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워킹맘의 개복치 딸 육아일기 10편
아주 어린 아기 때부터 호두는 대근육보다는 소근육 발달이 조금 더 빨랐어요.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보다 비교해서 빨랐다는 것은 아니고요. 상대적으로 대근육보다는 자리에 앉아서 사부작대거나, 튀밥을 주워 먹겠다고 자리에 주저앉아서 집중을 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유치원에 가서도 뛰어놀기보다는 색칠활동이나 가위질을 잘하더라고요.
부쩍 색깔과 끼적이기를 좋아하게 된 호두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호두야. 혹시 미술놀이 같은 거 가볼래?"
그 즉시 튀어나온 대답,
"나 혼자?"
"응. 수업은 선생님하고 친구들이랑 하는 건데, 집에서 하는 것보다 더 다양하게 해 볼 수 있어"
"아니 싫어. 안 갈래~"
딱 잘라 말합니다.
엄마가 미술놀이를 잘해줄 줄 몰라서,
아이가 전문적인 선생님과 더 재밌는 놀이를 했으면 바랐는데 아직은 안되나 봅니다.
호두는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많이 힘들어했어요. 즐거운 놀잇감이 있다고 그 상황 속에 빠져드는 아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에게 그 모든 것들은 불필요한 자극이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었죠. 물론, 아이도 사회생활을 배워나가야 하지만 이제 겨우 만 4세가 된 어린아이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기보다는 엄마나 아빠와 편안한 환경에서 아이가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놀이로의 접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아기에는 몸으로 더 많이 놀아주고, 손을 쓰는 미술과 가베를 해줘야 뇌 발달에 좋다던데…
알고는 있지만, 외부의 도움 없이 엄마가 다 해내기란 참 쉽지 않아요.
게다가 회사 업무에 찌들어 있는 워킹맘, 워킹대디에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놀이를 해주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쉽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놀이 겸 교육을 찾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미술이야기]
아이들의 미술놀이는 무궁무진합니다.
정해진 스케치를 배우지 않아도 되고, 규격화된 미술도구를 준비할 필요도 없어요. 길가에 굴러다니는 낙엽이, 나뭇가지가 만들기의 도구가 됩니다. 다 마시고 난 주스통이 샤카샤카 마라카스 재료가 되죠. 엄마는 그저 아이가 스스로 창의적인 뇌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디어 하나만 던져주면 되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팍팍한 삶에 찌든 미. 알. 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워킹맘은 그 아이디어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얼렁 뚱땅이 워킹맘은 시중에 판매하는 미술키트를 과감히 찾기로 합니다. 제가 골랐던 미술키트는 웅진씽크빅에서 만드는 "창의아트 깨치기"였어요. 방문수업도 가능한데 아이의 성향을 맞춰 앳홈(선생님이 방문하시지 않고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하는 용)을 선택했습니다. 그림책 만들기 과정으로 책 12권과 만들기 키트가 들어있어요. 이놈이 저에겐 아주 효자템이 되었습니다. 큐알코드로 아깨언니가 만들기를 시연하니 따라 하면 되고, 아이도 흥미롭게 같이 합니다. 저보다 더 미. 알. 못인 아빠노 어렵지 않게 같이 할 수 있어요. 4주 동안 1권을 끝내는 건데 하루에 1권을 끝낸 적도 더러 있었답니다.
번외로 아빠랑 제일 재미있게 하는 놀이는 점토놀이도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입니다. 디테일하게 동물이나 사물을 만드는 작품 활동을 하기보단 역할놀이를 좋아해요. 특히 아빠랑 주로 음식점 놀이를 점토놀이로 같이 하곤 해요. 디테일한 피자를 표현하기 위해서 아빠랑 유튜브로 피자 만드는 법을 찾아보기도 한답니다.(나름의 영상의 순기능으로 받아들여야겠죠?...)
얼마 전에는, 집에 있는 모래놀이를 가지고 와서 점토랑 같이 섞어보더라고요. 물론 같이 사용한 점토는 재활용이 안돼서 다 버려야 했지만, 같이 써본 적 없는 두 재료를 믹싱 해서 사용하는 생각을 하다니 아이들은 편견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나 봅니다.
거창한 작품 활동이 아니어도 호두가 스스로 해보려고 하고, 손으로 머리로 사부작사부작 시간을 보내니 참 좋더라고요. 유치원에서는 매일매일 엄마아빠의 선물을 가지고 와요. 알록달록 색종이에 엄마도 그리고 아빠도 그리고.. 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뚝딱 그려낸 아이만의 세계.
집안에 보물같이 쌓여가는 아이의 선물들이 한아름이에요.
본인이 좋아하는 걸 집중할 수 있는 힘. 그게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블록놀이]
어릴 때 블록놀이 좋아하는 아이가 참 많죠.
물론 성별에 따라서 좀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블록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호두는 밖에서 뛰놀기보다는 사부작대는 성격이면서도 블록놀이에는 영 관심을 안보였어요. 아주 어릴 때, 원목블록 소프트 블록을 갖다 줘도 영 관심이 없더라고요. 주변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하루 종일 블록을 가지고 노느라 바쁜 아이들도 많아서, 아이가 좋아하는 블록이 다른 건가… 수차례 고민도 많이 했어요. 두 돌~세돌정도까지 호두가 좋아하던 블록이 딱 하나 있었는데요. 옥스퍼드에서 나온 베베블록 미니 피스였어요. 그것도 뭘 쌓는다기보단 동물들을 만들어서 놀이를 하더라고요. 역시 역할놀이를 좋아하는 호두구나.. 생각했답니다.
혼자 사부작 노는 것보단 가족들과 상호작용하며 역할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다 보니, 엄마나 아빠랑 같이 할 수 있는 놀잇감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넘버블럭스와 큐블로를 구비했어요. 넘버블럭스는 조립이 어려워서 인지 아예 쳐다도 안 보더라고요. 1~10을 들이고 반년정도 지나서 11~20을 공구로 들이면서 한 달 스터디에 참여를 했는데, 그때서야 영상을 보여주면서 엄마가 정말 과장되게 “우와 일레븐 뭐야~ 진짜 웃겨!!!”하며 깔깔 댔더니 겨우 관심을 가져줍니다. 근데 관심의 방향이 좀 웃겨요. “엄마! 나, 일레븐 할 수 있어!!”하면서 자기 몸으로 숫자 블록을 만드는 거 있죠. 넘버블럭스도 자신의 몸으로 승화하는 아이라니.. 아이가 즐거우면 된 거 맞죠?
유치원 입학 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즌이었어요.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2학기 면담시간에 말씀하시더라고요.
“호두가 수리나 블록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아이의 끈기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자랄지 정말 기대가 될 정도였어요.”
무슨 뜻인고 하니, 선생님이 호두의 반에 위치한 와플블록을 매일 정리하시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래요. 친구들이 가지고 논다고 해서 본인이 같이 블록을 가지고 노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선생님이 와플블록을 정리하려고 조립하시는 정사각형의 모습을 유심이 보더니, 그 조그만 애가 2주 동안 매일 아침에 정사각형을 만들려고 애를 쓰더라는 거예요. 블록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으니, 쉽지 않았는지 매번 실패를 했는데, 매일 같이 연습해서는 2주가 지나고 완벽하게 정사각형으로 정리를 해 냈다고 합니다. 와플블록이 결코 재미있어서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선생님이 정리하시는 걸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노력해 본 그 끈기.
“끈기”라는 건 추후에 학습을 시작할 때도 정말 중요하죠. 저는 이토록 작은 아이가 꾸준하게 노력을 했다는 그 끈기를 강하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요즘은 집에서 자석블록을 가지고 인형들의 침대를 만들어주는 놀이를 가끔 해요. 그마저도 자주 하는 건 아니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랍니다. 하지만 꼭 블록으로만 소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스스로 뭔가 창조해내고 싶은 순간이 오면 호두는 분명 본인만의 집념과 끈기를 발휘할 거예요.
엄마는 "네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집안에 굴러다니는 블록으로도 만들어 볼 수 있단다", 하고 필요할 때 꺼내 줄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기다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