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유발자들 | 진심이 소진으로 바뀌기까지

이탈유발자들 Intro

by 블루콤마


"콤마님.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거예요?"


글쓰기 아카데미 강사님이

내가 쓴 글 몇 편을 읽고

정적을 깨며 물으셨다.


누군가 내 인생에 대해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적이 없어서,

나는 황망한 미소만 지었다.


강사님은 그 짧은 글에서도

내가 감당해 왔던 숨 막혔던 감정들을

읽으셨던 모양이다.


그건 타인에게 받은 질문 중

가장 눈물이 날 것 같은 질문이었다.


어쩌면 그날이 처음이었다.

내가 꽤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속감을 좋아했다.


보수적이었던 가정환경 덕분에

한국 사회 전체에 깔려있던

공동체 중심의 가치관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어떤 네임택을 달았는지'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달아나기보다는

그 안에서 치열하게

성장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니,

소속감을 갖는 건

숨 쉬는 것처럼

내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애를 쓰며 살았다.


그때의 나는 성적, 취업, 승진, 인간관계가

자신의 노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믿었고,


'조직'에 속하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헌신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진심이 전해질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애써 만든 울타리 속에 살던

어느 날,

허무함이 찾아왔다.


커리어를 쌓고 있던 조직, 가까운 친구들,

사회 초년생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동료들,

그리고 가장 곁에 있던 가족.


애써 만들었던 울타리가

내 숨을 조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진심이 전해지지 않아서,

노력이 부족해서,

균형이 깨진 줄 알았다.


그러나 지쳐 뒷걸음질 치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견고히 유지하려 노력했던,

그 소중한 울타리,

마지막 선마저 이탈하게 되는 것은,

동등한 존재로서 대우하지 않은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탈유발자들 때문이었다.



내가 조금 더 영민했더라면,

때마다 가면을 갈아 끼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들과의 관계를 더 영리하게 유지하고

관리해 왔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지혜롭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거리를 조절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멋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들의 높은 퇴사율,

직장 내 괴롭힘과 가족 해체,

늘어나는 비혼과 이혼, 1인가구 증가 등


사회면 기사를 보면

내가 겪었던 경험이 비단 내게만 국한되는

일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분명해진다.



영화계에서 오랜 커리어를 쌓아 올린

배우 김혜수마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잘해주고도 상처받은 적이 많아요.

그래서 알았어요.
마음을 줄 땐,
상대의 그릇도 봐야 한다는 걸요."




이 공간에서는

내가 그들과 공고히 만들었던 테두리 안에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던 이탈 수기

그간 느낀 바들을 하나씩 연재할 예정이다.


담담히 소화되지 않았던 감정들을 쓸어내리고,

이곳,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좋은 글, 작은 공감만으로도

하루를 버틸 힘을 얻는 게 사람이니까.

여전히 힘을 내는 이유 또한 사람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