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아버지는 평생이 건조했다. 세수를 할 때와 여름 계곡에 뛰어들 때를 제외하고는 흠뻑 젖은 얼굴을 보여 준 기억이 딱히 없을 정도다. 오랜 시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당신의 회사까지 일구어 낸 아버지는 늘 텅 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다. 코로나의 여파에 아버지의 평생이 담겨 있던 사무실을 정리하던 때에도, 건조한 표정으로 묵묵히 비워진 공간을 청소했다. 3년 차에 실직자가 되어버린 막내 직원이 짐을 챙겨 나가는 길에 제 사정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일 때도 규칙적으로 등을 토닥이는 손이 무던했다. 되려 박스를 조립하던 내가 코를 훌쩍였다.
저 커피나 한 잔 사 와봐라. 짐 정리를 끝내고 찰랑이는 열쇠 꾸러미를 손바닥에서 굴리던 아버지는 내게서 얼굴을 돌린 채 말했다. 마치 명령 같기도 한 그 한 마디가 꽤 무거워 예 하고 짧은 대답과 함께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 속에서 차가운 커피는 냉기를 품은 물방울을 주룩주룩 흘려댔다. 푹 젖은 손바닥을 티셔츠에 아무렇게나 닦아대며 사무실로 돌아가는데 평소보다 길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눈은 하나같이 무덤덤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운 날씨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손부채질 한 번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한시라도 빨리 이 북적임을 벗어날 뿐이었다. 모두가 아버지 같았다.
어느새 요란한 장마가 찾아왔다. 평소와 같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지친 숨을 내쉬며 마스크를 벗었다. 하루 종일 갇혀있던 검은색 부직포에서 벗어나니 급작스러운 해방감에 눈앞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비워진 소주 여러 병이 현관의 재활용 박스에 반듯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막 스무 살이 되어 마주 앉은 아버지께 술을 배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술병이 이 정도로 모인 적이 없었다. 지난 폐업 이후 1인 회사가 되어버린 사업을 이끄느라 늦게까지 일을 하던 아버지의 부담감이, 사실은 저만치 쌓인 걸까.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의 똑같고 조용한 눈 때문이었는지 아버지의 하루도 그런 줄 알았다. 아버지도 다른 모두와 같았으니까. 콩나물국이 끓고 있는 꿉꿉한 부엌에서 국자를 휘젓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제법 떨어진 거실의 소파까지 퍼져왔다. 코에서 짠내가 가득 느껴져 입맛이 돌지 않았다. 아버지는 늦은 오후가 될 때까지 방 문을 열지 않았고 점점 심해지는 태풍에 묻힌 통화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석양이 사라질 즘, 진작에 치워진 식탁을 물끄러미 내려보다 미지근한 물 한 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문을 두드렸다. 자네가 어떻게 그래! 매서운 속도로 창에 부딪히는 비도 이번에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가려주지 않았다. 통화 속에서 여전히 애처롭게 우는 그 막내 직원은 미처 반납하지 않았던 회사 공유 드라이브가 사라졌다는 말만 반복했다. 회사의 정보, 완료된 프로젝트, 미리 받아 두었던 파일과, 제출 시일에 맞춰 완성해 둔 결과물들의 기이한 실종이었다. 문지방을 넘어온 날 발견한 이후부터 등을 돌린 아버지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요란한 태풍이 온 집안을 흔들고 있었다.
어두운 눈밑을 주무르며 아침 국을 끓이던 어머니는 식탁에 자리 잡은 내게 조용히 한탄을 늘어놓았다. 인연이 있던 출판사와 콘텐츠 회사 두 곳에서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왔단다. 그들과 긴 통화를 마친 아버지의 방 안이 무섭도록 고요해서 아무 말도 걸지 못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얼굴은 어땠어? 나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새 일이 들어왔으니 상황이 제법 괜찮게 흘러가는 중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아버지의 방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프린터기 소리가 밤잠을 설치게 했으나 예전처럼 가벼운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또 비가 오던 어느 밤에 소리가 멎었다. 무언가를 내려치는 큰 소리를 따라온 나는 다시 아버지의 방 문 앞에 섰다. 오래된 경첩의 소음이 심해질수록 불이 꺼진 방 안에서 밝은 모니터 불빛이 더욱 번쩍거렸다. 담당자님도 전후사정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소리치며 벌어진 아버지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아버지는 또다시 등을 돌려버렸다. 하지만 마주 선 창에 일그러진 얼굴이 비치고 말았다. 방의 큰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프린터기를 며칠 동안이나 뜨겁게 만들었던 글 더미가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막내 직원이 빠른 취업을 위해 넘긴 것으로 추정되는 드라이브는 아버지의 일상을 말려버렸다. 글, 관련된 콘셉트아트, 추가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었던 수많은 행사 계약들까지 막내 직원이 새로 소속된 회사의 창작물로 감쪽같이 변신해 세상에 소개됐다. 아버지의 회사와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창작물의 권리를 빼앗겼다는 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었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한 그 직원과 회사를 당장 고발한다 해도, 긴 싸움의 시간 동안 아버지는 새로운 글을 쓰고 계약을 맺기 어려웠다. 좁은 업계의 넓은 소문에는 이미 왜곡된 사실이 퍼졌다. 아버지는 계약과 관련된 정보 관리가 부실하다는 억측이 나도는 중이었다. 아버지 회사의 저작재산권과 아버지가 가져야 했을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딱 한 사람, 그리고 동조한 작은 회사의 고의가 단단히 쌓아온 아버지 회사의 유산과, 진행 중이던 일, 그리고 기대하던 새로운 계약까지 모두 고작 눈물로 바꾸어버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젖어갔다. 평생 동안 짜던 그것이 생경히 흘러 아버지의 글더미 위로 떨어졌다. 까맣게 번져 더 이상 쓸 수도, 읽을 수 없었다.
체중이 빠져 몸까지 말라버린 아버지는 손해 배상 청구와 함께 명예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아버지의 창작물과 막내 직원으로부터 파생된 창작물 사이의 관계와 실질적 유사성이 모두 인정되어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었다. 막내 직원의 저작권 침해로 인하여 아버지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과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 또한 아버지의 승리였다. 일 년이 더 걸려 싸워 얻어낸 판결이었다. 하지만 모든 쟁점의 결론이 아버지의 편은 아니었다. 아직 최종적으로 제출되지 않았던 아버지의 지난 완성본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생산, 배포한 창작물에 관해서는 저작권법상 보호의 대상이 되는 저작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복사하여 붙여 넣은 수준을 겨우 피해 간 꼴이니 복제한 개작이라고 호소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지난 어느 날의 태풍 비에 흔들리던 유리창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보았던 낯선 표정까지도.
아버지의 얼굴은 다시 건조하던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침과 낮과 저녁을 묵묵히 지내 보내는 건조함에 가족 간의 대화가 함께 말라갔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타자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약 4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의 새 책이 나왔다. 해(害)의 시간. 책의 제목이었다.
나의 단단하던 아버지는 당신의 눈동자와 숨을 모든 책 장 속에 담았다. 대신 울어줄 독자들에게 기대어 주인공의 사연을 쏟아냈다. 간간히 있는 회의에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나가는 아버지의 눈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어떤 시간을 담아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매일을 살아간다.
해(害)가 향한 곳이 무형의 저작권일지라도. 해(害)에 맞서 싸웠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