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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유 Feb 08. 2024

작별 인사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요 근래 어머니는 눈물이 많아졌다. 최근 일년 사이 아버지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지속적인 혈액 투석을 하지 않으면 삶을 연명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어느날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자살을 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심신이 많이 지쳐보였다.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많이 울었다. 


내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상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물론 그렇다고 술에 취해 부인이나 자식을 패는 그런 쓰레기는 절대 아니었다. 가족보다는 형제를 우선했고, 아내보다는 부모를 우선한 사람이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아버지는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결과 우리 집안의 가세는 날이 갈수록 기울었고 결국 집안의 가장 역은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은퇴할 나이에 이르러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했고, 자존심 때문에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던 아파트 경비라든가 고물상 일 같은 것을 했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마저도 오래는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거리감이 생겼다. 나와도 많은 일이 있었다. 돈에 관해 특히 안 좋은 일이 여럿 있었다.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타지에 사는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어머니와 전화를 걸어 마치 딸처럼 한시간 씩 즐겁게 수다를 떨고는 하지만, 내 핸드폰에는 아버지의 전화번호 조차 없을 정도로. 그런 아버지였다. 그런 아들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죽을 날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못된 남편이어서 미안하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못난 아버지여서 미안하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곧바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병약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수술도 거부한 상태였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아버지. 저 생각은 이제 마세요. 아버지도 최선을 다하셨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그렇게 아버지를 안아주었다. 조금만 버텨주세요. 곧 있으면 아들이 쓴 책이 나올 거예요. 곧 있으면 아들이 쓴 드라마가 티브이에 나올 거예요.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아들은 이렇게 잘 살아왔으니까요.


서울에 일이 있어 요양병원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내일이 설인데도 나는 일 때문에 주말에도 회사를 가야 했다. 딱 1박2일간 고향에 지내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이것이 아버지와의 만남이라 생각하니 기차역으로 가는 길 내내 눈물이 났고, 또 환멸감이 났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견디며 사는 걸까. 다들 이처럼 어마무지한 슬픔과 상실감을 갖고 살텐데 도대체 무엇으로.


공교롭게도 기차역 인근에는 내가 한때 다녔던 회사가 있었다. 나는 그 회사에서 3년을 보냈다. 그러다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사표를 냈다. 나의 상사는 세 번이나 나의 사표를 반려했다. 자네 나이 서른이네. 꿈을 찾아갈 나이가 아니네.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자네 지금 만나는 여자도 있잖아. 이제 결혼을 해야지. 하지만 내 상사는 내 고집을 꺽지 못했다. 결국 상사는 내 사표를 받아들였고, 자신에게 약속을 하라고 말했다. 자네 말대로 꼭 작가가 되어야 하네. 작가가 되거든 꼭 비싼 술을 사야하네. 그랬던 적이 있었다. 



기차역 인근에서 나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으로 조금 울고 있었다.  그리고 참 만화스럽게도 거기서 그 상사를 만났다. 점심시간 즈음이었다. 식당에서 나오던 상사는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던 나를 용케도 알아보았다. 그러더니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조금 놀랐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 하며 눈물을 숨겼다. 그리고 그를 보고 웃었다. 슬픔을 숨키기 위해 지은 거짓 웃음이 아니었다. 거진 5년 만에 만나는 그 상사가 진심으로 너무도 눈물 겹게 반가워 진심으로 나온 미소였다. 벤치에서 우리는 짧게 이야기를 했다. 잠깐 일이 있어 고향에 들렸는데, 이제 다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나누었다. 상사는 내가 결국 작가가 되었다는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자네가 해낼 줄 알았어. 난 언젠가 자네 소식을 신문으로 들을 날이 올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나와 그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예고하지 않은 상사와의 만남은 아버지와의 작별이란 슬픔을 눈 녹듯이 녹이고 말았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로군. 그렇게 나는 인파 사이에 섞였다. 나와 같은 어마무지한 슬픔과 상실감을 저마다의 가슴 한켠에 간직한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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