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까?

모방과 창작의 사이

by 콩작가

나는 이제 막 창작의 세계에 발을 들인 풋내기 작가다. 내 경험에 따르면, 창작자의 세계는 독자나 정보 전달자의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마치 전혀 다른 차원의 감각처럼 다가온다.


나는 16년간 언론홍보 담당자로 일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때로는 수용자이자 독자로 살았다.

매일같이 보도자료를 썼다. 기업과 브랜드 안에 흩어진 수많은 정보를 찾아내고 정리한 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일이 내 일이었다. 글의 모든 소재는 외부에 있었고, 퍼즐을 맞추듯 조합하면 그만이었다.


창작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재료가 작가의 내면에서 뒤섞이며,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뀌는 일이다. 마치 연금술과도 같다. 창작은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감정, 기억, 욕망의 반응이다. 외부의 소재는 그 반응 속에서 녹아들고, 결국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작가는 반드시 모방의 과정을 거친다. 스티븐 킹은 그것을 ‘연장통을 채우는 작업’이라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면의 책장을 채우는 일’이라 말했다. 이 시기의 작가는 영혼을 뒤흔든 글과 영화, 음악을 깊이 흡수한다. 그 세계에 몰입하는 동안, 문체나 시선, 감정의 결이 좋아하는 작가를 닮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십대 중반, 박경리의 『토지』는 내 삶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날 아침을 지금도 기억한다. 햇살이 맑았다. 너무 맑아서, 오히려 불안하고 우울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회사엔 적응이 안 됐고, 아버지는 간경화로 쓰러지셨다. 공적인 삶도, 사적인 삶도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만원 버스에 몸을 실었다. 수유역에서 광화문까지는 30분 남짓. 앉을 자리가 없어 한 손은 천장의 손잡이를, 다른 손은 의자에 달린 손잡이를 붙들었다. 버스는 흔들렸고, 이른 더위에 사람들의 체온이 등에 달라붙어 뜨끈했다. 모든 것이 엉망이던 그때, 나는 《토지》를 꺼내 들었다. 오른손으로는 손잡이를, 왼손으로는 개정판 소설책을 잡았다. 책 크기가 작아 다행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1930년대 어느 날로 돌아갔다. 삶을 묵묵히 견디는 인물들이 되었다가 빠져나왔다.


그 시절, 내 슬픔은 《토지》로 위로받았다. 6개월 동안 25권을 읽으며 내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소위 박경리 풍이라고 할까. 작가가 이끄는 희로애락을 따라 살다 보니, 생각하는 방식도, 말투도, 문체도 박경리식이 되었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토지》를 잊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고풍스럽고 한국적인 이야기, 한국만의 정서가 담긴 서사에 여전히 끌린다.


나는 모든 창작자에게는 자신만의 인생의 영화, 책, 음악이 있다고 믿는다. 그 가슴을 뒤흔든 작품들은 언젠가 또 다른 창작의 불씨가 된다. 하지만 삶과 연결되지 않은 감동은 오래가지 못한다. 자기 것으로 소화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 타인의 것을 흉내 내는 데 그친다. 그런 모방은 창작이 아니라, 사유의 표절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처음 이 말을 한 사람은 마틴 스코세이지였지만, 봉준호의 언급 덕분에 더 널리 회자되었다.


나는 왜 이 말이 오랜 시간, 세계적인 감독들의 마음속에 자리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창작은 결국 타인의 세계에서 출발해도, 나의 내면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된다. 다양한 요소들이 섞이고, 뭉치고, 해체되며 개인적 경험과 융화될 때 새로운 이야기로 태어난다. 그때 비로소 작가만의 고유성이 살아난다.


그리고 이 고유성은 ‘저작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는다. 세상에 똑같은 삶은 없다. 내면에서 진짜로 소화해 낸 콘텐츠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개성이 된다. 저작권은 우리에게 말한다. 타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라고. 그리고 창작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당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타인이 소화해 낸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가?


저작권은 단지 작품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창작자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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