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친구와 함께한 카트만두 여행
크리스티나 하리는 한국어 수업의 우등생이었다. 영어도 잘하고 수업을 진득하게 따라와주면서 우리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티나 하리가 우리와 함께 카트만두 여행을 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히말라야에서 포카라, 치트완, 중간에 학생들을 보러 다딩베시를 들려 우리는 카트만두로 돌아갔다. 네팔의 첫인상이었던 카트만두. 천식이 있는 나에게 카트만두 공기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매일 노란 콧물을 풀고 기침을 해야했다.
크리스티나 하리는 정말 웃긴 친구였다. 그는 다른 네팔 친구들과 다르게, 자신들의 문화나 종교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조적인 말을 하는 친구였다. "사원 다 똑같이 생겼는 걸, 볼 것도 없어" 라고 말하면서도 사원에 데려가서 위대한 역사에 대해 줄줄이 읊어준다든가. 뭐, 그랬다. 크리스티나 하리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신에서 따 온 이름이다. 날개가 있고 얼굴이 잘생긴 신, 크리스티나 하리. 다른 여러 신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신 저 신이 모두 크리스티나 하리라는 걸 알면 좀 어이가 없기도 했다.
크리스티나와 함께 간 사원의 일부가 대 지진 때 무너진 사진을 보고 슬펐던 건, 그 건축물이 너무 아름다워서이기도 했으나, 다른 이유도 있었다. 크리스티나 하리는 우리에게 네팔 학생들이 사원에서 랩을 하는 유튜브를 보여준 적이 있다. 고풍스러운 사원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손으로 힙합 제스처를 취하면서 빠른 랩을 해나갔다. 네팔 사람들에게 사원은 한국의 절이나 교회처럼 마음 먹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아니다. 사원을 중심으로 과일 가게가 즐비해 있고 사원에서 사람들은 쉬고 먹고 논다. 다른 종교들이 세속과 떨어지려고 한다면, 흰두교는 생활 중심에 있다. 100m 넘는 줄을 기다려 기도를 한 후, 이마에 붉은색 티카를 칠하고 직장에 가는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종교는 '삶'이라는 표현보다는 종교는 '생활'이란 표현이 걸맞는다.
시바신의 아들 가네시는 코끼리 머리를 하고 있는 흰두교의 신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티나 하리는 내게 왜 가네시가 코끼리 머리를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줬다.
아주 먼 옛날, 시바신의 아내 바르바띠가 숲 속에서 몸을 씻으려고 할 때였다. 시바신은 아들 가네시에게 바르바띠가 몸을 씻는 동안 아무도 보거나 들어가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했다. 얼마 후, 시바신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바르바띠를 보러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가네시가 시바신을 막아섰다고 한다. 시바신은 어이가 없었을 거다. 화가 난 시바신은 가네시의 머리를 날렸다. 하지만 곧 자신의 아들 머리를 날렸다는 것에 대해 후회가 들었고, 지나가는 코끼리의 머리를 따서 가네시에게 붙였다. 인도와 네팔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동물이 코끼리다. 가네시 신의 머리가 코끼리인 데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지나가는 동물이 코끼리여서 그렇다. 좀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너무 흥미로웠다.
사원 앞에는 언제나 종교적 의미의 작은 조각상이나 장식물들을 팔고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엄지 손가락 만한 기둥같은 것이다. 원형 기둥은 아니고 윗 부분은 산처럼 둥글고 부드럽게 깎여있다.
사람들은 그 작은 조형물을 쥐고 기도를 한다. 거리에도 그 조형물은 군데 군데 있다. 그리고 어떤 조형물은 그 밑에 원형 고리가 끼어져 있었다. 나는 크리스티나 하리에게 저게 대체 뭐냐고 물었고 그 답은 정말 기가 막혔다.
물론 크리스티나 하리가 정확한 정보를 이야기해줬다고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흰두교가 세속신앙이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답변이었다. 엄지 모양의 조형물은 바로 시바신의 남근상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원형의 고리는 시바신의 부인 바르바띠의 질을 말한다는 거였다. 크리스티나 하리는 설명 중에, "옴마니밤베홈"이라고 들어봤냐고 물었다.
우리는 당연히 들어봤다고 말했고, 크리스티나 하리는 그 뜻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옴"은 시바신의 정액을 뜻한다. 그래서 전체적인 뜻은 시바신의 씨앗이 세상을 만들었고, 그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란다. 흰두교에서 세상은 시바신과 바르바띠의 성교를 통해 탄생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바신의 남근과 정액은 곧 세상의 기원인 것이다.
나는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진짜냐고 물어봤겠지. 크리스티나 하리는 멍한 표정으로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그 조형물이 그런 뜻인줄 알고 기도하냐고 물었더니,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크리스티나 하리는 낄낄거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크리스티나 하리는 우리를 3000년 된, 즉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바의 남근상 앞으로 데려갔다.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먹었다. 지금까지 돌로 만들어진 작은 조형물만 봐왔는데, 1m는 족히 넘는 시뻘건 무언가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거대한 원 고리가 있었다. 그 원 고리에는 티카때문에 붉어진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사람들은 기도를 한 뒤, 그 물에 손을 적셨다.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조형물 앞에 서자, 관리인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티카를 내 이마에 먼져 발랐고 내게 기도를 하라고 했다. 내가 눈을 감자, 그는 손에 그 물을 가득 적셔서 내 얼굴에 뿌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거죠?라고 속으로는 깜짝 놀라 묻고 싶었으나, 정성스런 의식이었기에 감사하게 여기기로 했다. 너무나 직설적인 그것을 나는 한 참 넋 놓고 바라봤다. '옴'이라고 쓰여진 부분은 울퉁불퉁하고, 모양도 다른 것들과 다르게 너무나 디테일했다. 그래 3000년 된 것 같네. 어마어마하네.
내가 지금까지 학습해 온 '종교'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무언가였다. 옆에 있는 사원에는 시바신과 바르바띠가 행복하게 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부처도 예수도 언제나 고독하게 혼자 있는데, 시바신은 참 행복해 보였다. 흰두교는 대체 왜이렇게 흥미로운 것인가.
크리스티나 하리는 덧붙이길, 시바신은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인간이 죄를 지면 무서운 벌을 주기도 한다고. 네팔의 거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가장 인간다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존재가 필요했을까. 그래서 네팔 사람들은 시바신을 자신들의 신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찬 곳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0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바로 바그마티강이다. 인도의 갠지스강처럼 네팔에서도 이 강에서 화장을 하고 시체를 강에 흘려 보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내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수행을 하기도 한다.
강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화장되고 있는 시체 한 구와 마주쳤다. 사람들은 시체 위로 짚더미를 얹고 있었고 얼굴에 티카를 발라주었다. 주황색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시체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들은 엉엉 울었다. 그렇게 바로 옆에서도, 그 옆에서도 불이 활활 타올랐다. 짚더미 밖으로 삐쭉 나온 발을 봤다. 깨끗한 발바닥. 우리도 언젠가 저 자리에 놓일 것이기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끝까지 바라보았다.
여기 저기서 타오르는 불을 보면, 죽음이 얼마나 보편적인가 묻게 된다. 나의 죽음에 대해 골몰히 빠지면 공포감이 급습할 때도 있다. 그러나 죽음은 이렇게나 보편적이다. 어쩌면 특수한 불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하기 위해 이 공간이 있나 싶었다. 죽음은 강같은 거다. 삶만이 강이 아니다. 삶처럼 죽음도 흘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답이 나오는 거다. 물론, 그 답을 아직도 못찾았지만.
다리의 중간에 서서 강을 바라보려고 하는데, 강 한가운데를 소 한마리가 딱 가로막고 서있다. 소에게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는 우리를 보고, 네팔 할아버지가 와서 소를 가리키며 "GOD"이라고 말하고 간다. 네 발 달린 신을 죽음의 강에서 만났다. 그 소는 마치 사람 처럼 움직이지 않고 강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정말 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무게감이 있는 소였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꿈쩍도 않고 강을 바라보던 소 옆에 서서 나도 한 참을 서있었다. 어떠세요. 인간 세상 잘 돌아가는 것 같나요. 물어봐도 소는 대답이 없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