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타이밍이란, 참으로 요망하고 신비롭다.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마치 제멋대로 움직이는 존재처럼,삶은 피하고 싶을수록 더 다가오고, 애써 외면할수록 꼭 필요한 걸 내민다.
가족도, 엄마도 다 털어버리자고 마음먹은 그날, 나는 엄마를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헌 술은 버리고 새 술을 담겠다고 했는데, 마음속엔 엄마 얼굴만 그득했다. 인생이 ‘오냐, 이래도 되는지 한번 보자’며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응급실 병동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 산소 튜브, 다리에 칭칭 감아맨 붕대까지.
“엄마, 딸 왔소.”
간병인의 말에 엄마가 눈을 떴다.
“딸 언제 오냐고 그렇게 묻더니, 지금 왔네. 딸 왔어. 눈 좀 떠 봐.”
엄마는 나를 보고 웃었다.
“아가, 왔냐.”
울먹이는 목소리. 눈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왜 이렇게 다쳤어.”
애써 눈물을 삼키며 물었다.
“아가, 걱정 말거라. 괜찮다.”
엄마는 서러운 눈으로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를 병간호했다. 소변통을 비우고, 엄마 몸을 닦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눌린 등과 엉덩이를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2주를 넘게, 엄마와 붙어 있었다. 이렇게 오래 살을 맞대고 지낸 건, 아마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 곁에 있자, 정리된 줄 알았던 마음들이 자꾸만,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엄마가 ‘이럴라고 딸을 낳았제’ 하면, 미안해서 한 말인 줄 알면서도 괜히 화가 났다.
‘줄 건 오빠 다 주고, 힘들 땐 나만 찾지!’
퀘퀘묵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마음들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어떤 날은 그게 감정의 찌꺼기라는 걸 알아챘고, 어떤 날은 알아차리면서도 결국 짜증을 냈다.
엄마 수술 전까지의 2주. 그 시간은 오래된 마음을 물에 담가 씻어내는, 우리 둘만의 씻김굿이었다. 울고, 웃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기를 반복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날, 나는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 겁낼 거 없어. 별거 아닌 수술이야. 용기 내.”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온다. 딸이 엄마가 되고, 엄마가 딸이 되는 순간.
영원히 내 보호자일 것만 같았던 엄마는 지금,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죽음을 조용히 응시하는 작은 아이 같았다. 그런데도, 수술실 바깥에서 나 혼자 앉아 있을 것이 더 마음에 걸리는 ‘엄마’였다.
수술 후, 엄마는 섬망 증상이 심했다. 전신 마취에 무통주사까지 맞은 탓일까. 수술날에는 밤새 헛소리를 하다, 식은땀을 흘리고 겨우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말간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한결 평온했고, 입가엔 작은 미소까지 앉아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이제 괜찮아진 건가 싶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런데 엄마가, 낯선 사람을 보듯 나를 쳐다봤다.
“아이고 예뻐라. 참 이쁘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왜 그래? 나 몰라? 내가 누구야?”
엄마는, 모른다고 했다. 낯선 사람이라면서도—나만 보면 예쁘다고 웃었다. 엄마 눈엔 선명한 호감이 가득했다. 이유도 없이 나를 좋아하는 그 눈빛에 오히려 더 아팠다.
“누군데 이렇게 예쁘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목이 조여오고, 눈물이 고여 엄마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섬망 증상은 사흘 만에 사라졌다. 엄마는 다시, 내가 알던 엄마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그 며칠 사이
엄마의 영혼 한 귀퉁이를 몰래 들여다본 기분이었다.
말간 얼굴, 장난스러운 말투, 이유 없는 호감. 그 맑고 순한 모습이 오히려 엄마의 본래 얼굴은 아니었을까.
기억조차 없는 나에게 이유도 없이 애정을 쏟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선명해서 오래 쌓였던 내 속의 앙금들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마음속에 곪아 있던 것들은 어느 날, 어이없이 툭 부러진다.
나는 그날 알았다. 왜곡된 마음은 그보다 더 큰 마음을 만났을 때 녹아내리는 것이라고.
삶은 요망해서, 도망칠수록 더 옥죄고 그 고통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놓아준다.
엄마의 다리가 툭 부러진 날,
그렇게 내 마음도 그렇게 툭, 하고 부러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