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워킹맘의 개복치 딸 육아일기 09편
우리는 공교육이 아닌 곳에서 행해지는 교육행위를 사교육이라고 부릅니다.
이제 갓 유치원에 입학한 호두에게 사교육을 시켜줘야지~ 하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저도 6-7살쯤에 미술학원을 처음 다녔던 게 사교육이라면 제 인생 첫 사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경험해주고 싶은 엄마들의 열정으로 돌 전부터 “문화센터 오감놀이”를 통해 첫 사교육에 입문하게 되죠. 저 역시 코로나 베이비로 태어난 호두랑 집에만 하릴없이 앉아있는 게 너무 답답해서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처음 오감놀이를 다녔어요. 같이 수업에 참여했던 엄마들과 친분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이랑 같이 콧바람이라도 쐬는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육아휴직에서 복직하고는 시부모님이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져 주셨기 때문에 문화센터나 다른 교육적인걸 제공해야겠다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어린이집이 끝나면 하루 종일 놀이터에서 뛰어다니기 바빴거든요. 그러다가 여름이 오면서 날이 더워질 때쯤, 시어머님이 날이 더워서 밖에서 놀기가 힘드니 단지 내 커뮤니티 문화센터를 등록해 보면 어떻겠냐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동네에서 글렌도만과 트니트니를 다니게 되었죠.
두 돌 즈음에는 아이가 수업들을 정말 즐거워했어요. 그러다가 글렌도만은 어느 날인가 프로그램이 지겹다고 가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앉아있는 놀이보단 몸을 더 쓰는 놀이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발레수업을 추가했습니다. 그 시기가 한창 공주병에 빠져있을 때였거든요.
그렇게 몸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발레와 트니트니를 꾸준히 다녔어요.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요.
아시죠? 저희 아이는 초 예민보민보스 개복치 딸인 거.
1년을 넘게 보내고 있는 트니트니에 대해서 한번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저희 아이는 트니트니를 좋아하는데, 좋아하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일 까요? 트니트니에 가면 아이들이 모두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해맑게 “안녕하세요~”인사도 하고, 춤도 추잖아요. 그런데 저희 아이는 아마 1년을 통틀어서 선생님 앞으로 가운데에 쪼르르 나가서 인사를 해본 게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예요. ‘고래밥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이랑 티키타카 하면서도, 절대로 앞에 나서는 법은 없어요. 그리고 다 같이 춤추는 시간에 아이들이 신나서 소리를 지르면, 본인은 마치 두세 살은 더 먹은 언니인 양 귀를 막고도 있어요. 그럼 트니트니를 안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고요? 그게 또 이상합니다. 호두는 그러면서도 까르르 웃고, 아이들을 관찰하고, 그 외 뜀뛰고 구르는 활동들은 너무너무 신나게 참여하거든요. 본인 나름대로 경험의 시간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유치원 입학 전 겨울이었습니다.
집에 있던 중고로 받은 가베와 다중지능 책을 1년째 묵혀가다가, 이걸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싶어 방문선생님을 모시게 되었어요. 마침 아이가 발레를 그만두고 나서 매일매일 할머니가 놀아주느라 버거워하실 즈음이라 방문수업을 적극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날이 추워서 밖에서 놀기도 힘들고, 마냥 할머니가 놀아주는 것도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잘되었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베 방문선생님을 인근에서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어서, 구하는 데만도 두 달은 걸린 것 같아요.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아이가 너무 긴장을 하는 거예요. 이제 곧 만 네 살이고, 편안하게 집 안에서 하는 수업이라 분리수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저의 생각은 착각이었죠. 아이는 엄마랑 엉덩이를 붙이고 수업을 해야만 겨우 진도가 나갈 수 있었어요. 제가 일찍 퇴근할 수 없어서 할머니가 계실 때도 마찬가지였죠. 할머니가 좀 쉬셨으면 해서 마련한 자리였는데, 아이도 선생님도 보호자도, 모두에게 당혹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선생님이랑 친해지면 좀 나아질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한 두 달쯤 지나고, 제가 아이랑 같이 수업을 듣다가 잠시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으러 화장실로 간 사이에, 아이는 엄마가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더라고요. 선생님께도 죄송하고, 아이도 수업이 너무 힘든가 싶어서 괜한 일을 벌인 게 아닌가 아차 싶은 순간이었어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가베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봐도, 아이는 그저 “선생님이 오는 게 싫어”라고 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선생님을 꽤나 좋아했어요. 선생님이 가시면 선생님 성함을 반복하며 외우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심지어 수업에서 배운 것도 내가 OO선생님이야~ 하며 여러 번 복습(선생님놀이) 했거든요. 가베는 재미있어하는 것 같은데,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아이의 마음을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일단 아이가 힘들어하는 상황이라면 그만둬야겠다 생각했고, 마침 유치원 입학시기가 겹쳤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이 우선이라 생각하여 방문수업을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랑 집에 있는 가베 책으로 둘이 놀이처럼 해본 날이 있었어요. 그런데, 수업시간에 그렇게 산만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거나 하릴없이 엄마만 쳐다보던 아이가.. 답도 척척.. 스스로 만들기에도 집중하는 거예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아이는 “수업”을 진행한다는 그 환경 자체가 부담이었다는 걸요. 선생님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도 있을 거예요. 분명 호두도 방문 선생님이 오는 날이 되면 기대하며 책상을 치우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곤 했는데요. 기대화 같이 걱정과 긴장이 동반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우리 호두에게는 그것마저 지나친 자극이 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던 거예요.
어린아이들은 최대한 많이 놀아야죠. 밖에서 놀면 더 좋아요. 그렇지만 유치원에서 돌아와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뛰어놀 수만은 없습니다. 그럴 때를 위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이 필요해요. 어떤 부모에게는 그것이 문화센터나 방문수업 같은 초기형태의 사교육일 수 있어요. 하지만 호두같이 예민한 아이를 두신 부모님이라면 저처럼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저는 이 이후로 트니트니를 제외한 모든 외부 수업을 끊고, 간단하더라도 엄마가 아이랑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절대 그 자리에 멈춰 있지 않으니까요.
아이가 천천히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여유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