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어쩌다 개복치가 되었나

얼렁뚱땅 워킹맘의 개복치 딸 육아일기 01편

by Orangecolor

제가 한창 사회 초년생이던 2010년대,

"개복치 키우기"라는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변 친구가 점심시간마다 개복치를 키우며 스트레스를 받아하는걸 엿보던 적이 있어요. 뭐만 하면 돌연사하는 극 예민보스 개복치 때문에요. 그때는 막연히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서 할 게임인가.. 생각했었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에겐 딸이 하나 생겼어요. 처음 태어나자마자 조리원 위층이 갑작스럽게 공사를 하게 되어도, 집에서 건조기 벨소리가 빵빵 나도 쿨쿨 잠만 잘자길래 순둥이 딸이라고 생각헀죠. 그런데, 그녀의 진가는 생후 백일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영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그렇게 손 모아 기다린다는 백일의 기적은 저희 집 해당사항은 아니었어요. 코로나베이비로 태어난 우리 아이는 그때까지 거의 바깥사람들을 못 보고 있었는데요, 딱 백일잔치하러 가족들이 집에 방문한 것을 계기로, 극 예민보스가 되었답니다.

그날부터 낯을 가리기 시작하고 같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같이 타기만 해도 울고... 버스를 한번 태웠다가 내내 곤욕을 치른 적도 있어요. 통잠도 잘 안 자려고 했고, 몇 시에 잠에 들던지 새벽에 기상은 물론이고요. 덕분에 원래부터 잠귀가 밝았던 엄마는 얕은 잠으로 연명하기 일쑤였어요.


말도 못 하던 돌즈음에도 옷에 택은 무조건 떼줘야 했고, 응가는 양손을 잡고 까치발을 들지 않으면 싸지 않았습니다. 소매에 시침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옷은 쳐다보지도 않았죠. 워낙 잘 먹는 성향이라 맛으로 가리는 음식은 없는 것 같은데, 어떤 건 너무 커서 안 먹고 어떤 건 너무 작아서 안 먹고... 그야말로 개복치처럼 극 예민보 스였던 거예요.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아이를 키울 때 아이가 미처 표현도 하기 전에 엄마가 먼저 나서서 아이를 도와주면 말도 늦고 표현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또 받는 게 당연해지면서 예민한 아이로 자랄 수도 있다고요. 육아를 할 땐 할머니가 키우듯 키워야 아이가 무던해진다던데... 그야말로 워킹맘인 저희를 도와 조부모님이 등하원을 주로 케어해주고 계신데요, 호두의 개복치 성향은 네 돌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대로랍니다.

아직도 정말 낯을 많이 가리지만, 그래도 또 할 말은 다 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어요. 아예 사회성이 없는 건 아닌듯한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그런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의 순간순간의 행동과 모습에서 부모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에요. 저 역시 어떤 때는 제모습이 보였다가, 또 어떤 때는 저희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가 해요.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아, 이 아이의 불안하고 예민한 기질은 바로 나였지, 어라, 이 모습은 우리 남편이었지.”

저 역시 촉감에 예민하다 보니, 옷이 조금만 거슬려도 못 입는 성격이고 스트레스성으로 피부질환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희 남편은 성인이 된 지금도 낯을 많이 가린답니다. 우리 아이가 개복치인 이유는, 바로 부모가 개복치였기 때문인 거죠!


부모를 닮아 사회화(?)에 시간이 걸리는 아이라고 생각하면 아이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도 가고 공감도 됩니다. 개복치 같은 우리 딸내미와 한 살 한 살 건강하게 자라고, 또 한 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함을 느껴요. 서두르지 않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커가는 엄마가 되자 다짐합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한 가지 마음의 숙제를 갖게 되었어요.


어떻게 하면 개복치 엄마가 개복치 딸이 덜 힘들도록 키워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죠.


결론= 개복치 엄마 밑에 개복치 딸 난다






#워킹맘 #육아일기 #개복치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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