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우리였나요?
나의 10월은 새벽 2시는 기본이요, 아침이 동터올 때 잠든 날도 꽤 있었다. 그 이유는 미스츄 덕에 웹툰에 이제서야, 제대로, 빠졌기 때문이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빠 덕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만화책과 가까웠지만, 만화는 종이책이 진리라 생각해 웹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웬걸, 늦게 빠진 웹툰의 세상은 나를 제대로 사로잡았다. 시뻘건 눈이 되어 보고 또 봐도 띵작들은 넘쳐났다. 부족한 건 오직 나의 시간과 체력뿐이었다.
이 띵작들은 언젠가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하고, 오늘 이야기해 볼 웹툰은 아홉수 우리들이다. 2019년 3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사랑받고 있는 웹툰이다. 처음 츄에게 이 웹툰을 추천받았을 때는 그림체가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그림이 마음에 들어야 시작하는 사람). 하지만 거듭해서 꼭 봐야 한다며 추천하는 츄덕에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의 웹툰 취향은 여러모로 상당히(?) 통해서 이 정도 추천에는 이유가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 스물아홉, 세 명의 우리에게 푹 빠져버렸다. 이 웹툰을 보고 나면 다른 웹툰은 조금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스토리가 탄탄하다. 아기자기하고 색감이 예쁜 그림도 빠져든다. 웹툰을 읽으며 지나간 나의 20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용기와 동기부여도 받았다. 마치 그녀들의 언니가 된 듯, 같은 마음으로 웃고, 울컥했고, 지금보다 훨씬 서툴고 약해 상처투성이였던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이 웹툰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에 기억에 남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진짜 좋은 친구는, 슬플 때 같이 울어주는 친구가 아니라 기쁠 때 진심으로 같이 웃어주는 친구라고. 이런 대사가 있다. 이 대사는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확신으로 바뀌었던 생각이라 깊이 공감했다. 누군가의 슬픔을 공감하기도 쉽지 않지만, 누군가의 기쁨을 진심으로 공감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본인에게 결핍된 부분이라면 더 그렇다. 실제 누군가에게 나의 기쁜 소식을 전했을 때 그렇지 않은 상대를 마음을 의도치 않게 포착한 적도 있다. 찰나의 순간에 표정으로 드러났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나에게 물어보자. 나는 모든 친구의 기쁨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가? 나의 기쁨을 진심으로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친구는 얼마나 될까? 서로의 기쁨과 슬픔 모두를 진심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꽤 괜찮은 인생이다. 내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야겠다.
2. 여기 두 명의 친구가 있다. 내가 무척 아끼고, 더 가까이 지내고 싶지만, (충분히 볼 수 있음에도)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친구. 그리고 평범한 친구 중 하나지만, 꾸준히 나를 찾아주는 친구. 나는 요즘 후자의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예전 같았으면 전자의 친구와 어떻게든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일방적인 관계는 의미가 없다. 학생에서 취준생, 고단했던 사회생활, 그리고 결혼과 임신에 이어 출산까지. 다이나믹하게 변하고 있는 나의 환경만큼이나 친구와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 그 와중에 부족한 나란 사람에게 여전히 관심을 주고, 보고 싶어 해주는 친구에게 고맙다.
3. 한 친구의 취업 소식을 들었다. 태어나 들었던 취업 소식 중 가장 기뻤다. 친구는 참 오랜 시간을 돌아 취업의 문턱을 통과했다. 충분히 좌절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끊임없이 도전했던 친구의 값진 결과였다. 그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그날 밤에도 아홉수 우리들을 읽었다. 그때 읽었던 편이 평생 부모님의 꿈을 위해 살아왔던 김우리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더 이상 부모님의 꿈이 아닌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한 걸음 다가서기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문득 낮에 만났던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하는 나는 요즘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질문까지는 괜찮았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그때로 돌아가면 ㅇㅇ대 자퇴 안 할 거가?"
"약대 준비도 안 할 거제?"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 돌이켜보니 어처구니가 없고, 친구에게 몹시 미안해졌다. 김우리는 의사·교수 집안의 딸로 평생 당연하게 공부했다. 공부가 곧 그녀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그 당연했던 공부가 서서히 자신을 집어삼켜 몸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 자신의 속도 모르는 부모님의 기대만큼이나 실망은 커지고, 사람들은 김우리를 향해 잘난 부모 만나 호강한다고 말한다. 평생 부모의 말에 한 번 대들어 본 적도 없던 김우리는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살기 위해 자신의 삶과 마음을 살피고, 용기를 내 공부를 놓아준다. 그 모습을 보고 낮에 봤던 친구가 떠올랐다. 연이은 실패와 좌절 속에도 꾸준히 공부하고 도전했던 친구. 누군가에겐 실패로 보일 수 있는 순간들은 알고 보니 '용기'였고, 그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단단한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모든 순간이 소중한 과정이었다. 친구의 그런 값진 과정을 나는 너무 쉽게 말했다.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4. 세 명의 우리 중 하나인 봉우리는 자신만의 독특하면서 사랑스러운 감성을 옷으로도 잘 표현한다.
"나는 봉우리 보니까 언니 생각나더라. 옷 입는 스타일도 그렇고."
지금은 추리닝밖에 못 입는 몸이라며 웃어넘겼지만, 츄의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랬다. 나는 옷 입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눈에 띄는 건 싫지만, 누구나 다 입는 평범한 옷은 싫고, 나만의 개성이 담긴 옷으로 꾸미기를 좋아했다. 오늘은 뭐 입을지 신이 나서 옷장을 뒤지던 어느 날의 내가 떠올랐다. 비록 뱃살이 막막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생 관리하기로 다짐했다.
5. 연애는 안준이랑 하되 결혼은 김산같은 남자랑 해야 한다, 봉우리야.
6. 최애 커플은 차우리x여민혁.
7. 이런 웹툰이야말로 단행본을 구입해야 한다.
작가의 데뷔작인, 아홉수 우리들.
이미 읽으신 분은 작가의 인터뷰 보시고,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27803307&memberNo=47852684&vType=VERTICAL
안 읽은 분은 1화부터 함께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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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titleId=724815&n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