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학원에 돈을 갖다 바쳤다

외국생활 초보백서 1-2

by 정하서


언제 고향을 떠났다는 걸 느껴요?




토익이나 토플에 스피킹 테스트가 있다고요? 솔직하게 말해 줄까요, 그거 아무 소용없어요. 우리는 학창 시절 내내 영어를 배우잖아요. 학교에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학원에서도. 대학에 진학해서 또 학원을 가고 인터넷 강의를 듣죠. 하지만 그건 목적이 분명한 영어지 실전 회화가 아니었어요.


유학원을 통해 계약했던 어학원은 토론토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던 곳이었어요.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빨간색 로고의 그 어학원은 4주씩 원하는 개월 수만큼 등록할 수 있었는데, 저는 6개월 등록을 했죠. 총 6개월의 관광비자를 꽉 채운 스케줄이었어요. 그러니까 학원이 끝나면 관광비자를 연장해 캐나다 여행을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는 말이에요.


토론토 시내를 처음 돌아다니던 날, 그렇게 유명하다는 팀홀튼에 갔어요. 딱 적당히 갈아 녹아낸 여름사냥 맛이라는 아이스캡을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아주 소심하게 외쳤어요. 아이스캡 플리즈!


Can I get an Iced Capp?


음료를 받으러 픽업대에 서서 다음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어찌나 내 외침이 부끄럽던지. 이대로라면 내가 바로 미국 가서 햄버거 플리즈! 햄버거만 주야장천 사 먹고 올 사람이구나. 아주 명확히 깨달았죠. (물론 여행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영어입니다만.)


입학시험을 치고 들어간 어학원은 제법 체계적이었어요. 오전과 오후 수업에는 여러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과 관련 문법을 해우고, 오후 클럽 활동에서는 원하는 주제를 찾아 들어가 다양한 학생들과 영어로 대화하며 처음 겪는 상황을 매일 겪을 수 있도록 했죠. 대형 학원의 장점이 정확히 부각되는 커리큘럼이었어요. 잘 적응하면 완벽히 녹아들 수 있지만 적응하지 못한다면 쉽게 도태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죠.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은 나를 용기 있게 했어요. 한국의 나는 길거리의 외국인이 도움을 청해도 머뭇거리기만 했는데 이곳에선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더듬거려도 모두가 유 아 쏘 어썸! 칭찬을 늘어놨으니까요.


브라질, 일본, 프랑스, 터키. 내 상상보다 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맥주를 마시러 나가고 수다를 떨었어요. 막연히 기대만 했던 그 그림이 현실로 이뤄졌죠.


4개월이 금방 지나갔어요. 비싼 학원비 아까운 줄도 모르고 가끔 결석을 해보고 숙제도 대충 해 보고.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 2년 동안 해 보지 못했던 땡땡이를 여기서 누렸죠. 2주에 한 번씩 이루어졌던 반 승급 시험에서 적정 점수를 받아 쭉쭉 올라가던 레벨은 두 번 연속 멈췄어요. 새로 사귀는 친구들은 더 많고 다양해졌고, 중급 영어를 잘한다 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똑같은 매일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죠.


나는 그게 내가 게을러서라고 생각했어요. 매일 복습하고 영단어를 외우고 나가서 영어로 대화하는데. 좀 쉬려고 휴학까지 해서 여길 왔는데 또 시험까지 쳐야 해? 하는 생각이 돌고 돌아 펜을 잡은 나의 손목을 꽉 붙잡은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남은 2개월을 어떻게 보냈냐고요? 돌아온 승급 시험에서 필요 점수를 받아 무리해 상급 반으로 진급했어요. 거기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리는 초급생 티를 팍팍 내며 첫 일주일을 좌절감에 파묻힌 다음, 집에 틀어박혀 스피킹 연습을 하고, 오후 클럽 액티비티까지 토플 반으로 선택해 매일 공부만 했죠.


너 얼마 냈어? 너는 얼마 줬어? 어느 날, 결석을 밥 먹듯이 하던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장난처럼 건넨 말이었어요. 어학원은 여러 나라의 여러 유학원과 계약의 맺고 각기 조금씩 다른 프로모션을 진행해요. 때문에 학원비도 조금씩 다르죠. 시즌마다 다르기도 하고 유학원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요. 정확히 4개월을 보내고 나서야, 지나간 시간이 날 비웃을 만큼 한순간에 떠올랐어요. 그날 집으로 향하며 내가 이미 날린 학원비가 얼마였는지 입술을 깨물며 아주 자세히 떠올렸죠. 부산의 유학원과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했던 그 숫자들. 그래놓고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후회가 무너트린 시간을 단순간에 다시 쌓으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마치 처음 팀홀튼 카페에서 아이스캡을 시키던 날처럼. 옆의 친구가 어떤 표현을 쓰는지, 왜 저렇게 표현하는지. 부끄러워도 묻고 듣고 따라 하느라 목이 아파서 매 수업마다 500ML 물통을 들고 다녔어요.


외국에서 쭉 사는 한국 출신이 그곳에서 제일 잘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내가 못난 걸 못 보겠으니까. 내가 뒤처지는 게 말이 안 되니까 그렇잖아요.


어학원은 내가 게을러지는 순간, 그러니까 한국처럼 집에 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지 않는 한 똑같은 회화를 쓰는 똑같은 레벨의 친구들이나 사귀며 중급에 겨우 들어간 영어 수준 정도에 머물게 한 다음 화려한 졸업파티와 수료증을 건네며 YOU DID IT! 환호성과 함께 돌려보내는 곳이라는 것. 한국으로 돌아 간 순간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완벽한 기억을 만드는 곳이랍니다. 내 의지는 다르다고요? 내 아이는 다를 것 같나요?


옆 동에 누구 아들은 갔다 오더니 영어를 줄줄 말하더라고요? 당연히 그렇겠죠. 한국에서만 살던 우리가 듣기론 역시 외국에서 배워 와 영어가 유창한 사람 같잖아요. 내년 설에 오랜만에 영어로 대화하자 해 볼까요. 지금만큼 당당하고 재빠르게 오케이! 를 외치는지.


어학원이 소용없다는 게 아니에요. 큰돈을 들여 비행기, 숙소, 생활비에 학원비까지 지출했으니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싶었어요. 한국보다는 외국이 그래도 낫지 않냐고요? 길거리 지나다니며 도청하듯이 듣고 다닐 건 아니잖아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와도 기본적인 영어를 못하면 카페는 고사하고 한인 식당이나 한인마트에서 일을 해야 해요. 정해진 회화 외에 영어를 쓸 일도, 들을 일도 딱히 없는 거죠. 외국에 살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영어는 절대 늘지 않아요.


일반화 같다고요? 그렇게 느낄 수 있죠. 내 친구들 3명이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 영어를 다 잊었다지만 나와 내 경험이 그랬다는 거니까요. 저도 캐나다의 대학에 입학하기 전 8개월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일상 표현들을 잊었는지 몰라요.


성인이 되어 어학연수를 오려는 여러분 혹은 아이들을 보내려는 부모님들. 돈을 다 지불한 학원은 당신의 학습을 돌봐주지 않아요.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고향에서나 타지에서나 정말로 단단한 의지가 필요헀답니다. 의지박약 한 마음 뒤에 숨어 비겁한 시간을 보냈던 나와 달리, 그대들은 소중한 배움을 단단히 쌓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아! 그럼 연애는 어떨까요? 외국인 애인을 사귄다면 영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