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브런치
나는 브런치란 플랫폼이 만들어진 초창기에 작가가 된 사람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지런히 글을 썼으면 어땠을까, 의미 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기존 아이디를 버리고, 새롭게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먼저, 구남친이 그 아이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쳤다. 구남친이 카톡 프사 보는 것도 싫은데, 내 글을 본다고? 어휴. 그때의 경험으로 앞으로 남편이 아닌, 남친에게는 이런 공간을 오픈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남편도 쉽게 남이 되는 세상이 아닌가.
두 번째 그곳에서 나는 나를 숨기기 바빴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나이, 스물여섯에 멈춰있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의 구독자들은 내가 애 엄마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런 공간도 필요하긴 하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 하지만 핵심인 나를 숨기니 정작 알맹이가 없는 추상적인 글이 많았다. 또한 일상의 대부분이 육아인 지금, 그 아이디로 쓸 글은 더욱 할 말을 잃어갔다. 가장 큰 문제는 꾸준함이었다. 일 년에 글 한 번 올리지 않은 적도 있었다. 사실 기존 아이디는 브런치를 해봤다고 말하기도 우스울 정도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새로운 이름으로 브런치에 재입성했다.
설렘을 담아 작가신청 버튼을 눌렀는데, 전보다 많이 까다로워졌다. 내가 신청할 때만 해도 직접 쓴 글 한 개를 첨부하면 됐는데 말이다. 작가소개부터 막막했는데 순식간에 300글자를 넘겼다. 작가의 서랍에 써 놓은 글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 활동 중인 SNS나 홈페이지는 블로그를 첨부하면 됐고. 단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활동계획이었다. 활동계획이라뇨?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올리면 다행인데요. 과연 내가 어떤 활동계획을 쓸 수 있을까, 그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만 했다. 뻔한 거짓말을 꾸며내야 하는 기분이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계획을 작성했으니 그 계획은 바로 글을 처음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글과 함께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을, 목차를 만들어 소개했다. 찔렸다. 이렇게 거창한 활동계획을 쓸 만큼, 진심으로 글을 사랑할까. 진정 사랑했다면 그렇게 읽은 책이 없고, 글을 쓰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한 노력은 또 얼마나 초라했던가. 마음을 찌르는 질문만 떠올랐다. 활동계획 때문에 고배를 마실 수 있겠다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브런치는 나에게 또 한 번 속아 주었다.
얼른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막상 작가가 되자 고민에 빠졌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쓰지? 브런치는 글에 진심인 분들이 출판의 기회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리로 마음을 사로잡는 자신만의 주제와 컨셉을 가진 이야기꾼이 많았다. 그에 비해 내가 꺼낼 수 있는 나만의 카드는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게 애매했다. 제대로 공부를 해봤나, 놀아를 봤나, 한 분야에 미친 듯이 파고들어 봤나. 하다 만 것들만 넘쳤다. 몇 가지 떠오르는 주제가 있어도 괴로움에 그때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그때를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그려낼 자신이 없었다. 나이 탓인지, 출산 때문인지, 코로나 후유증인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기억력도 한몫했다. 주제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다 마음을 비웠다.
그래, 내가 지금 무슨 제대로 된 주제로 글을 써서 출판의 꿈을 꿀 주제냐. 고민하는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쓰자. 그렇게 브런치 선배들의 글을 읽고, 배워나가자. 그냥 나답게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써도 되니 꾸준히만 써보자. 그러다 우연히 나만의 주제가 떠오르면 재수고.
브런치를 하다, 인스타를 슬쩍하고, 최근 들어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스타는 나를 드러내기에 너무 요란하고, 그 속도감을 따라가기 벅차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이질감이 들었다. 그에 비해 블로그는 오래된 우리 집 마당처럼 편안해 이제는 나의 일상을 편하게 담고 있다. 한물간 블로그라 해도 네이버의 파워가 워낙 세니 브런치에 비해 방문자 수나 이웃을 늘리기 비교적 수월했다. 비밀댓글을 통해 몇 분의 이웃과 깊은 우정도 나누고 있다. 그들이 가까이 있는 그 누구보다 힘이 된 적도 있다.
브런치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나만의 색으로 예쁘게 채워가고 싶었지만, 어느새 뽀얀 먼지만 쌓여버린, 마음에 걸리는 나만의 다락방이었다.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었지만, 진짜 글쟁이들의 공간인 만큼 부족한 나의 글과 게으름이 그대로 드러날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새 날고뛰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내겐 이들을 보며 질투할 자격이 없다. 아무것도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신기하다. 정작 시간이 남아돌 때는 글을 쓰지 않다가, 육아하며 정신없는 틈 속에 아등바등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자신이. 나는 벼랑 끝에 서야 움직이는 사람인가 보다.
다른 무엇보다 꾸준히 쓰고 싶다. 원체 거북이에, 확인에, 재확인을 변태처럼 하는 사람이라 내가 말하는 꾸준함의 정도가 애매하지만, 더는 자신에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다. 구독자 수와 라이킷, 댓글 등을 알려주는 깜찍한 종 옆의 민트색 점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읽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를 구독해 줬다고 고민하지 말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분들의 글을 집중하며 구독하고 싶다. 이번 브런치는 나 자신이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단 걸 증명하는 시간이다. 무너진 자신과의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 번째 글을 준비하며 습관처럼 과거의 글을 뒤적거렸는데, 새로운 글을 30분 만에 후딱 써 내려가 뿌듯하다. 네 번째 글은 뭘까. 아무 계획 없지만,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나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