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생활 초보백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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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에 살던 무지한 아이들은 그렇게 룸렌트를 구하러 나가요. 집 계약이라곤 어쩌면 한 번쯤 부모님 따라가봤을 동네 부동산 그 쯤뿐일 아이들이, 계약서의 중요성 따위는 제 눈곱만큼도 모른 채 거리를 나다니는 거죠. 음식, 분위기, 성향 등이 맞지 않아 나갈 수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계약을 하러 내버려지는 상황은 모두 비슷했어요. 당장 일주일 후에 살 집 혹은 방을 어떻게 구하겠어요? 한인 온라인 카페를 찾아 간간히 올라오는 룸렌트 혹은 거실렌트 글에 댓글을 달고 전화를 걸며 부딪치는 방법뿐이었죠.
나의 첫 룸렌트는 홈스테이 방의 4분의 1만 한 세컨드룸이었어요. 다운타운 17층의 한국인 3명과 일본인 1명, 총 4명이 살게끔 구조를 만들어둔 오래된 투베드 아파트.
이사를 하기 전, 그새 늘어난 짐을 옮기기 위해 처음 나를 공항에서 픽업해 줬던 유학원 직원에게 연락했어요. 당신들이 커뮤니케이션을 잘못하여 내가 이사를 하게 되었으니 이동 비용을 지원하라. 60불- 약 6만 원 -이었던 벤 비용을 그렇게 아꼈어요. 정신을 바짝 차린 덕분이었죠.
670불. 그 당시의 시세로 싼 가격도 아니었지만 나는 먹는 것에서 철저히 돈을 아끼고 방 하나를 혼자 쓰기로 했어요. 작디작은 부엌과 냉장고를 공유하고, 하나뿐인 화장실을 공유하며 나의 생활 수준은 순식간에 낮아졌지만 매운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었고, 어여쁜 노을을 작은 창으로 매일 볼 수 있었고, 어학원으로 걸어갈 수 있었고, 친절해 보이는 룸메이트들과 오다가다 인사를 나눌 수 있어 기뻤어요.
하지만 잘 따지지도 않고 들어간 집이 딱히 좋은 점만 있을 수 있을까요. 자신을 집주인이라고 소개한 내 계약자는 진짜 집주인 몰래 세를 받고 사람들을 들여 살던 것이었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4명이 사는 집에 말도 안 될 만큼 싼 플랜의 와이파이를 설치해 뒀어요. 매일 밤, 내 방문을 두드려 페이스톡을 했는지 묻고 엄마와의 카톡방을 확인했어요. 그 시절 캐나다에는 무제한 와이파이가 없었거든요. 네, 정말로 2015년에요.
한 번은 심한 생리통에 겨우 장을 보고 닭죽을 끓이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기절하듯 잠든 적이 있었어요. 방 문도 닫지 못하고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가장자리즘에 걸터 누워 땀을 뻘뻘 흘렸는데 그 누구도 날 들여다보지 않았어요. 우리가 함께 살지만 가족은 아니었으니까요. 섭섭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나를 보호할 의무가 없으니까요.
미성년자도 아니고 만 21세에게 왜 자꾸 보호라는 단어를 쓰냐고요? 그때의 나는 다 큰 줄 알았어요. 모든 것의 경계선 같던 스무 살이 넘었고, 내가 원하는 대로 휴학계를 냈고, 외국에도 왔으니 다 컸다고요. 하지만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아는 어른이 없고 온갖 새로운 문서와 대화를 마주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외국에서 21살 그들은 고작 스물이 넘은 아이들이었어요.
그 집의 규칙은 엄격했어요. 4명이나 같이 살고 있으니 당연하다 생각했죠.
1. 키는 항상 문에 걸어둔다.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2. 냉장고 안의 남의 음식을 허락 없이 손대지 않는다.
3. 화장실 청소는 담당을 정해 돌아가며 한다.
1번 이상하죠? 굳이 이해해 보자면 누가 집에 있고 없는 지를 서로 공유하기 위해 그랬던 것 같아요. 걸어둔다고 해서 딱히 남의 키를 들고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별생각 없이 따랐죠. 각 키에는 특별한 키체인이 달려있어 누구의 키인지 구별이 쉬웠거든요.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일이 터졌어요.
학원에서 돌아와 집 문을 열고 키를 걸었어요. 큰 방에서 계약자와 함께 방을 공유하는 언니의 키가 이미 걸려 있었죠. 부엌 냉장고에 사 온 야채더미를 집어넣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씻으러 화장실을 다녀왔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어요. 오래된 아파트인 탓에 방음은 없다시피 한 집이라 방문을 여닫는 소리와 복도를 걷는 소리가 모두 들렸어요. 키로 보아 옆 방 언니가 왔다 갔다 하는구나 싶었죠. 시간이 좀 지난 뒤 나는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향했어요. 그때 무언가에 이끌리듯 보았죠. 내 키가 사라졌어!
키를 잃어버리면 100불 디파짓을 돌려받을 수 없었어요. 처음 이사 들어오던 날, 계약자가 요구한 디파짓이 600불이었어요. 키 100불과 가구 500불. 계약서도 없이 나는 그 큰 돈을 내밀었죠.
혹시 내가 키를 걸지 않고 들어왔던 건 아닐까? 온 방을 샅샅이 뒤졌어요. 당연히 방에 없죠. 나는 걸었으니까요! 하지만 또렷했던 기억이 자꾸만 흐려졌어요. 혹시, 혹시, 혹시.
울기 직전의 나는 마지막으로 옆 방 문을 두드렸어요. 언니가 의심받았다고 오해하면 어떡하지? 언니가 아니면 나는 이제 여기서 어떻게 살지? 나는 자꾸 내 탓을 했어요.
아니? 나는 몰라.
언니는 방 문을 쾅 닫았어요. 엄청 살갑지도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던 언니가 아주 큰 소리를 내며 내 눈앞에 어둑한 문을 갖다 내린 거예요. 그 언니도 아마 23살에서 25살 그쯤이었을 거예요. 무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아직은 실수를 할 수 있는 나이였죠. 지금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외국에서는 모두가 가끔은 이상한 생각과 짓거리를 하곤 하니까. 물론 그게 도둑질이 돼서는 안되지만요.
어쨌든 범인은 그 언니가 맞았어요. 제 발이 저렸는지 내가 방에 들어간 후 곧장 가져다 걸어둔 거 있죠? 그 언니가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소리를 듣자마자 문에 귀를 대고 있던 나는 뛰쳐나가 키를 확인했어요. 그래서 따졌냐고요? 아니요 못했어요.
나는 무서웠거든요. 또다시 밖으로 내 쫓기는 일이 생길까 봐.
규칙 2번과 3번은 어땠냐고요?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죠! 2번은 아마 그 언니가 범인이지 않을까 싶네요. 3번은 점점 기분이 나빴어요. 내가 담당인 날엔 늘 계약자가 방 문을 두드렸어요. 먼지가 아직 보인다. 저 위가 닦이지 않았다. 그럼 나는 군소리 없이 제깍 튀어나가 깨끗하기만 한 그곳을 다시 닦고 쓸었어요. 정말 깨끗하게 시킨 대로 청소를 해도 똑같았어요. 웃긴 게 뭔지 알아요? 나만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계약자를 제외하고 3명 중 매번 제일 어렸던 나만!
어떡하겠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곤 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나오겠으니 그 집에서 나와야죠.
그다음으로 살았던 룸렌트들은 괜찮았냐고요? 불행히도 한 번 더 같은 대답을 해야겠네요. 아니요. 계약서의 중요성만 깨달았던 나는 계약서를 쓰긴 썼지만 여권 사본을 줘야 했고 나중엔 그 사본으로 협박을 당했어요. 네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으니 네 페이스북과 한국 부모님 주소를 다 알아내겠다. 중간에 많은 사연을 생략했지만 그런 소리도 들어봤네요.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억척스러운 아줌마의 고함소리 아래에서 덜덜 떨리는 무릎을 바닥에 꿇고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손바닥을 비벼 빌었어요. 그러지 마세요 아줌마 제가 잘못했어요.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아니야 너는 그 정도로 잘못하지 않았어. 그 어른이 네게 너무했어. 네 인생에서 그런 말은 듣지 않았어야 좋았어.
그리고 한마디만 더.
잘 버텨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