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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by 오람찌


오늘은 똘방이의 문화센터 여름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윤재와 봄학기를 함께하다 거리 때문에 여름학기는 각자 가까운 곳에서 듣기로 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우리의 버스시대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오전 수업은 처음이라 전날 밤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감사하게도 열한시까지 늘어지게 자는 그녀라 다른 집과 달리 11시 20분 수업이 우리에겐 촉박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9시 30분쯤 눈을 떠 아침을 먹이고, 응가를 갈고, 짐을 챙겨 서둘러 나왔다. 나와보니 오후 늦게 내릴 거라는 비가 벌써 찾아왔다. 약한 빗줄기에 고민하다 다시 올라가 우산을 챙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혼자면 금방인 거리지만, 우산과 기저귀 가방, 그리고 10kg이 넘어가는 아이를 안고 걸으니 멀게만 느껴진다.


걱정과 달리 수업 5분 전에 강의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 혼자 맨발에 노마스크다. 앞서 다닌 문센에서는 다들 마스크를 끼지 않길래 별생각 없이 노마스크로 왔는데, 여기는 아닌가 보다. 급하게 데스크로 가 마스크 하나를 받아 와 낀다. 생각보다 수강 인원이 많다. 서로 친분이 있는 엄마들도 많아 보인다. 겉으로 티 나진 않지만, 이런 자리가 편하진 않다. 슬쩍 윤재와 츄가 생각나지만, 똘방이와 함께 신나게 놀러 온 이 시간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번 수업은 한 권의 동화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자연물 놀이를 한다. 수업을 고를 때 정보는 많이 없었지만, 좋은 선생님을 기준으로 선택했는데, 수업에 적극적이고, 아이들에게 진심인 분이다. 똘방이가 남자를 별로 안 좋아해 여자 선생님 수업만 신청할까 하다, 이 기회에 남자 선생님도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신청했는데, 다행이다. 처음 본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빠르게 적응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한 언니에게 장난감을 건네주고, 선생님과 하이파이브도 하고, 포옹하기도 성공했다. 수업이 끝날 때는 아이들에게 비타민 캔디를 나눠주시는데, 이럴 때는 준비한 까까를 슬쩍 주면 된다. 그런데 이런, 까까를 챙겨오지 않았다. 당장 본인 손에 있는 이름 모를 먹을거리를 내놓아란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처음으로 비타민 캔디를 먹였다. 캔디가 떨어지기 전에 얼른 푸드코트로 가기 위해 마트 카트에 앉혀 서둘러 내려왔다. 그런데 이런, 강의실에 우산을 두고 왔다. 다시 우산을 가지러 올라간다.


푸드코트에 도착했다. 똘방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신중히 생각하다 쌀국수를 골랐다. 똘방이 인생 첫 쌀국수가 되겠다. 주문을 마치고 들어왔는데, 빈자리가 없다. 구석의 1인석을 겨우 발견했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는 마트라 모든 게 셀프다. 잠시 아기 의자와 음식을 가져오는 내내 오열하는 똘방이 덕에 정신이 없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혼자 푸드코트를 왔나 싶어진다. 아기 수저와 가위도 챙겨와 똘방이를 아기의자에 앉히려는데 옆 사람의 우산이 떨어졌다. 한 여성분이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우산을 줍는다. 사과한다. 배가 고팠는지 뜨거운 쌀국수를 바로 공격하려는 똘방이를 진정시키려고 뽀선생을 켰다. 먹기 좋게 면과 고기, 숙주를 잘라 떠 먹여주니 잘 받아먹는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한 입 먹어보려는 찰나, 직원이 와 카트를 밖으로 빼달라고 한다. 서둘러 카트를 빼는데, 뽀선생에 빠져있는 중에도 엄마가 잠시 자리 비운 걸 귀신같이 알고 울음이 터진 똘방. 오늘도 천천히 음미는 무슨, 마시며 먹는다. 그래도 비 오는 날 똘방이와 쌀국수를 먹는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이다.


식판을 치울 시간. 이번에는 엄마 식판 금방 가져다 놓고 오겠다며 친절하게 설명하니 가만히 있는다. 내가 잘못 했구먼. 뽀선생을 끄고, 의자에서 내려놓자 또 난리가 난 사람. 그렇다. 똘방이는 그 유명한 욕 나온다는 18개월이다. 오늘 뜨거운 시선을 몇 번이나 받는지 모르겠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분의 남편이 남 일 같지 않은 우리 상황을 웃으며 바라본다.


가볍게 장이라도 보려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급하게 아기띠에 앉혔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카트를 직접 끌겠다고 난리다. 겨우 카트를 제자리에 두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이미 마음이 상한 똘방이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운다. 오늘의 잘한 일 하나, 쪽쪽이를 챙긴 것. 쪽쪽이를 물려 겨우 달래고,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앞 좌석 등받이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가겠다는 그녀. 그 자리에 사람이 앉을 때까지 함께 손잡이를 잡고 가다 드디어 우리가 내리는 정류장에 다 와 간다. 그런데 신이 나 슬쩍 올린 똘방이의 왼쪽 발에 신발이 없다. 순간 눈을 의심한다. 버스에서 떨어졌나 싶어 급하게 찾아봐도 여기는 아닌 것 같다. 앞이 캄캄해진다. 찰나의 순간, 고민하다 다시 돌아가서 찾아보기로 한다.


환승을 찍고, 다시 반대 정류장으로 왔는데, 이 정류장에는 같은 번호의 버스밖에 가지 않아 환승이 안 된다. 한 정류장 전에 내렸으면 환승할 수 있었을 건데. 뭔가 꼬이기 시작하면, 다 삐뚤어져 보인다. 오늘의 나 참 청승맞다.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와 무무에게 전화해 넋두리한다. 걱정하며 몹시 안타까워하는 무무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난다.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이 쌓여 버거운 오전이 되었다. 두 사람과의 통화로 힘을 내 다시 버스를 타고, 마트로 향한다. 신발을 찾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그새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먼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살펴보니 없다. 마트로 간다. 가장 가능성 있는 푸드코트의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가니 여기도 없다. 허탈한 마음을 붙잡고, 직원을 찾는다.


"아기 신발 여기 있어요!"


깜짝 놀라서 가보니 한 아저씨가 따라오라고 하신다. 똘방이 신발을 진열장 한쪽에 예쁘게 올려두셨다. 위치를 보니 똘방이가 카트를 직접 끌려고 아등바등할 때 떨어졌나 보다. 아기 신발이 떨어져 있어, 찾으러 올 것 같아 따로 챙겨두셨다고.


"딱 보니 신발 찾는 거 같길래, 허허"


"어휴, 감사해요. 이 신발때매 집까지 갔다 다시 왔는데,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왕자가 유리구두의 주인, 신데렐라를 찾았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신발을 찾는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오늘의 오전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는데, 맛있는 거라도 있으면 드리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신발을 언제 발견해서 기다리고 계셨는지 궁금해진다. 어쨌든 아저씨는 오늘의 은인이다. 무사히 신발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하자 기뻐하며 두 사람 다 돌아가는 길은 택시를 타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나의 컨셉은 청승이다. 마지막도 버스여야 한다. 거기다 신발을 찾는 순간 새로운 힘을 얻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똘방이의 신발을 다시 한번 단디 신기고,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운수 좋은 날이다. 거기다 좋은 글감까지 얻었다. 신발 한 짝에 무한 긍정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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