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

by 콩작가

‘피가 돌아라. 제발 나아라.’


병원에 있는 동안 다친 엄마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을 떠다놓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듯이 빌었다. 유구한 역사 동안 수 많은 여인들이 빌었던 것처럼 나도 21세기 병원에서 그렇게 기도했다.


엄마가 내 자식이라도 된 듯이. 내리 사랑이라 위로 올라갈 줄 모르는 사랑이라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같아 천지신명께 빌듯 빌어본다.


지금은 아이가 되어 버린 엄마는 한때 내 세상의 전부였다. 나는 그 시절,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았다.


할아버지는 족보와 가문을 사랑했다. 술만 드시면 족보를 꺼내 들어 우리는 무슨 파, 몇 대 손이고, 어떤 집안의 후손인지 줄줄이 외우듯 이야기하셨다.


일 년 내내 줄줄이 이어지는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밥상은 아들이 아닌 딸이 차려야 한다고 했다. 성묘도 굳이 딸들은 갈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 꼬장꼬장한 성격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유전되어, 우리 집 식구 중 누구도 편한 사람이 없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할 줄 알게 된 순간부터 존댓말을 쓰도록 가르치셨다. 우리는 살면서 한 번도 “아빠, 뭐 해?” 하고 친근하게 부른 적이 없었다. 작은 반상이라도 차릴 줄 아는 나이가 되자, 할아버지의 밥상은 오빠가 아니라 내가 차려야 했다.


아빠의 온기를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은근한 사랑은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알아챌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린 나에게 아빠는 할아버지만큼이나 무섭고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내어 주는 사람은 엄마였다. 기질적으로 따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꼬장꼬장한 가풍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치 풀숲에 풀어놓아 자유롭게 커야 할 사람을 우리 안에 가둬 둔 셈이었다. 엄마는 온갖 제사부터 경조사까지 다 챙기느라 항상 바빴다.


할아버지 집 아래 붙어 있는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던 시절, 엄마는 온종일 부엌에서 일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단칸방으로 돌아와 연탄불을 갈아 주었다.


아빠도 없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없는 날은 천국 같았다. 집 안에는 온기가 돌고, 화사한 봄이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엄마와 둘이 누워 뒹굴거리며 엄마가 주는 간식을 먹었다. 뛰어놀고 장난을 쳤다. 12시가 되면 변신하는 신데렐라처럼, 그 시간이 되어서야 오빠와 나는 비로소 어린애가 될 수 있었다.


가끔은 동네 아줌마들이 놀러 와 엄마와 수다를 떨었다. 그때 그 골목은 왁자지껄했다. 어린아이도 새댁도 많아서, 온 동네 사람들이 알알이 박힌 구슬처럼 따닥따닥 붙어 지내며 서로를 챙기고 이름을 부르며 살았다. 옆집 아줌마들이 놀러 올 때면, 나는 놀다가 엄마 무릎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토닥토닥’


엄마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토닥였다. 머리를 쓰다듬고 팔과 다리를 어루만지면 온몸의 힘이 빠지며 스르륵 눈이 감겼다. 아이를 재울 때 쓰는 치트키 같은 손길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은 수면제와 같아서 곧잘 졸음이 쏟아졌다.


귓가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웅웅 울리며 꿈나라로 갈 때 나는 신을 만났다.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며, 말할 수 없이 평화로웠다. 까무룩 골아떨어지기 전 엄마의 목소리는 천상의 노래처럼 들렸다. 조용했고, 행복했다. 엄마의 무릎은 나의 천국이었다.


가끔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엄마의 무릎을 떠올릴 때가 있다. 고단한 하루를 버텨야 할 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일이 벅찰 때, 마음이 불안할 때면 나는 엄마 무릎에 누워 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세상이 엄마의 무릎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둥지에 안긴 사자 새끼 같았다. 나른했고, 자신감과 용기로 가득 찼다. 엄마의 무릎에서 나는 왕이었고, 신이었다. 두려운 것 하나 없이 평화로웠다.


병원에서 엄마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엄마에게도 그런 무릎이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여름날 엄마가 부쳐 주던 부채바람에 기대 잠이 들듯, 고단한 마음을 잊게 해 주는 그런 천국이 엄마에게도 있었을까? 이제서야 엄마가 궁금해졌다. 엄마에게도 편안한 밤, 설레는 밤, 슬픈 밤, 지독하게 긴 밤이 있었을 텐데, 나는 엄마의 인생을 너무 몰랐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아가’라고 부른다. 지금도 내가 전화하면


“아가, 밥은 먹었는가?”


하고 묻는다.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젖무덤을 찾던 어린 아가다. ‘아가’라는 말은 외할머니에게서 왔다. 엄마가 친정에 가는 날이면 외할머니는 온갖 음식을 만들었다. 부각을 튀기고, 전을 부치고, 한과를 만들었다. 바지런히 움직이며 엄마 먹일 음식을 준비하다가, 우리가 도착하면 “아가!” 하고 반겼다. 엄마의 엄마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따스한 볕이 들었다.


엄마의 엄마, 또 그 엄마의 엄마부터 이어져 온 ‘아가’라는 말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겨 붙는 불씨 같았다. 은근히 따뜻해지는 온돌방처럼, 그 말은 세대를 건너 모두의 가슴을 데웠다. 엄마가 있는 곳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내 편이 있는 곳이었다. 엄마도 외할머니가 데워놓은 따끈한 온돌 위에서 쉼을 얻었을 것이다. 내가 엄마 무릎에서 까무룩 잠들었던 것처럼.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갓집의 그 따스하던 온기도 외할머니가 쓰러지던 날 함께 사라졌다. 마치 다 식어버린 온돌방처럼—공기마저 냉랭해졌다.


엄마가 자신의 천국을 잃었을 때의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뒷배를 잃은 사람처럼, 엄마는 깊이 쓸쓸해 보였다. 그 뒤로 엄마는 줄곧 말했다.


“친정이 사라졌어.”


외할머니는 모든 자식이 모여 앉을 수 있었던 따뜻한 온돌방의 아랫목 같은 존재였다. 외할머니가 떠나자 함께 온기를 나누던 그 아랫목도 함께 사라졌다. 자식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가끔 소식이나 전하며 살아간다.

화요일 연재
이전 03화엄마의 다리가 툭, 내 마음도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