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에서 마주한 역사의 흔적
동인천은 월미도, 차이나타운,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개항로 등으로 유명하다. 가볼 만한 곳과 유명 관광지도 많지만, 이번에는 특별하게 '배움'에 초점을 맞추어 투어를 계획했다.
동인천에 있는 행정동인 송림동과 송현동을 찾았다. 이쪽은 인천의 다른 지역보다 큰 빌딩도, 고급 아파트도 적은 편이다. 이런 곳에서 무슨 배움이냐 할 수 있겠지만, 흔히들 떠올리는 교육인 학교 또는 학원 같은 것이 아니다.
동인천에서 찾을 수 있는 배움은 틀에 박힌 것이 아닌,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사건, 과거와 현재의 연결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아는 것은 현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리가 사는 땅과 살아가는 사람 모두 과거가 존재했기에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은 우리의 뿌리와 줄기를 잇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줄기에 잎이 자란다고 한들 뿌리가 빈약하다면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고, 당장 미래에만 연연하며 가지만 뻗어내는 나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자, 이제 뿌리를 튼튼하게 키우러 떠나보자.
요즘 사람들은 성냥을 모른다?
먼저 송림동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있는 배다리 성냥 마을박물관으로 향했다. 천천히 둘러보는 중, 해설이 필요하냐는 직원분의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잠시 기다리니 해설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해설은 무료이며 배다리 성냥 마을박물관뿐만 아니라 배다리 마을 전체도 가능하다고 하니 필요한 사람들은 예약 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해설사님께 "어려 보이는데 성냥을 알아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성냥이라는 존재를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사용해본 적도 많이 없었기에 성냥을 안다고 답했지만, 과연 진정으로 아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떠오른 의문에 허우적대다가 아주 어렸을 때 집에 성냥갑이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 뒤로는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기 위한 성냥을 제외하고는 성냥을 마주한 기억이 없다. 2000년대생부터는 아예 성냥 자체를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요즘은 성냥이 아닌 라이터를 주로 쓰니 말이다. 미래에는 성냥이 완전히 멸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하였지만,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성냥박물관이 있으니 걱정을 한시름 덜어냈다.
지킬수록 소중해지는 것들
그 뒤로 해설사님께서 해주시는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곳 성냥 마을박물관은 동인천 우체국이 있던 자리를 동구천에서 사들여 만들었으며 건물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조선인촌주식회사라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냥공장이 있었다. 이 공장은 우리나라의 성냥 총생산량의 1/3을 생산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알만하다. 공장의 규모가 커서 소녀들이 고된 노동을 하는 등 노동의 착취가 있었으며 때로는 견학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인천은 공장이 위치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신의주에서 목재를 가져와 인천 앞바다로 들인 후 상권이 발달한 서울에서 판매하기에 좋은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동네 주민은 성냥갑을 접고 성냥개비를 포장하는 일을 밤마다 모여서 했다. 그 돈으로 반찬값을 벌며 힘든 시기 쏠쏠한 부업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동인천 우체국의 금고 자리이다. 동인천 우체국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어 그 가치를 보존했음을 알 수 있다. 필요 없는 것이라고 없애기보다 그대로 보존하여 역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치 추억 저장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추억이 모두 소중하듯 건물의 의미도,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추억들까지 모두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새로운 유행이 빠르게 들어온다 해도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라면 남겨두는 것이 어떨까. 남겨진 가치는 뿌리 깊게 박혀 가지를 뻗칠 힘을 준다.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알아가며 지켜주자. 개인의 것이든, 우리나라의 역사가 되었든 말이다.
금고 속으로 들어가면 성냥들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있다. 과거의 성냥은 현재 휴지처럼 집들이 선물로 인기였다. 또 가게 등의 홍보용으로도 성냥갑을 제작하여 나눠주었다. 마치 현재의 상표가 적힌 라이터처럼 말이다. 지금은 인덕션, 가스 등 불이 필요할 때 언제든 쓸 수 있지만, 과거에는 성냥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890년대 성냥은 거의 없어졌고 현재 남은 성냥공장은 케이크를 사면 같이 주는 성냥을 만드는 공장 하나뿐이다.
이렇게 과거의 물건은 가치가 변하여 활용법도 변하게 되고 다른 물건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런 성격이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사람도 능력에 따라 쓰임이 생기고, 인력이 다른 인력으로 대체되기도 하는 것이 성냥과 비슷해 보였다. 어쩌면 인간이 만든 물건은 인간의 특성을 잔뜩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성냥을 만드는 과정을 알아보았다. 내가 알던 성냥은 값싼 옛날 물건이라고 생각했기에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힘들었던 시절, 성냥을 생산했을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생각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노동에 동원되었을 사람들은 더욱더 아팠을 것이며, 어린아이들도 공장에서 13~16시간 동안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고 하니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그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듯하여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마지막으로 외국인이 쓰던 양철 성냥 케이스와 석유난로, 담배함 등 성냥을 이용해 사용했던 그 시절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왜 성냥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이유를 찾아보니 불의 소중함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고 싶으면 전기밥솥이 지어줬고, 물을 끓이고 싶으면 전기포트를 가동했으며, 요리할 때는 인덕션이 뜨겁게 달구어 줬고, 초를 켜고 싶으면 라이터가 있었다. 모두 성냥보다 목적에 맞는 간편한 사용법을 가진 물건들이다. 간단하기에 당연했고 당연한 행위들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물건들이 생기기 전에는 성냥이 모든 역할을 대신했다.
인류문명의 혁신 중 '불'의 발견이 있는 만큼 인간은 불 없이 살 수 없다. 만약 전기 또는 가스가 끊겨 문명보다는 본질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 온다면 성냥은 다시 주목받을 것이다. 현대의 기술보다는 원시적인 간단한 사용법이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다시 성냥의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보존할수록 특별해지는 것들
성냥박물관을 나와서 알록달록한 문과 양철 구조물이 놓인 1층과 2층의 빨간 벽돌의 조화가 인상 깊은 건물로 향했다. 이곳은 과거 인천문화양조장으로 '소성주'를 생산했던 공장이다.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 폐공장을 개조하여 전시,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버려질 뻔했던 공간을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은 많은 폐건물의 훌륭한 예시가 되었다. 동인천에 와야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건축물 때문에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양조장으로 사용하던 시설의 약도와 현재 어떤 전시가 진행 중인지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포스트잇에 자필로 적이 놓은 글씨들이 꽤 귀엽게 보였다.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 담긴 빨간 공중전화 부스 속 포스트잇에서 여러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또 1층 한편에는 칠판에 글씨를 쓸 수 있는 곳도 있어 학교 다니던 시절이 연상되기도 했다. 사실은 폐공장이라는 단어를 듣고 차갑고 낙후된 느낌을 생각했다. 하지만 마구 붙여놓은 포스트잇과 여러 사람이 다녀간 듯한 흔적들이 온기를 불어넣으며 정감 있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공장의 흔적은 그대로 두면서 이 장소만의 특색 있는 볼거리를 곳곳에 잘 배치한 듯 보였다. 아쉽게도 내가 방문했을 때는 1층의 대부분 공간이 공사 중이라 자세히 관람할 수는 없었지만, 텅 비어 있는 곳은 공간 자체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과거의 공장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어 더 좋았던 것 같다.
2층 계단을 올라가면 무인 서점으로 이용되는 커넥더닷츠가 있다.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있고 잘 꾸며놓아 마치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적어놓은 책들도 있었는데, 천천히 살펴보니 책방 주인의 정성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서점을 나서니 반짝이는 구조물이 반겨주었다. 여러 구조물이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은 듯 모여있어서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특이한 이 공간을 한참을 바라보다 길을 나섰다.
인천문화양조장은 사라질뻔한 장소가 전시공간이 되면서 오히려 트렌디한 감성을 불러오는 특이한 장소이다. 바닥, 벽, 창문까지 깔끔한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현대적임에 지친 사람들에게 흐트러짐이란 더 큰 매력을 느끼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도시의 거의 모든 건물과 장소들은 각 잡힌 사각형의 모양을 유지하며 깔끔함을 풍긴다. 정리된 것이 좋기도 하지만 가끔은 너무 깔끔한 풍경들에 지치기도 한다. 흐트러진 이 공간이 더 돋보이는 이유다.
오래 보존된 건물은 건축양식도 원래의 기능도 그 속의 사람들까지도 모두 역사적 연구 대상이 되며 중요한 가치가 된다. 지어졌을 때는 아무 특징이 없던 그저 그런 공간도 말이다. 어른을 공경하듯 세월을 한껏 머금은 공간은 공경과 배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월을 머금은 만큼 깊게 파인 주름도, 삐뚤빼뚤 상처도 많겠지만 그런 흔적들이 모두 독특한 형상이 되어 빛나는 시점이 온다. 나도 세월을 머금으며 빛날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그 시절, 달동네
다음 행선지는 동인천 송현동에 있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다.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달동네의 최초 시작은 1908년 송현배수지가 만들어질 무렵이며 2000년대 후반 도시 재개발 때문에 달동네는 사라졌다. 여기서 달동네란 높은 산자락에서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 '달나라 천막촌'에서 유래되었다. 인천광역시 동구청은 사라진 수도국산 달동네를 되살리고자 달동네 터에 박물관을 건립했다.
표를 끊은 뒤 안으로 입장했다. 내부는 정말 시간여행 한 듯 과거의 것들을 듬뿍 담고 있었다. 그 시절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과거 사람들의 일상이 그려지는 듯했다.
현실감이 넘쳤다. 영화 세트장으로 써도 될 만큼 과거의 거리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과 달리 높은 건물도, 반듯이 정리된 바닥도 찾아볼 수 없는 곳. 낮은 건물과 집 안에서 밥 짓는 향이 풍기는 듯한 정감 있는 골목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의 달동네 사진이 전시된 곳도 있었다. 실제 과거 사진을 보니 신기했다. 비록 흑백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볼 수 없는 집, 거리, 옷차림이니 말이다. 한국이 아닌 외국 사진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고 처음 보는 풍경은 과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 뒤로는 집을 만들었던 재료, 공간을 활용했던 방법, 부엌의 모습까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솔직히 혼자 다니기에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어두운 거리에 빨간 조명이 켜있던 화장실도 있었고 마네킹 같은 사람들의 모형도 있었다. 박물관을 좀 더 밝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과거에는 가로등이나 밝게 거리를 비출 네온사인 등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에 박물관을 다시 보니 어두운 편이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가 밝은 거리에 익숙했을 뿐이다.
검정고무신 만화 속 장면이 눈앞에서 재생되기도 했는데 주인공들의 귀여운 모습이 떠올라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과거의 상점, 집, 화장실, 골목 등 여러 장소를 둘러보던 중 영어 간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길거리에 영어 간판이 우후죽순 생겨나며 영어로 세련된 이미지를 표현하며 한글보다는 영어를 더 선호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오랜 간판을 보며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궁서체, 굴림체 등의 다양한 글씨체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한 한국어의 간판이 많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 한국어만으로도 꽉 차는 이 느낌이 아주 예뻤다. 한글이 좋은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오늘 다녀온 장소에서 옛것들의 소중함, 과거로부터의 영감, 오래될수록 더 빛나는 것을 배웠다. 오래된 것을 촌스럽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다시 보고, 자세히 보고, 계속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 촌스러운 것은 없다. 각자의 취향, 또는 시점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유행은 돌고 돌며 복고풍 감성이 생기기도 하고, 복고풍의 의상이 다시 유행되기도 한다. 지금 세련되었다고 하는 이미지도 곧 유행에 뒤처진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동인천 송림동과 송현동을 탐방하며 역사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의 소개한 내용 외에도 가볼 곳이 넘치는 동네이다. 역사를 보존하고 조화로운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이곳만큼 풍족한 동네가 있을까? 역사를 보존한 거리와 박물관, 전시관을 많이 만들어서 인천 역사교육의 대표적인 동네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적 자산이 많은 이곳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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