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를 위해
핸드폰 카메라 성능이 계속 업데이트 되는 걸 보며, 굳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찾아 보는 사진은 바로, 네팔 치트완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네팔 여행을 간다는 친구들은 대부분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러 간다. 그럼 나는 치트완에 꼭 가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거기 다녀와서 나와 대화를 나눠줘. 부탁이다. 물론 그들은 그 부탁을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치트완은 네팔의 평야 지대다. 다른 곳들이 산과 신의 땅이라면, 이곳은 정글과 동물의 땅이다. 아, 쓰기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어떤 나라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난 광경을 보게 되면, 나는 더없이 설렌다. 최근에는 벨기에가 그랬다. 무지했던 나는 벨기에가 프랑스의 아류라고만 생각했다. 그것도 프랑스가 심어놓은 인식이겠지만, 난 깜빡 속고 살았다. 물론 정치적, 경제적으로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파리처럼 코발트색 지붕이 대부분이고 꽤나 지저분하지만 로맨틱한 파리의 풍경을, 벨기에도 닮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뤼셀에 갔을 때, 한적하고 깨끗한 거리에 난 정말 송구해지고 말았다. 내가 가져온 스테레오타입이 완전히 박살났을 때, 나는 여행지에서 쾌감을 느낀다. 좀 변태적인가.
그래서 '히말라야'로 대표되는 네팔의 이미지 뒤에 있는 정글을 봤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늘 머리 속으로 상상만했던 자연의 풍경 앞에서 나는 엎드려 절을 할 뻔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모자라서 욕이 나올 뻔 했다. 공룡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에 더이상 산은 없었다. 드넓은 평야가 왜이리 반갑던지.
정글을 마주한 것만으로 치트완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점은 여러번에 걸쳐 천천히 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높은 고지에 있다가 땅에 발을 디딘 기분으로 그날 밤 나는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 6시에 숙소 주인이 나를 깨웠다. 새소리를 들으러 나가라는 거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더이상 지친 여행은 하기 싫었다. 편하고 여유로운 네팔을 느끼고 싶었다. 한마디로 늦잠을 자고 싶었다는 거다.
하지만 네팔사람들의 은근한 집요함은 나에게 왠지 모를 책임감을 불어 넣었다. 네팔 사람들에겐 배려를 집요하게 하는 신기한 기술이 있다. 그 배려는 은근하게 나의 책임이 되곤 한다. 네팔 사람이 만들어 준 밥은 남김 없이 깨끗이 먹게된다든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충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꽤 많은 여행자들이 새소리를 들으러 나와 있었다. 아니, 대체 무슨 새소리이길래. 우리는 안개가 자욱한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새소리들이 안개를 뚫고 내 귀까지 아주 선명하게 도착했다. 그러면 안내자가 그 새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해주었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의미부여를 하려고 해도, 새소리 듣기는 내게 인상깊지가 않았다.
그 때, 아주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실루엣이 등장했다. 풀들이 거대한 무게에 의해 짓겨지는 소리. 그 소리는 새 소리보다 섬세했다. 코끼리였다. 안개 속에서 코끼리가 차분하고 평화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위 에는 네팔 사람 두명이 타고 있었다. 코끼리는 아주 느렸다. 많은 양의 나무를 옮길 일이 아니었다면 사람 둘이 걸어가는 속도가 더 빨랐을 것이다.
안내자는 코끼리를 보고 말해줬다. 관광객들에게 정글 투어를 해주던 코끼리가 은퇴하고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주로 나무를 베어 옮길 때 도와주는 코끼리라고. 은퇴한 코끼리라니. 평화로운 발걸음이 그 때문이었을까. 그 당시, 은퇴를 하고 얼마 안됐던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설렘과 우울함을 오가는 중이었다.
셔터를 꽤 눌렀다. 코끼리가 저 멀리서 등장할 때부터였다. 몇 년 후 이 사진을 다시 꺼내 볼 때, 좋은 카메라가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좋은 카메라는 현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있는 거구나. 지금 이 순간 잘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 훗날 이 사진을 다시 꺼내 볼 때 더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있어야 하겠구나.
안개의 아득함마저 또렷하다. 필터를 써서 더 선명해지거나 더 있어보이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아득함이었다. 사진을 본 순간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 새벽의 찬 공기와 풀 냄새가 느껴진다. 새소리 산책 그룹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나의 모습과 천천히 지나가는 코끼리를 보는 나의 모습이, 제 3자가 되어 그려진다.
지금 우리 아빠는 은퇴한지 5년이 넘었다. 그날의 그 코끼리처럼 평온한 걸음을 걸을 줄 알았던 아빠는 평온을 넘어 권태로운 걸음을 걷는다. 매일 소파에 앉아 90년대 드라마를 보는 아빠는 종종 내게 우울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어, 아빠를 찍고 있다. 아빠는 왜 찍냐고 하면서도 해맑게 웃는다. 좋은 카메라가 또 몇년 후 나에게 아빠의 아득한 날들을 또렷하게 말해주겠지. 그것만으로도 나이 든 나와 더 나이든 아빠는 위로를 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