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톱을 깎아 주며 이야기를 듣는다.
“어렸을 때 가사 시간이 있었어. 학생들이 주루룩 앉아 수를 놓고 있으면 선생님이 책을 읽어줬어.”
“책? 무슨 책? 교과서?”
“아니, 그냥 소설책 같은 거.”
엄마는 다리가 툭 하고 부러졌다. 제비 다리처럼 뚝 끊어지며 부러진 다리는 계절이 바뀌고 봄이 와도 좀처럼 낫지 않았다. 그놈의 고질병, 당뇨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입원하고, 독한 항생제를 맞고, 한 줌이 넘는 약을 먹으며 엄마는 그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 일이 일어난 건 몇 달 전이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밤중에 울리는 전화 한 통이 점점 더 두려워지는 일이다. 새벽의 전화는 언제나 나쁜 소식을 전했다. 가족이 아프거나, 다치거나, 일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새벽에 전화가 울렸다.
내가 그 문자를 받은 것도 그런 순간이었다. 히말라야 산속 롯지. 비록 새벽은 아니었지만, 이른 저녁의 고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16년간의 회사 생활을 끝내고 히말라야로 떠났다. 지나고 보니, 산다는 건 늘 과분한 일이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일 같았다. 내 인생도 그랬다. 나름 괜찮은 직장을 다니며 사람들과 뒤엉켜 살았다. 밤을 새우고, 고된 업무에 울기도 하고, 상사에게 혼나고, 후배와 껄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다 술 한 잔 기울이며 다시 웃고 일어섰다. 그렇게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청춘을 회사 안에서 보냈다.
괜찮다고 하면 괜찮았고, 괜찮지 않다고 하면 괜찮지 않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살 정도는 벌어왔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슴은 늘 헛헛했다. 나는 마음이 허기져 퇴사했다. 단 한 번도, 한풀이하듯 속 시원하게 온전히 나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사십 대였다. 만으로도 청년에 들지 못해, 국가에서 주는 청년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하는 나이. 이제는 내 얼굴에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나이. 중간 관리자와 임원의 갈림길에 선 절체절명의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 스무 살 적에도 꿈꾸지 않았던 단 하나—‘내 마음껏 살아 보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그런 마음을 세상에 공표하듯 나는 히말라야로 떠났다. 새 삶을 살아 보겠다고. 털어낼 수 있는 건 모두 털어내고, 내려놓아야 할 건 과감히 내려놓으며 다시 시작하리라 다짐했다. 히말라야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 길은 순례길처럼 느껴졌다. 9박 11일 동안 대자연을 마주하며 고행하듯 걷다 보면, 가슴 깊이 쌓였던 짐도 덜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새 출발을 위한 그 길은 꽃길이 아니었다.
온통 축축하고 흐렸다.
11월 초, 히말라야는 온난화 탓에 길어진 여름의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산자락은 진한 안개에 휩싸였고, 높이 솟은 봉우리는 얼굴 한 번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보이는 것 없이, 매일 걷고 또 걸었다. 걸음마다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먼지처럼 털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옛 기억들은 먼지가 아니었다. 결석처럼, 심장 깊숙이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리 사이에 오래 묻어둔 이야기들이 하나둘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