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선박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점심시간이었다. 자주 가던 중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가는데, 이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진심이긴 했지만, 바로 옆에 끔찍한 회사 선배를 두고 홀린 듯 노래를 찾아보긴 처음이었다. 다행히 나에겐 간편히 노래를 찾을 수 있는 앱 Shazam(샤잠)이 있었다. 끔찍한 그녀의 걸음도 잠시 멈추고, 노래를 획득했다.
015B, 오왠(O.WHEN)의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란 곡이었다. 1994년 015B 4집 앨범의 수록곡으로 2017년 오왠이 리메이크했다. 리메이크되면서 '하늘나라'란 가사가 '다음 세상'으로 바뀌어 한결 자연스러워진 느낌이다.
어떤 음악이 갑자기 훅 다가오는 건 지금 내 상황에 맞는 포인트가 있을 확률이 높다. 당시 나는 드라마 같은 인연으로 만나, 십 년 만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첫사랑과 연애 중이었다. 당시에는 첫사랑이자 끝사랑이 되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이 노래가 꽂힌 시기는 그 달콤한 사랑에 쌉싸름한 맛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던 때다. 너무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은 개소린 줄 알았다. 조금 다르지만, 너무 사랑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점점 헤어짐에 가까워져 갔다. 그때 나의 귓가에 들려온 이 노래의 가사와 선율, 담담한 듯 다정한 오왠의 목소리가 깊이 파고들었다.
이 노래를 알게 된 여름. 그해 겨울이 될 때까지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린 날들이 늘어갔다. 어느덧 이 곡은 이별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이별이란 단어가 떠오른 지 반년이 지났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만 새까맣게 타들어 가던 어느 날.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날은 우리가 연인으로 만난 마지막 날이었다. 하필 그날 갑자기 찾아온 몸살감기에 그는 많이 힘들어하다 선잠에 들었다. 그런 그를 걱정스레 바라보는데, 갑자기 내 안의 모든 감정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넘쳐흐르는 눈물을 겨우 소리 없이 흘러 보냈다. 이상하게도 이 순간, 이제는 정말 우리가 맞잡은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눈만 감아도 그려지던 익숙하고, 당연했던 얼굴을 어쩌면 다시 못 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우리의 이별은 열린 결말이었다. 누구든 한 명이 손을 내밀면 기다렸단 듯 그 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손을 내밀 수 없었다.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두 배의 각오가 필요했다. 마음만 앞서가기엔 열일곱, 열여덟 알게 된 우리가 어느덧 서른이 되어 있었다.
이 노래는 내 인생의 가장 시린 이별을 떠오르게 하는 곡이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이 가사가 헤어지기 전에는 이별의 의미로 해석됐는데, 헤어지고 나서는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여지가 담긴 위험한 곡이기도 했다.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이 노래를 담담하게 들을 수 있는 날이 왔다.
문득 반짝이던 그 시절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의 우리가 그리운지, 내가 그리운지 모르겠다. 단 하나 분명한 건 그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상처 많은 내게 사랑이란 이처럼 즐겁고, 눈부시고, 달콤하단 걸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헤어져도 서로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 만날 거냐고? 아니오. 다음 세상에는 덱스같은 남자 만나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