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워킹맘의 개복치 딸 육아일기 07편
지난 편에 이어 아이의 유치원 적응기를 적어봅니다.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쉽지 않은 매일이었습니다.
유치원에 대해 적응하기 쉽도록 사전에 책도 읽어주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준비물도 챙겨줬지만, 유치원에서의 일상이 즐겁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그래서 우리 아이가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면 더 좋을지 같이 고민하는 시간을 매일매일 가졌어요.
3. 엄마와 일기 쓰기(엄마의 대필)
유치원 적응에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한글도 모르는 아이에게 일기를 써라 하고 시켰다는 건 아니고요. 저녁을 먹고 아이랑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에 아이의 하루를 엄마가 대필해주는 건데요.
타이틀은 이렇습니다.
"오늘 하루, 유치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했던 일"
그리고 직접 아이가 뭘 했는지 같이 얘기해 보면서 같이 쓰는 거예요. 거창하지 않아도 되고, 한 두 줄 이어도 괜찮아요.
그날 하루동안 아이가 인상 깊었던 일이나, 객관적으로 유치원에서의 하루를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그리고 마무리는, 아이가 입버릇처럼 "유치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하면 그 일지에서 우리 아이가 뭘 했는지 보고 또 같이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거죠.
"응 호두야, 내일도 오늘처럼 씩씩하게 하루는 보내면 엄마가 금방 올 거야" 하고요.
그리고 일기를 대필해 주는 점의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는데요. '나'를 둘러싼 주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거예요. 예민한 아이들은 또래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방을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다 보니 호두도 한동안 의자에 앉아있거나 쉬는 곳에서 그냥 누워서 쉬는 기간이 길었어요. 근데 그 기간이 호두 같은 아이에게는 결코 그냥 멍하니 있는 시간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아이들을 살피는 시간이 되거든요.
그리고 일기를 써보면서 A라는 아이는 어떤 아이인지, B라는 아이는 나처럼 역할놀이를 좋아한다던지 파악을 하면서 그 분위기에 적응해 가는 거죠.
4. 등원길은 쿨하게, 하원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대체로 아침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원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재택근무를 하는 날 근무 전에 아이를 버스에 태워주고요. (그마저도 회사에서 이제 5월부터 재택근무 제도를 없앴지만요...)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이면, 아이는 유독 힘들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엄마랑 집에 있고 싶거든요. 하지만 엄마는 놀고 있는 게 아니고 집에서 바짝 근무를 하고 대신 출퇴근시간을 아껴서 아이를 더 오래 볼 수 있습니다.
엄마가 집에 있으니 엄마랑 같이 집에 있겠다고 우는 아이에게 반복해서 알려줬습니다. "엄마는 출퇴근시간을 아껴서 호두를 만나는 시간이 너무 좋아. 호두가 신나게 유치원 시간을 보내고 오면, 엄마도 열심히 일하고 우리 호두를 기쁜 마음으로 데리러 갈게" 하고요.
하루는 정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힘들어하며 엄마한테 대롱대롱 매달려서 울다가 등원을 한 날이 있었어요.
저도 집에 돌아와서 많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부터.. 하원 표정이 밝아졌어요. 하원 버스에서 활짝 웃으면서 엄마한테 안기는 거예요.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서 활짝 웃으며 조잘조잘 하루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답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서 반항을 해보고, 아이 스스로의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는지, “아, 이렇게 울어도 안되는구나”를 깨달은 건지, 유치원은 가야 하는 곳이라는 걸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이후로 유치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종종 담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유치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한 두 마디씩 하고요.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나자, 유치원 가기 싫다는 말을 곧잘 하면서도 등원도 곧잘 하기 시작했어요. 초반에만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휴게공간에서 누워서 잠만 잤다는 말을 하거나, 특별활동 시간에 의자에 앉아서 참여하지 않는 사진들이 찍히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아주 활짝 웃은 사진들이 키즈노트에 올라오더라고요. 유치원에서 하원하면 신나게 놀고 온 표졍이 역력했어요. 중간중간 엄마가 언제 데리러 올 수 있는지를 묻기는 했지만 등원 거부는 확실하게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세 달째에 접어들면서 요즘은 갑자기 유치원 가고 싶다~ 김 OO 선생님 만나고 싶다~~ 하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힘들어도 갈 준비를 같이 하고, 간간히 유치원 얘기를 흥미롭게 하기도 해요. 특히 담임 선생님 얘기할 때 표정이 밝고, 하원길에는 해맑게 웃으며 버스에서 내린답니다. 요즘은 하원 버스를 타기 전에 윗반 언니오빠들이랑 잠깐 함께 놀이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고 좋아하더라고요. 어떤 언니가 종이접기 선물을 줬다며 이름까지 말해가며 수줍어하고요. 이런 아이의 이야기 한마디 한마디가 엄마는 참 감동스럽습니다.
어제는 현충일이 끼어서 삼일 동안 세 가족이서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오후였어요. 서울랜드에서 한 껏 신나게 놀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 대신 이렇게 묻더라고요.
"엄마, 아빠도 회사 가기 싫어?"
그래서 정말 솔직히 대답해 줬습니다.
"응. 엄마도 아빠도 호두랑 더 많이 놀고 싶고 회사 안 가고 싶어. 하지만 가야 해. 시간이 되면 그냥 가는 거야."
라고요.
아이는 그 말에 별 다른 말 없이 "응~" 하고 호응을 해주더군요. 엄마도 아빠도 본인과 같은 마음인 게 통한 걸까요?
어른도 아침마다 회사가 가기 싫은데 아이는 오죽하겠어요. 특히나 예민한 아이라면 더더욱 자극이 많은 건 참기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아이를 품속에 숨겨둘 순 없어요. 유치원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본인만의 루틴을 만들며 천천히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만의 시간을 주고 싶어요.