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와 람

우리의 첫번째 아이들

by 오지윤




그것은 도피였다.
우연한 기회로 떠났다는 말은 틀리다.
지쳐있었다.
남을 위해 오롯이 나를 수단화 해보고자 했다.
결과가 궁금했다.


네팔에 오기 전 날 동료 선생님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고 했다.

나는 이 어려운 문장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오스트리아에 7개월 동안 다녀온 직후였는데 당시 유행했던 YOLO라는 외침에 취해 자유롭다 못해 거만해져있었다. 한국에 태어난 나 자신을 미워했고 유럽인들처럼 살 수 없는 자신에게 괴로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의 나에겐 오직 취준생 - 직장인 - 결혼 - 육아로 이어지는 뻔한 줄줄이 소시지 같은 인생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레 초등학교 때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줄줄이 소시지 취급하던 거만한 25살의 머릿 속에 댕- 하고 지워지지 않는 큰 타격이 가해졌다.


나는 말못할 우울증같은 걸 알았다. 상담도 받아보고 약도 먹어봤다. 그러다 네팔에 갈 한국어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글을 보았고, 그렇게 네팔에 가게 된 것이다. 유럽에 고작 7개월 머물고서는 콧대 높아진 철없는 25살 여자애는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은 삶 속에 몰아부치고 싶었던 거다.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해 나를 수단화 시키고 싶었달까. 하늘 위를 부유하는 나의 몸둥아리를 지상으로 끌여내려줄 고귀한 경험이 필요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삶에서 내가 한 번쯤은 남을 위해 살아봤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었다.


IMG_2572.JPG 찬물로도 씩씩하게 목욕하는 히라와 람, 둘은 형제이다.
IMG_2583.JPG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햇빛 가득한 오후 야외에서 씻는 것이 체온유지에 유리하다
IMG_2614.JPG 몸집은 더 작지만 람이 히라의 형이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먼저 맞아준 건 단연 고아원의 아이들이었다. 8살 부터 18살까지 약 60명의 아이들이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다. 60명 아이들의 이름을 차근차근 외워가던 첫날 우리 마음에 제일 먼저 새겨진 이름은 바로 ‘히라’와 ‘람’이었다.


네팔은 한국과 달리 여전히 엄격한 결혼 규율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그 엄격한 법 중 하나가 바로 여자의 재혼에 관한 것이다. 여자가 남편과 사별 후 재혼 할 때 여자는 더이상 자신의 자식을 만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관습으로 인해 고아가 된 형제가 바로 히라와 람이었다. 하지만 생일조차 정확히 알 수 없는 히라와 람은 형제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다르게 생겨서 어떤 정보도 딱히 맞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둘은 서로를 형제라고 의지하며 9살, 10살이 될 때(나이도 정확하지 않지만)까지 이 고아원에서 커왔다.


IMG_2617.JPG 아이 추워! 아이 부끄러!
IMG_2620.JPG 언제나 고아원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히라
IMG_2623.JPG 서로 다른 생김새에도 우리가 완전히는 알 수 없는 사연이 있을지도.


네팔의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숭이처럼 제 멋대로 뛰어다니는 것이 람의 일이다. 람은 아직 왜소하고 말하는 것도 어눌하지만 히라보다 형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아팠다는 람은 8살짜리 동생들보다도 키가 작았다. 하지만 늘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며 또래아이들을 거느리는 모습은 누구보다 건강해보였다.


IMG_2631.JPG 시원한 바람이 깨끗한 몸에 닿는 기분, 참 시원해!
IMG_2624.JPG 우리는 형제에요


고아원 아주머니들이 한 데 모여 히라와 람을 목욕시키고 있었는데, 목욕을 마친 람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팬티바람으로 고아원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닌다. 이 때 람이 잊지 않는 일은, 괴성 지르기다. 자신이 왜 고아원에 오게 됐고 학교 친구들은 자신을 왜 놀려대는지 람은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람의 에너지는 오늘도 넘치고 오늘도 우리는 람을 사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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