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빈틈없는 141분, 서울의 봄

by 오람찌


이주 연속 영화를 보는 행운을 얻었다. 이번에는 무무의 생일을 맞아 무무가 보고 싶어 한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나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무가 아니었으면, 영화관에서 굳이 찾아보았을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웬걸. 영화의 여운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는 경험을 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빈틈없는 141분이었다.


나는 부끄럽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내 마음을 흔들었던 정치인도 없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믿을 사람이 없어서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오며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정치인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를 들어왔다. 역대 대통령의 대부분은 일장일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극명히 다른 그들의 양면적인 모습에 같은 인물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서울의 봄>의 황정민이 연기하는 전두광이란 자는 분명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말하는 나쁜 놈.


<서울의 봄>은 이 나쁜 놈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었는지, 실화를 바탕에 두고 영화적 픽션이 가미된 영화다.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40일 동안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다음 이야기로 혼란스러운 틈에 발생한 1979년 12월 12일의 치열했던 밤을 보여준다. 어쩌면 억지스럽고, 과해 보일 수 있는 부분도 배우들의 미친 연기와 숨 막히는 연출로 꽉꽉 채워 넣었다.



이태신 교육참모부 차장: 요즘 입만 뻥긋하면 보안사로 바로 끌려간다던데, 그 말이 맞습니까? 세상이 서울의 봄이다 뭐다 해서 분위기 좋아지고 있는데, 각하 사건하고 관련 없는 사람들 잡아다 족친다고 뭐가 나오겠습니까? 전 장군 애국하는 거야 다 알고 있지만, 너무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전두광 보안사령관: 그거는, 제가 잘 알아서 할게요.

이태신 교육참모부 차장: 네,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저렇게 몰려 다니는 거 솔직히 보기 안 좋습니다.

전두광 보안사령관: 이 장군, 난 말입니다. 이참에 우리 둘이 친해 볼까 하는 마음도 솔직히 좀 있어요. 뭐 이런 이 어려운 시국에, 서로 같은 편 하면 큰 힘이 되고 그랄 텐데.

이태신 교육참모부 차장: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

전두광 보안사령관: 와아… 그렇습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이 영화의 핵심 인물인 이태신과 전두광.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성질의 사람이고, 그들이 가는 길은 명백히 다를 것임을 암시한다.


이날 밤 전두광이란 사람의 개인적 욕망으로 시작된 반란에 최전선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려 오고, 급박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자리를 지켜야 했던 사람은 숨어 있다 8시간 만에 나타난다. 이 기막힌 밤을 지켜보고 있으면, 혼자서 특전사 사령관을 지키다 절친한 중령에게 총을 맞아 전사한 김오랑 소령의 이야기가 오히려 허구처럼 느껴진다.


35년 동안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이겨내고 찾아온 광복. 그 행복을 만끽할 틈도 없이 3년간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고, 나라는 반토막이 났다. 더 이상 무엇이 남아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 반토막 난 사람들끼리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이날 밤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이날 밤에도 역사가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너무 쉽게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인간들과 그 악몽 속에서도 끝까지 도리를 지켜낸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속에서 얻은 역사적 교훈을 실천해야 한다. 여전히 갑갑한 현실이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두 시간이었다.



common (7).jpg
common (8).jpg
common (9).jpg
common (10).jpg
common (11).jpg
common (12).jpg
common (6).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홉수 우리들을 읽고 떠오른 여러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