업따위 아무런 필요도 없다고. 나브라즈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브라즈는 매일 매일 수업에 와서 웃으며 앉아있는다. 아무것도 쓰지 못한 받아쓰기 종이를 내고 또 낸다. 나브라즈에게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나의 존재는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에게 우리가 사랑받고 있구나, 라는 거였다. 손에 움켜쥔 흰색 낙엽 껍질을 매만지며 먼저 걸어가는 나브라즈를 바라봤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그 밑에는 사실 이 모든게 서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해도 어차피 못갈텐데요. 라는 그 체념에 내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쿵하고 내려 앉은 마음을 다시 들쳐 업고 우리는 다시 초등학교로 발걸음을 뗐다.


IMG_1337.JPG 모래 바람에 코가 매운 산 위에선 누구라도 손씻기가 즐겁다
IMG_1340.JPG 엄마가 손 수 떠 준 모자에는 아이의 얼굴만한 꽃이 달렸다
IMG_1341.JPG 아이 깨끗해!


그렇게 산 하나를 넘어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교장선생님이 기다렸다는듯이 우리를 맞아주셨는데, 역시나 티카와 꽃목걸이 의식이 빠지지 않았다. 티카는 쉽게 말해 이마에 찍는 붉은 점을 말한다. 한 학생에게 이 이마의 붉은 점이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보는 제 3의 눈을 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통 쌀과 염료를 섞어 만들고 소중한 손님께 신의 축복을 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난 네팔에 있는 동안 이마가 빨갛게 물들 때까지 여러 번 티카를 받아야했다. 먼 타지에서 온 한국어 선생님은 어디에서나 사랑받고 환영받는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하, 그래서 내게 티카란 참 그리운 네팔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처음엔 어색하고 민망했던 티카가 나중엔 내 넓은 이마를 뒤 덮을만큼 커져도(주는 사람에 따라 단순히 붉은 점이 아니라, 손바닥 만한 크기로 칠해주시기도 한다) 익숙해질 수 있었다.


IMG_1369.JPG 손님의 이마엔 언제나 티카를 묻혀주신다


네팔은 가난하고 더운 나라라, 학구열도 떨어지겠지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회반죽으로 덮인 벽은 균열이 가득하고 교실은 전기도 안들어오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알파벳을 배우고 언제가 세상을 향해 나갈 꿈을 키운다. 초록빛 색이 도는 우리 나라 칠판과 달리 잿빛 색깔의 칠판에 교실의 어둠은 퇴로를 차단 당한듯 하지만 창살로 들어오는 충분한 햇빛덕에 해가 지기 전까지는 맘껏 공부를 할 수 있다.


IMG_1355.JPG 창살 사이로 열심히 공부하던 고학년 아이들이 보인다
IMG_1556.JPG 전기가 안들어 오는 교실 안은 어둡지만, 아이들의 웃음은 햇볕보다도 밝기만 하다
IMG_1559.JPG 나마스떼하는 우리의 서툰 인사를 잘 받아주던 아이들
IMG_1343.JPG 행여나, 창살이 답답하진 않을까
IMG_1348.JPG 이방인들의 등장에 구경나온 아이들
IMG_1373.JPG 산 위에 지어도 이렇게나 튼튼하답니다




이마에는 티카가
머리에는 엄마가 떠준 모자가 있다.

신과 엄마의 따뜻한 축복이
똘똘 뭉쳐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지키는 곳,
바로 네팔이다.


IMG_1564.JPG 우리가 왔다고 수업 중에 달려나온 아이들, 부끄러워서 가까이 올 줄은 모른다


아이들의 이마 위에도 티카가 있다. 네팔은 그야말로 신의 나라다. 시내에 있는 크고 작은 석상은 출퇴근길에 혹은 등하교길에 들러 신을 마주할 수 있도록, 신자들이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종교적 배려이다. 엄마와 아이들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이마에 칠하는 한 줌의 티카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마다 이마에 생겨나는 제 3의 눈이 아이들을 더 깊이 공부하게 하고 곧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도와줄 것이다. 등하교하는 산길이 미끄럽지 않도록 오늘도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도록, 그렇게 도와줄 것이다.


티카만큼 많은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니트로 된 모자다. 네팔 사람들은 참 모자를 좋아한다. 쌀쌀한 산바람을 제대로 된 난방 기구 하나 없이 견뎌야 하는 탓이겠지. 엄마가 직접 떠준 색색가지 비니부터 커다란 꽃이 달린 털모자까지 아이들의 머리에는 다양한 모자가 올려져 있다. 이마에는 티카가, 머리에는 모자가, 신과 엄마의 따뜻한 축복이 똘똘 뭉쳐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지키는 곳, 바로 네팔이다.


IMG_1572.JPG 건조하고 쌀쌀한 날씨에 콧물이 줄줄
IMG_1584.JPG 동서고금 언제나 어디서나, 땅따먹기는 인기종목
IMG_1586.JPG 뒤로는 열심히 쓰레기를 줍는 한국어 학생들이 보인다
IMG_1589.JPG 선 안 밟았어!
IMG_1590.JPG 순간포착 잘했네


아이들은 우리에게 줄곧 실뜨기와 땅따먹기를 알려줬다. 어쩜 우리는 이렇게 같은 놀이를 즐기는 건지. 인류란 결국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긴건지, 같은 문화권이란게 이렇게나 엄청난 건지. 어째뜬 멋진 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비록 우리는 이제 땅따먹기 그림을 그릴 흙바닥도 남아있지 않지만, 네팔 아이들에게 “바닥”이란 곧 “흙”이었다. 사방이 흙이었고 아이들의 코 속에도 귀 밑에도 머리카락에도 모래 먼지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IMG_1602.JPG 내 모자 어때요?
IMG_1333.JPG 네팔의 초등학교는 벽화와 만국기로 언제나 화려하다. 하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다!


고아원 아이들과 축구를 했을 때도 느낀 건데, 이 아이들은 정말이지 타고난 네팔인들이다. 산 속에 있는 초등학교인지라, 산소가 꽤 적은 편인데도 아이들은 쉽게 지치지를 않는다. 저번에 아이들과 축구경기를 했을 때는, 왕년에 여자 축구 선수를 꿈꿨던 터라 자신있게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꼬마 아이들을 상대로 철없이 골을 넣고서는 신나서 좋아하다가 어지러움을 느끼고 쓰러질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평생 운동도 안하다가 북한산같이 높은 산에 올라 격하게 뛴 것과 같으니 쓰러질 수 밖에.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어두운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달랑 쓰레빠 하나 신고 산길을 내 달리고, 해발 3000미터에서 축구를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에 불과하다. 이 얼마나 대단한 아이들인가, 참으로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IMG_1555.JPG 뛰어노는 저학년들을 지켜보는 형아들
IMG_1603.JPG 우리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듯, 땅의 균열도 차곡차곡 메워지는 중이야


정작 어떤 봉사를 했는지는 한마디도 안했는데, 우리는 주로 균열이 가고 무너진 바닥과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아이들의 교실과 운동장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나중에 네팔의 쓰레기에 대해선 더 자세히 다루고 싶은데, 네팔 사람들은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편이다. 이렇게 멋진 자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대체 어째서 쓰레기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안받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네팔에 오는 많은 봉사자들은 그 덕분에 쓰레기 청소라는 아주 1차원적인 봉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만큼 중요한 게 없다. 우리가 쓰레기를 주우면 꼬마 아이들은 와서 따라하기 마련. 그렇게 또 서로에게 좋은 배움을 주고 떠난다. 산너머 산 초등학교 아이들이 부디 멋지게 자라주길, 우리보다도 더 멋진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라며, 다시 산너머 산 우리 동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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