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읽는 책이라고는 정기구독 해놓은 매거진 <컨셉진>을 잠들기 전 잠시 읽는 게 다다. 그런 밤도 아주 가끔이지만. 고단했던 육아를 마치고, 오랜만에 <컨셉진>을 꺼내 들었다. 이번 호의 제목은 '당신은 긍정적인 사람인가요?'. 컨셉진에는 여러 컨텐츠가 있는데, 매달 주제에 맞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번 달 한 분의 인터뷰가 마음을 흔들었는데, 바로 정세정이란 분이다.
기분 좋은 미소를 가진 인터뷰이의 사진을 보자마자 마찬가지로 웃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고, 이름까지 꼭 닮은, 동생 세진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2016년 스물세살의 나이로 컨셉진에 입사해 2년 동안 에디터로 일하다 현재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고등학교 때부터 잡지를 사랑해 잡지의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정독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다는 친구의 말에 잡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잡지를 만드는 구성원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고. 당시에는 에디터란 자리가 더 귀했고, 부산에서는 그런 기회를 잡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에디터가 될 수 있다, 없다 확률을 따지는 시간에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기 위해 마음 맞는 친구들과 라이프매거진 <SOBAK>을 만든다. 그때 교과서 같은 잡지가 컨셉진이였다고.
인터뷰를 읽는 동안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질투심과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부산에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에디터의 꿈을 꿨다. 내 인생 많은 꿈이 스쳐 갔지만, 에디터란 직업은 가장 오래 품었던 꿈이다. 하지만 당시 부산에는 에디터는커녕 제대로 된 매거진조차 없었다. 그래도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말이 기자지 영업직과 같았던 기자생활을 겨우 이어갔다. 글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글에 대한 애정을 식게 만든 기자 생활을 접고, 안정적인 사무직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어느덧 이십 대 후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서울에서 에디터의 길을 도전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과 파주로 오가며 면접을 보고, 원룸도 알아봤다. 그 시기쯤 알게 된 컨셉진은 내가 가장 입사하고 싶었던 매거진이었지만, 공석이 없었다(그래도 용기 한 번 내 볼걸). 그러던 어느 날 한 매거진에서 고맙게도 이십 대 후반에 경력도 뒤죽박죽인 나를 채용해줬다. 사실 내가 원하는 매거진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내 에디터 인생의 중요한 시작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무하게도 나는 그 자리를 걷어찼다.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실은 서울에 올라가면서도, 면접을 보면서도, 원룸을 알아보면서도 불안했다. 서울에서 독립해 에디터로 살기. 이 간단한 열세글자가 참 어려웠다. 에디터란 단어가 독립이란 단어를 이기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는지, 아니면 상처투성이였던 사회생활을 하며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기회가 왔을 때는 가족과 떨어질 생각에 눈물을 흘렸고, 기회를 걷어찼을 때는 자신의 나약함에 눈물이 났다. 그 뒤로도 나의 직종은 다양하게 바뀌었다(나중에는 이것도 재주라는 생각이 들 정도).
이런 내게 부산에서 대학 생활을 마치기도 전에 서울에서 에디터의 삶을 산, 그것도 컨셉진에서 에디터 생활을 시작한 그녀의 인터뷰를 읽으며 여러 감정이 올라왔다. '만약에'란 단어와 함께.
세정 님을 보면 일 욕심이 많다고 느껴져요. 그런데 꿈이 크면 좌절도 크다고 하잖아요. 제게 세정 님은 긍정의 아이콘이었는데, 오늘 인터뷰에서 제 귀에 오랫동안 머문 단어는 '부담감'과 '책임감'이라 의외였어요.
사실 에디터 일을 할 때 스스로 좀 '바보'가 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노력하는 만큼 실력이 안 늘더라고요. 2년이 짧은 시간일 수는 있지만 평일 저녁, 주말까지 일해도 저보다 늦게 들어온 신입 에디터가 훨씬 글을 잘 쓰고, 감각이 좋은 걸 보고 제 능력에 의심이 가기도 했어요. 그때쯤 폴댄스를 배웠는데요. 봉을 처음 잡아보는 1일 차 회원님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했어요(웃음). 그때 분야마다 개인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능의 힘이 이렇게나 큰 거구나 하는 걸 몸소 경험했던 순간이었죠. 그때부터는 저도 제가 출발점이 앞선 영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는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에 도전하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컨셉진을 떠나 마케터로 이직했던 거죠?
컨셉진을 떠난 건 남들보다 앞선 출발점. 제가 가장 잘하는 걸 찾기 위해서였어요. 컨셉진에서 작문, 연출 등 감각적인 부분의 역량이 부족한 에디터였는데요. 모두가 "세정이가 기획은 정말 잘해."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때 '기획'이 무엇인지 확실히 감을 잡지는 못했지만, 이게 내가 찾던 '앞선 출발점인가? 하고 테스트해보기 위해 기획자로 직종을 바꾸었죠.
사실 그녀와 나는 에디터를 향한 열정부터 달랐다. 잡지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의 한 글자까지 놓치지 않고,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잡지를 향한 사랑이 남달랐던 그녀. 그리고 부산이란 지방의 한계에 좌절할 시간에 지금 할 수 있는 걸 찾아 실행하며 원하는 매거진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기에 좋아하는 곳에서 잘하는 곳으로, 새로운 도전도 가능했다.
나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했다. 좋아하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변덕스럽게 바뀌기도 하고, 정말 좋아하는 건지, 그 직업이 주는 느낌이 좋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혼란스러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좋아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인터뷰를 읽고, 평생 한구석에 처박혀 뒀던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대학교 때 개인 발표를 하던 어느 날. 나는 드라마에 대한 PPT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그때 교수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남아있다.
"혜진이는 2년 동안 세계여행하면서 여행 에세이 같은 거 쓰면 잘할 것 같아. 글로 쏟아내고 싶은 게 참 많아 보여."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기쁘고 설레던지. 준비한 PPT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 더 좋았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 여전히 글로 풀어내고 싶은 게 많다. 그래서 육아에 찌든 밤, 오늘도 시간을 내 아픈 손목을 붙잡고 무언갈 쓰고 있다. 그 시간이 힘이 된다.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의 아기 엄마가 되었다. 달라진 건 없다. 크든 작든 영원히 꿈꾸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