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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정윤 Jul 29. 2024

[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왜 퍼펙트 데이즈인가?

도쿄의 청소부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 영화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엔 수많은 세상이 있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세상이지.”


삶이란 매일의 다양한 변주의 연속이다. 하루하루는 경이로운 기적과 함께 삶의 모든 아픔도 함께 수용한다. 지금, 이 순간은 그런 순간이다. 경이롭고, 기쁘고, 환희에 차고, 가슴 깊이 애틋하고, 아리며, 동시에 행복하게 벅차오르는, 그 모든 것이 동시에 녹아든 순간이다.   


1. Just a perfect day.   


어스름한 새벽 창밖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사이로 섞여 들어오는 빗자루 쓰는 소리.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잠깐씩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과 나무들,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팝송. 퇴근 후 공중목욕탕에서 하는 목욕, 도쿄의 지하철에서 먹는 저녁. 그 사이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 잠들기 전에 꾸벅꾸벅 졸면서 읽는 책, 그리고 고단하지만 완벽했던 하루의 잔상이 꿈으로 지나가면 다음날 어김없이 들려오는 빗자루 쓰는 소리. 60대 도쿄 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의 일상은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다.


[퍼펙트데이즈 스틸컷]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히라야마.


그의 하루는 고요하고 단조롭다. 그 속에서 그는 미소 짓는다. 그가 보내는 하루는 단조롭지만 신성하기까지 하다. 화장실 청소도 그렇다. 맨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고 거리낌 없이 양변기를 닦는다. 하다못해 작은 거울로 남자 소변기 아래를 비추어 덜 닦인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누군가 꺼려하는 일을 그는 정성스레 한다. 그래서 그는 성실하다 못해 이 일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철부지 동료가 물을 정도다. 히라야마 씨는 청소 도구를 개조해 만들 정도로 이 일을 좋아하냐고 말이다.


이런 그의 일상은 부족함이 없다. 오래된 카메라, 오래된 2G 폰,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오래된 자동차, 오래된 집까지. 그의 세상은 낡은 것 투성이지만 그의 하루는 낡지 않았다. 매일 새로우며, 매일 더 고요하고 행복하다. 그의 맑은 미소처럼.  


[퍼펙트데이즈 스틸 컷] 선선한 아침의 바람과 나무 소리들.
[퍼펙트데이즈 스틸컷] 신성할 정도로 열심히인 그의 화장실 청소.



2. 생의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I’m feeling good.   


하지만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히라야마의 하루는 반복되면서도 매일이 다르다. 누구나 그렇듯. 매일 똑같은 하루는 없다. 매일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이런 매일의 하루는 조용히 그의 삶의 사연을 아우른다.


히라야마는 말이 없다. 그의 삶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고, 왜 60대에 혼자인지 말하지도, 무엇을 바라는지를 말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지금의 삶을 영위하는지 설명하지도 않는다. 무슨 사연으로 도쿄 화장실을 청소하고 다니는지, 또 그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해야 할 말만 할 뿐 삶의 모든 이야기들을 그저 일상의 뒤안길에 남겨놓고 오늘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완벽한 하루에는 기쁨과 함께 아픔과 슬픔도 공존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변기를 닦는 그의 일에서 그는 미소 짓지만 길 잃은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를 찾아주러 나서다 우연히 만나게 된 아이의 엄마가 히라야마의 옷을 힐끔 보고 아무렇지 않게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손을 닦고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일. 인연 끊고 살았던 여동생의 방문과 머뭇거리며 묻는 진짜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살고 있냐는 질문. 어쩐지 씁쓸하고 슬픈 그 말들 뒤에 담긴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느끼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히라야마는 그 어떤 변명도 설득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세상을 살아갈 뿐이다. 지금은 지금이고, 다음은 다음인 것처럼.


“이 세상엔 수많은 세상이 있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세상이지.”


자신의 하루가 켜켜이 축적해 온 자신의 삶은 여동생과 타인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히라야마의 세상은 다르지만 삶이 주는 우연에 의해 타인의 세상과 연결되었다 다시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철부지 동료의 어설픈 연애와 그의 친구의 이야기, 단골 선술집 여주인의 이야기, 조카의 이야기, 여동생의 이야기가 자신의 삶을 함께 관통하며 그렇게 하루는 지나간다. 그리고 어지러운 것 같은 꿈을 꾸고 나면 조용한 비질 소리에 눈을 뜬다.


수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도쿄의 태양은 뜨고 히라야마는 카세트테이프를 튼다. 또 새로운 하루다. 엔딩에 흐르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의 가사처럼.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삶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늘은 또 다른 새로운 새벽이 왔고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세상의 경이는 또다시 깨어났다. 마지막 엔딩에서 보여주는 히라야마의 우는 듯 웃는 얼굴은 하루가 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닮았다. 경이롭고, 희망차며, 고요하고, 행복한 동시에 어쩐지 슬픈,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삶이란 이 모든 것이다.


그러니 히라야마는 오늘도 살아간다. 또, 그러므로 이 얼마나 완벽한 날들인가. 오래된 세상은 새로운 날이 되고, 날아가는 저 새는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Stars when you shine

you know how I feel

Scent of the pine

you know how I heel

Oh, freedom is mine

And I know how I feel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I'm feeling good


-니나 시몬, Feeling good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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