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던 시절, 우리 동네엔 오일장이 섰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 엄마 손을 꼭 잡고 구경 나온 아이들로 시장은 늘 북적였다.
엄마는 오일장에서 산 것들로 집안 식구들을 먹이고 입혔다. 시부모와 남편을 챙기느라 분주했던 엄마는 가끔 우리들 옷을 사주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럭키비키가 따로 없었다. 그날도 자판 위에 산처럼 쌓인 옷 무더기 속에서 옷을 고르느라 엄마의 손길은 분주했다.
엄마는 주황색 원피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소매는 공주님 옷처럼 봉긋하게 솟아 있었고, 치마는 선명한 주황빛이었다. 정신없는 시장통 한가운데에서 어여쁜 옷 하나에 마음이 설렜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그 옷 벗고 한번 입어 봐, 어서!”
나는 친구들도 오는 시장 한 복판에서 옷을 홀랑 벗는 것이 싫어서 고개를 저으며 떼를 섰다.
그럴 때면 어김 없이 날아오는 등짝 스매싱.
“왜 때려어… 으흐흑…”
결국 울음보가 터졌다. 결국 그 공주님같던 옷은 내 것이 되었고, 시장 귀퉁이에서 팥죽 한 그릇은 얻어먹었지만 내 마음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가 생겼다.
어릴 땐 말이 없고 내성적이었지만, 커서는 잘 웃고 잘 웃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내면이 얼마나 말랑한 사람인지 사람들은 잘 몰랐다.
엄마는 아마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빠에 비해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라는 것까지는. 하지만 엄마의 고된 인생은 어린 딸을 더 섬세하게 살필 틈조차 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 감정에 무심한 엄마가 싫었다. 목소리는 크고, 억척스럽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엄마가 자주 밉기도 했다.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생각보다 섬세한 아이였고, 엄마는 그에 비해 너무 무심했어.”
엄마가 조금만 더 알아줬더라면—내 입시에 관심을 가져줬다면, 내가 어떤 꿈을 꾸는지 물어봐줬다면, 서울에서 홀로 자취하던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느껴줬다면…아직 다 크지 못한 나는, 엄마가 커다란 나무처럼 내 모든 것을 받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조곤조곤 내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는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소녀 같았다. 어릴 적 떡 먹고 노는 게 제일 좋았다던 엄마의 학창 시절은 그 말 그대로 순진한 산골 소녀의 모습이었다. 지리산 자락을 뛰놀던 이야기,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던 시절, 스무 살에 도시로 올라와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니며 농땡이치던 이야기까지.
나는 엄마가 그려주는 추억의 장면들 속에서 알게 됐다. 엄마는 아주 평범하고 착한, 조금은 어수룩하지만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때로는 짜증을 내고, 때로는 어리석고, 또 어떤 날은 나밖에 모를 만큼 이기적이고, 또 어떤 날은 누군가를 위해 전부를 내어줄 수도 있는—그저 그런 ‘보통의 사람’이었다.
습기로 가득 찬 히말라야에서 털어내고 싶었던 내 가족은 실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어둡고, 우울하고, 화가 나 있었다. 오랫동안 성질 고약한 시부모를 모시며 억척스럽게 살았고, 시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엔 남편의 병수발을 했다.
겨울이면 얼음장 같은 물에 설거지를 하고, 기름보일러 한 번 제대로 떼지 못한 냉골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아가며 엄마는 모든 이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 삶의 끝에 얻는 것은 말을 듣지 않는 병든 몸이었다. 예순이 넘자 몸은 칠십대처럼 굼떴고, 지금 일흔이 넘은 엄마는 여든 노인처럼 쇠약해졌다. 아침이면 두 시간도 거뜬히 걷던 사람이, 이제는 한 시간 걷기도 힘들어졌다. 언젠가부터는 잠깐 함께 걷는 일조차 버거워했다. 고질병인 당뇨는 점점 악화되어 결국 발끝의 감각까지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불쌍하면서도 원망스러웠다. 평생 ‘아들, 아들’ 하며 살던 엄마는 정작 나에게는 힘든 이야기만 쏟아냈다. 고된 시집살이로 받은 설움을 끊임없이 나에게만 털어놓는 엄마가 버거웠다.
‘그만 잊을 때도 됐잖아. 그만 이야기 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에게 결국 나는 화를 냈다.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에서 홀로 울던 기억, 새벽 3시까지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 애를 쓰며 제안서를 썼던 나날들, 누구 하나 ‘괜찮냐’ 물어줄 이 없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삶의 아픔만을 끊임없이 토로하는 엄마가 그때 나는, 나를 외면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나는 긴 시간, 인생의 평행선을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만나지 않는 두 선처럼 오래도록 갈라지기만 했지 한 번도 포개진 적이 없었다.
히말라야 산속을 걷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원하는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나 역시 엄마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내려놓자고. 어차피 각자 사는 인생, 부모자식 간의 인연도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불퉁하게, 혼잣말처럼 되뇌였다.
결국 인생의 반전은, 가장 무심한 순간에 왔다.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가게 두는 법이 없었다.
각자 소식이나 전하고 살면 됐지 하고 멀어지기로 마음먹은 순간,
나는 엄마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