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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울적한 밤

by 오람찌


2023.9.23.


너무 힘든 하루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이 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문득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래를 겪고 왔는데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고, 이 부분은 조심해야 해. 입이 조금 가벼우신 울 아부지 빼고 엄마와 동생에게는 내 상황을 말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굳은 머리로 공부는 다시 할 수 있으려나? 그러려면 그때의 상태 그대로에 지금의 내 머릿속을 가져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맺어준 인연, 내 동생과 세지니는 꼭 다시 만나게 해주고 싶은데, 이를 어쩌지. 다시 그 문디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퇴사해야 세지니를 만날 수 있는데, 언제 퇴사했더라? 다시 살아도 세지니는 그 회사에 입사할까? 드라마는 안 봤지만, 마치 실제 진도준이 된 것처럼 진지하게 상황에 빠져 의미 없는 걱정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혜진아~"


나를 부르던 한결같이 독특하고 다정한 억양. 그래서 평생 잊을 수 없을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당장 할머니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야지. 그리고 할머니를 빨리 데려가 버린 나쁜 암 덩어리를 없애기 위해 내시경부터 받게 해드려야지.'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한동안 너무 잊고 살았던 우리 할마나. 내가 잘 살아야 할 이유. 그곳에서도 항상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계실 내 사랑을 생각하며, 더 굳세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소중한 이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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