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워킹맘의 개복치 딸 육아일기 08편
오늘은 호두랑 비슷한 성향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니면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바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취학도 하지 않은 아이지만, 제가 호두를 키우는 내내 늘 마음에 두고 있었던 부분인데요. 호두는 사람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아이예요. 그리고 쉽게 관계를 맺지 않아요. 코로나 베이비로 태어나서 사람과의 대면이 더 귀한 시기였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 아빠의 성향을 너무나 빼닮아 태어난 아이라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보통 호두 주변에 아기들을 보면 호기심과 탐구 성향이 강하죠. 주변에 장난감이 있으면 장난감에 눈이 팔리고, 비슷한 또래가 있으면 그 또래와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느라 바쁘더라고요. 그런데 호두는 달랐어요. 돌쟁이 아기였을 때도 모르는 환경에 주변을 탐구하기보다 엄마 다리에 딱 붙어 있고요, 어린이집에서도 친구들보다는 담임 선생님 딱 옆에 붙어있는 아이였어요.
어린이 집에서도 친구들 보다도 선생님들이랑 친하다는 말을 스스로도 하기에, 선생님꼐 여쭤본 적이 있었어요.
“친구 관계가 너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되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이런 대답을 해 주셨어요.
“호두는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반 친구들보다 1년 정도는 대화의 수준이 높습니다.”
어린이 집 친구들이 대부분 호두보다 늦게 태어난 아이들이 많다 보니, 발달이 약간 빠른 저희 아이와 차이가 꽤 났던 거죠.
안 그래도 예민 보스인 우리 아이가, 교우관계에서도 함께 어울릴 친구들이 별로 없다니.
안 그래도 개복치 딸을 키우느라 걱정과 불안이 많은 개복치 엄마는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아이가 같이 노는 또래 친구들이 몇 있으니 동네친구들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많이 하면 좋겠다고요.
이 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워킹맘인 엄마는 아이가 동네친구들과 놀 기회를 억지로 만들어주기 힘들잖아요.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꼬박꼬박 동네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같은 유치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적극 도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외적으로는 친구를 더 만나고 싶어 하지도 않더라고요. 어쩌다 모르는 친구들을 만나서 말을 걸어와도 저희 아이는 말도 안 섞고 불편해하는 기운이 역력했어요. 한 번은, 저희 친정 오빠가 이사를 가서 온 가족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친정부모님과 저희, 그리고 오빠네 가족이었는데요. 아무리 가족이어도 일 년에 몇 번 못 보는 사이라 그런지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베란다 근처에서 밥도 먹지 않고 창밖과 티니핑 영상만 보며 두 시간을 버티더라고요. 그날 사실 많이 속상했어요. 아무리 까탈스럽고 예민한 성격이어도, 이렇게나 싫어하는 티를 낼 수 있는 건가.. 싶었어요. 친척 오빠가 다가와도 쳐다도 안 보고요. 그나마 헤어지기 직전쯤이 되어서야 분위기가 풀리긴 했지만 아이의 극심한 낯선 이에 대한 거부 현상은 저에겐 너무나 어려운 문제와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비슷하게 엄마의 지인과의 만남을 우연히 가진 적이 있었는데, 동갑내기 친구가 있는 가족이었어요. 그럼에도 그날도 호두는 그런 만남이 싫다며 극강의 거부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호두를 유심히 지켜보며 한 가지 발견한 게 있었어요. 첫 순간의 두려움과 거부감이 생각보다 길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아이는 다른 사람과 그 환경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가까이 가기엔 부담스러운데, 그 나름의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관찰'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이런 아이의 성향은 원래 잘 알고 친한 어린이집 친구들 사이에서도, 새롭게 유치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호두는 미리 환경을 익혀야 하는 만큼, 사람들의 성향도 파악이 되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죠. 어른으로 치면 내적친밀감이 높아야 그나마 경계가 허물어지는 스타일이랄까요?
이럴 때 “우리 아이는 낯을 너무 가려서 문제야, 넌 어쩜 그러니”라고 아이를 비난하거나,
“더 많이 사람들을 만나서 아이가 적응하게 하자!”
는 식으로 더 많은 자극을 주는 방법은 아직 겨우 네 돌 밖에 안된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어요.
억지로 누구와 만남을 주선하면서 친해져라라고 붙여주기보다는, 대신 엄마나 아빠가 함께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수 있는 공공장소를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집 근처에 카페에도 자주 가고요, 비교적 대중교통도 애용하는 편이에요. 그 시간들을 통해서 아이는 우리 가족이 아닌 타인을 열심히 관찰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도 아이는 또래 친구를 억지로 만나게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하원하고 우연하게 동네 친구를 만나도 그 친구들을 우르르 따라서 놀이터에 가는 것보단 본인이 좋아하는 놀이를 더 즐길 때도 많아요. 가끔 다른 친구에 대해서 얘기가 나와서 우리 같이 놀까? 하면,
“엄마가 친구 귀엽다고 할 거잖아 싫어”
라고 똑 부러지게 말해서 저를 당황시킬 때도 있답니다. 아무래도 본인은 유치원에, 엄마는 회사에 메여 있느라 턱없이 부족한 엄마와의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표현이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키즈카페에서 도움이 필요한 어린 동생을 같이 케어해주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는 친정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친정엄마가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하고 물어보니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할머니, 친구는 사귀는 게 아니야~ 그냥 노는 거야”
“그냥 옆에 가서 같이 놀면 돼~”
정답이죠.
억지로 엄마가 만들어준 친구보다 유치원에서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사교활동을 스스로 잘 해내고 있었더라고요.
요즘엔 00랑 00랑~ 우리는 사총사야 이런 말도 해요.
단체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지낼 수 있다면, 이 정도로 괜찮지 않을까요?
곧 엄마 아빠가 놀자고 해도 친구랑 놀아야 한다고 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겠죠. 그 시간이 올 때까지 저는 아이와 부모가 오롯에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을 당분간은 더 사수해보려고 합니다.
아이는 멈춰 있지 않습니다. 아이의 성장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